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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면 하고 싶은 거요? 운전이요!" 누군가에겐 일상…단 하루 이뤄진 '소원'

입력 2021-04-2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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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소원은 운전입니다. 요즘 역주행, 희망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브레이브걸스의 노래죠. 어색한 상황 속에서도 "넌 운전만 해, 계속 운전만 해"라는 노래 가사도 있는데, 운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기에 소원이냐고요?

중증 시각장애인 최시영씨가 운전을 준비하고 있다.중증 시각장애인 최시영씨가 운전을 준비하고 있다.

저는 시각장애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본다'는 것은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열심히, 성실히 살았습니다. 대학에서 점자문헌정보학을 전공할 만큼 학업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33년을 살아오는 동안 할 수 없는 게 있었습니다. 바로 운전입니다.

언제가 눈을 뜬다면 가장 먼저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싶습니다. 직접 운전을 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게 운전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평소 복지콜 바우처 택시를 이용할 때면 내비게이션 음성을 들으면서 비록 운전은 못 하지만 직접 운전을 하는 것처럼 상상하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 그 '소원'이 이뤄졌습니다. 진짜 운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진행한 '소원을 말해봐'라는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제가 선정된 것입니다.


중증 시각장애인 최시영씨가 운전 전 서울서부면허시험장 김영철 차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중증 시각장애인 최시영씨가 운전 전 서울서부면허시험장 김영철 차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제가 오늘 운전을 할 곳은 도로교통공단 서부운전면허시험장입니다. 먼저 시험관으로부터 운전 시뮬레이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실제 자동차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어떤 느낌이냐고요? "따봉!"입니다.


중증 시각장애인 최시영씨가 운전 전 서울서부면허시험장 김영철 차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중증 시각장애인 최시영씨가 운전 전 서울서부면허시험장 김영철 차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제 옆에는 서부운전면허시험장 김영철 차장님이 함께 앉았습니다. 액셀과 브레이크, 깜빡이, 또 비가 올 때 사용하는 와이퍼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셨습니다. 드디어 차가 출발합니다. 저는 운전을 할 때 반드시 액셀을 밟아야 차가 움직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행 모드에만 놓아도 차가 앞으로 간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오르막입니다. 김영철 차장님께서 액셀을 살짝 밟으라고 했는데, 힘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갑자기 차가 속도를 내고 앞으로 나가서 살짝 당황했습니다. 액셀과 브레이크는 아주 살살, 천천히 밟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구불구불한 길은 차장님의 도움을 받아 핸들을 꺾어가며 천천히 주행했습니다. 직선 주로가 나왔다고 합니다. 차장님이 괜찮으니까 힘차게 액셀을 밟아보라고 합니다. 부웅~! 엔진이 강하게 소리를 내면서 움직입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습니다. 역시나 "따봉!"


중증 시각장애인 최시영씨가 서울서부면허시험장 김영철 차장의 도움으로 운전을 하고 있다.중증 시각장애인 최시영씨가 서울서부면허시험장 김영철 차장의 도움으로 운전을 하고 있다.

솔직히 운전은 평생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자율주행차가 개발되고, 저처럼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도 운전을 할 수 있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본 기사는 선천적 중증 시각장애 최시영 씨의 사연과 첫 운전 경험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중증 시각장애인들이 운전석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중증 시각장애인들이 운전석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행사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관장 김미경)이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여 진행됐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평소 하고 싶었지만, 장애로 인해 할 수 없었던 소원을 이뤄주는 이벤트를 마련했는데요. 대다수 시각장애인이 가장 하고 싶다고 한 소원은 '운전'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복지관은 도로교통공단과 서부운전면허시험장에 요청해 이번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은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시각 장애인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라며 "단 하루만이지만 시각장애인의 꿈을 이뤄주고자 행사를 기획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서부운전면허시험장 김영철 차장도 "시각장애인들이 운전을 한 건 처음"이라면서 "아주 특별한 경험,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습니다.

중증 시각장애인 대학생 허은빈씨가 시험관의 도움을 받아 운전을 하고 있다.중증 시각장애인 대학생 허은빈씨가 시험관의 도움을 받아 운전을 하고 있다.

행사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시각장애인들이 참여했습니다. 대학생 허은빈씨는 "대학생이 되면 많이 하는 것 중에 하나라 운전면허를 따는 것인데 저는 불가능하다"라며 "이번 기회에 다른 대학생들처럼 운전해보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중증 시각장애인 대학생 허은빈씨가 운전석에 앉아 사이드미러를 바라보고 있다.중증 시각장애인 대학생 허은빈씨가 운전석에 앉아 사이드미러를 바라보고 있다.

첫 운전을 마친 허 씨는 "운전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라며 "운전을 할 수 있게 되면 언제든 내가 원하는 곳에 직접 운전을 해 가고 싶다"라고 전했습니다. 허 씨와 함께 탑승한 시험관도 "비장애인 분들도 처음엔 서툴기 마련"이라며 "알려주는 대로 잘 따르고 습득력이 빠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밖에 오늘 행사에는 운전면허도 있고 운전을 할 수 있었지만, 사고로 인해 중도에 앞을 볼 수 없게 된 60대 대학교수, 전 시각장애인 축구 국가대표 선수를 지낸 40대 직장인, 성악을 전공한 30대 음악교정사 등이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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