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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고양이는 해쳐도 되나요?ㅣ한민용의 오픈마이크

입력 2021-04-03 19:56 수정 2021-04-0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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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픈마이크, '길 위의 이웃' 길고양이 연속 기획 두번째 시간입니다. 학대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양이 코점이 사건, 보도해드렸습니다. 코점이는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고 있지만, 이런 주인 없는 길고양이들을 상대로 한 학대 사건은 갈수록 잔인해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주인 없는 길고양이는 해쳐도 비교적 가벼운 처벌만 받아온 탓이라고 지적하는데, 오픈마이크에서 분석해봤습니다.

[기자]

서울 강남 한복판에 나타난 자칭 '고양이 킬러'.

이 동네 고양이 코점이는 눈가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물그릇엔 '세제'가, 담벼락엔 '죽이겠다'는 협박글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민들을 겁에 질리게 한 건, 경찰에 신고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날아온 붉은 글씨의 '협박 쪽지'였습니다.

범인은 JTBC 오픈마이크팀이 촬영간 날에도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협박 쪽지'를 보내왔습니다.

[전진경/동물권행동 카라 대표 : 너희들은 나를 못 잡을 것이고, 설사 내가 잡힌다고 해도 벌금을 얼마 내는 정도에 그칠 것이기 때문에… 학대자들한테는 학습이 된 거죠.]

길고양이를 학대해도 별일 없을 거라는 '확신'.   

이런 확신은 동물을 학대하는 영상을 서로 공유한 '동물판 N번방' 사건에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끔찍한 범죄의 표적이 된 건 모두 '주인 없는 고양이들'이었습니다.

분명 우리 법은 주인이 있든 없든, 동물을 학대하면 똑같이 처벌받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안타깝게도 그들의 궤변이 마냥 틀리지만은 않습니다.

불로 지지고, 시체를 훼손하고, 주인 없는 길고양이를 상대로 한 잔혹한 학대 범죄는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실형'을 선고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동물을 학대해 처음으로 '실형'이 내려진 재판에서도, 살해 당한 고양이에게 주인이 있냐 없냐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2년 전, 자두는 이 화분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때 39살 정모씨가 다가와 세제 탄 사료를 먹이려 했고, 자두가 피하자 꼬리를 잡아채 바닥에 마구 내리치고 밟았습니다.

이렇게 한 생명을 짓밟고는 '화풀이'였다고 한 정씨.

정씨는 법정에서 고양이를 죽인 건 인정하면서도 '주인 없는 길고양이'를 죽인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야 더 가벼운 처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 법은 동물을 여전히 '물건'으로 여겨 주인 있는 고양이를 해치면 남의 재산을 망가뜨린 것으로 보고 '재물손괴죄'로 처벌합니다.

한 '생명'을 해친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동물보호법 위반죄'로 처벌받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게 현실입니다. 

[예미숙/자두 보호자 : 동물보호법이 지금까지 (무거운 처벌이) 나온 게 없으니까 (다들) 잘해야 집행유예야. 그쪽 변호사도 동물보호법은 인정했어요. 재물손괴로 하기 싫어도 해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 자두가 생명인데, 물건으로 취급받는 건 싫어도 형을 받게 하려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장사도 미뤄두고, 자두가 주인 있는 고양이였다는 걸 입증할 증거를 모은 끝에 징역 6개월, '첫 실형' 판결이 나왔습니다.

[예미숙/자두 보호자 : 자두가 길고양이였으면 실형이 아마 힘들었을 거예요. 길고양이는 생명이 아닌가요. 주인이 없다는 이유로 학대당하고 살해돼도 (되나요.)]

자두를 시작으로 시컴스와 토순이를 해친 사람들에게 잇따라 실형이 선고됐지만, 모두 주인이 있어 '재물손괴죄'가 인정된 영향이 컸습니다.

그렇다면 주인 없는 길고양이를 해친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판결문을 찾아봤습니다.

길고양이를 무려 6백마리나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어 죽인 뒤 건강원에 판 50대 남성.

길고양이를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찌르는 등 잔인하게 살해하고 그 과정을 찍어 유튜브에 올린 20대 남성.

길고양이 머리에 사냥용 화살을 쏜 40대 남성.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습니다.

주인이 있든 없든, 동물을 학대하면 처벌하는 '동물보호법 위반죄'의 형이 낮아서일까.

'3년 이하의 징역, 3천만원 이하의 벌금', 전문가들은 결코 낮지 않다고 입을 모읍니다.

[서국화/변호사 : 결코 경하지만은 않거든요. (법정 최고형이 낮아서) 지금 이렇게 동물학대 처벌이 제대로 안 이루어지냐라고 본다면 사실 그렇지 않고 '동물을 해한 걸 가지고 사람을 가두는 게 맞냐'라는 생각을 분명히 하는 것 같아요, 법원이. 그런데 그런 생각이 오히려 더 큰 위험성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인식이 빨리 바뀌었으면…]

(영상디자인 : 배장근 / 영상그래픽 : 정수연 / 연출 : 홍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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