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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보루] 대낮에 인터넷 속도 잘 나오면 그만인가요? 밤에 소비자가 잰 건 무효라고요?

입력 2021-04-23 12:06 수정 2021-04-23 13:35

최저속도보장 약관에 가려 소비자 불편 외면 받는 현실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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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속도보장 약관에 가려 소비자 불편 외면 받는 현실 개선 필요

10기가 인터넷을 쓰는 유튜버가 "속도가 100메가 밖에 안나온다"고 문제를 제기한 뒤 온라인 여론이 뜨겁습니다.

 
유튜버 '잇섭'의 방송 썸네일 캡쳐유튜버 '잇섭'의 방송 썸네일 캡쳐

내 인터넷 속도가 느리다고 해도 속시원히 해결이 안됐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쏟아집니다.

정부에선 이번 논란을 계기로 인터넷 품질 저하에 대한 실태점검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고의적인 속도 저하가 있지는 않은지, 이용약관에 따라 보상이 적절히 이뤄지는지 등을 점검하겠다는 건데요.

[소-보루]에선 제대로 된 점검을 위해
기가 인터넷을 쓰는 가상의 소비자, '보루' 씨 입장에서 문제를 다뤄보겠습니다.

1. 신호 초기화로 간단히 사정이 나아진다?
여느 때처럼 퇴근 후 와이파이를 잡아 동영상을 시청하던 보루 씨는 갑자기 영상이 끊겨 짜증이 납니다. 컴퓨터를 껐다가 켜보기도 하고, 다른 태블릿과 핸드폰도 와이파이를 끕니다. 그래도 제대로 동영상을 볼 수 없자 결국 고객센터로 전화합니다. 상담원은 "고객님, 저희가 신호를 초기화해볼테니 공유기를 껐다 켜 보세요" 라고 말하죠.
그런데 귀신같이 속도가 회복됐습니다. 유튜버 '잇섭'의 경우도 처음엔 그랬다고 하죠.
다만, 애초에 왜 속도가 느려지는 것인지, 신호 초기화로 왜 다시 속도가 빨라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컴퓨터가 느리면 한번 껐다 켜라는 말밖엔 되지 않는 거죠.

2. 내 공유기가 문제라고요?

 
wifi 느리다고 하면 꼭 공유기 탓, 기기 수 탓wifi 느리다고 하면 꼭 공유기 탓, 기기 수 탓

보루 씨는 상담원의 도움으로 일시적이나마 문제없이 쓸 수 있었지만, 또다시 속도가 떨어지는 일이 반복됩니다.
급기야 신호 초기화로도 속도가 개선되지 않아 기사님 방문 일정을 잡았습니다.
며칠 후, 기사님 방문에 맞춰 반차까지 쓴 보루씨. 기사님은 오자마자 공유기의 위치와 모델을 확인합니다.
그래놓곤 공유기가 업체에서 제공한 모델이 아니라며 공유기 문제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보루 씨는 인터넷 가입 당시 업체의 공유기 사용을 거부하고 자신이 갖고 있던 공유기를 썼습니다.
게임도 하고 동영상도 다운로드 받아 퇴근 후 취미로 삼던 보루 씨는 일반적인 사양의 업체 공유기보다 더 고급 사양의 '사제품'을 쓰고 있었던 거죠.
훨씬 사양이 좋은 공유기라고 얘기를 해도 "저 공유기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라는 기사님 얘기에 답답하기만 합니다.

3. 낮에 재서 멀쩡하니 문제가 아니라고요?
그런데, 기사님이 주섬주섬 가방에서 무슨 측정 장치를 꺼내더니 공유기에 연결된 랜선을 뽑습니다.
그리고 속도 측정을 하는데, 순간 보루 씨는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다운로드 800메가. 이 정도면 고객님 댁 인터넷 속도 잘 나오는 겁니다."

보루 씨가 며칠 전 고객센터에 전화할 때만 해도 100Mbps도 안나오던 게 어떻게 된 일인지.

"분명 어제 밤에 제가 쟀을 때는 100메가도 안 나왔어요..."

어떻게 된 일일까, 보루 씨는 머리를 긁적이지만, 사실 답은 간단합니다. 왜냐, 기사님은 오전에 속도를 재셨으니까요.
기사님도 저녁엔 퇴근을 하시거든요.

보루 씨도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인터넷 사용량이 적은 아침 시간대니까 그렇겠죠. 밤에 재면 느리다고요. 얼마나 답답한대요."

4. 트래픽이 몰리는 게 소비자 잘못인가요?

보루 씨가 따지자 기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밤에는 이 동네, 이 아파트 주민들이 다들 인터넷을 많이 쓰니까 트래픽이 몰려서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어요."

보루 씨는 생각하죠.
'어쩔 수 없다는 말인가? 참고 쓰란 소린가? 사람들이 밤에 인터넷 쓰는 게 내 잘못인가?'

황금시간대에 인터넷이 느려질 수 있다곤 하지만, 그래도 1기가 인터넷이 100메가도 안 나오는 상황은 좀 문제 아니냐고 따져봅니다.

 
LTE 속도도 100Mbps가 넘게 나오는데...LTE 속도도 100Mbps가 넘게 나오는데...

그러자 기사님은 밤에 와이파이로 재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속도 측정은 벽에서 랜선을 바로 연결해서 재야 한다고요.
와이파이 속도가 느렸다면 그건 공유기 문제일 수 있다며, 댁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쓰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공유기는 엄청 좋은 거라고요....'
업체 공유기가 아니면 안된다니, 속으로만 말해봅니다.

어쨌든 신호에는 문제가 없다는 기사님 말에 보루 씨는 왠지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기사님을 배웅합니다.

5. 아니 넷플릭스는 왜 또 안 되는 건데? 해외망? 이건 또 뭔가요.

그 이후로도 속도가 정상적으로 나오다가 안 나오다가 하는 현상이 반복됩니다. 보루 씨, 반쯤 포기한 채 지내다가 넷플릭스가 빠르게 재생이 잘 된다는 말에 덥썩 가입합니다.
넷플릭스는 자체 속도 측정 기능도 있고, 측정사이트인 fast.com도 갖고 있죠. 보루 씨도 궁금한 마음에 한 번 재봅니다.

 
1Gbps 인터넷을 써도 해외망인 넷플릭스에선 속도가 현저히 낮을 수 있다.1Gbps 인터넷을 써도 해외망인 넷플릭스에선 속도가 현저히 낮을 수 있다.

'3Mbps'.

4K 요금제로 가입했는데, 심지어 4K는 재생도 안 된답니다.

또 기사님을 부른 보루 씨.

기사님이 와서 10번이나 측정했는데, 하나같이 500~800Mbps를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넷플릭스 사이트에선 왜 1/300 밖에 안 나온 걸까, 궁금해지는 보루 씨.

"넷플릭스는 해외망에 접속해야 하는 거라서, 여긴 또 상황이 달라요."

또다시 해결된 거 하나 없이 기사님은 돌아갑니다.
보루 씨는 폭풍 검색 후에야 넷플릭스가 일부 국내 인터넷 업체들과 갈등 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넷플릭스 사용자가 늘면서 해외망 확장이 필요해졌는데, 사용료를 두고 다투고 있던 거죠.

그렇다면 이 상황은 넷플릭스의 잘못인가, 인터넷 업체의 잘못인가. 보루 씨는 누가 잘못했든 간에 피해는 자신이 보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억울해집니다.

 
넷플릭스에선 국가 단위로 인터넷 업체들의 평균적인 서비스 속도를 제공한다. 모두 3Mbps 수준으로 대동소이하다. 넷플릭스에선 국가 단위로 인터넷 업체들의 평균적인 서비스 속도를 제공한다. 모두 3Mbps 수준으로 대동소이하다.


6. 해지하려면 위약금 토하라고요?

 
최저속도보장제에서 규정하는 속도는 약 1/3-1/2 수준에 불과하며 측정 방법 역시 기사가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까다롭다.최저속도보장제에서 규정하는 속도는 약 1/3-1/2 수준에 불과하며 측정 방법 역시 기사가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까다롭다.

결국 인터넷 회사를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은 보루 씨.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해지를 요청했습니다. 약정 기간을 못 채웠으니 위약금을 내라고 합니다.
속도가 이렇게 안 나오는데 어떻게 쓰냐고 따져봤지만, 이용 약관상 최저속도보장제를 어긴 게 아니기 때문에 중도해지 위약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
이게 보루씨의 잘못일까요.
애초에 인터넷 서비스에 가입할 때 사용량에 제한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신 적이 없을 겁니다. 회사가 인정하는 방식으로 소비자가 직접 밤 시간대에 속도를 측정해서 증명하면, 거기에 맞게 대응해야겠죠. 적절한 보상도 필요하고요.
피해 소비자들을 취재해보니 통신사의 대응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소비자가 강하게 항의하면 대책을 마련해주기도 했지만, 본인들의 잘못이 있는데도 은근슬쩍 넘어간 경우도 많더군요.
유튜버 '잇섭'처럼 알려진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자 통신사도, 정부도 뒤늦게 움직이는 모습이 참 씁쓸합니다.

*'소-보루'는 5200만 소비자 권익을 위한 최후의 보루가 되겠다는 뜻을 담은 코너입니다. (소비자 피해 제보나 개선 의견 등은 JTBC 보도국 소비자생활팀 정원석 기자에게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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