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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아이스크림' 시키려다 '아이스티' 누르는 노인들

입력 2021-04-0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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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직원 대신 기계로 주문하고 결제하는 게 아직 낯설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르신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화면을 몇 번 누르기만 하면 금세 주문이 된다고들 하던데 누군가에겐 그저 '똑똑한 유리 벽' 같기만 합니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소외 받지 않고 편리하게 쓸 수 있을지, 밀착카메라 이예원 기자가 고민해봤습니다.

[기자]

어르신 두 명이 무인 매장을 찾아 다닙니다.

공무원과 교사를 하다 퇴직한 이들이 만든 영상의 이름은 '키오스크 체험기'.

당당하자는 메시지도 적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기에 체험기까지 만들었는지 이들을 만나 패스트푸드점을 찾았습니다.

햄버거 2개를 시키려는데 관문이 많습니다.

[정진 : '빵을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안 합니다. '세트로 드시겠습니까?' 버거만 하겠습니다. 이제 한 개인데 두 개를 더 할 때 이게 이제 어려워요.]

이번엔 아이스크림을 골라 봅니다.

[한천옥 : '음료 커피'…아이스크림이 어디 가있나. 아직 날씨가 덜 더워서 안 나오나? 아 여기있다!]

어렵게 찾았지만 '아이스티'를 잘못 담았습니다.

[한천옥 : 이건(아이스티)은 삭제해버려야지. 왜 삭제가 안 돼.]

삭제 버튼이 잘 안 눌립니다.

[한천옥 : 취소하고 처음부터 다시 할게. 삭제가 안 되네. 금방 돼야 하는데.]

아이스크림 하나 사는 데 3분이 걸렸습니다.

[정진·한천옥 : 우리 시니어들을 위해서 (화면이) 자세하게 사인을 좀 보내줬으면 좋을 거 같습니다. (글자도) 확대시켜 주면 훨씬 도움이 많이 되죠.]

대학생 은빈 씨가 키오스크 화면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허은빈 : 음식 사진이 있어서 '메뉴 누르는 화면이구나'…]

은빈 씨는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지만, 저시력 시각장애인입니다.

다른 메뉴도 보려는데 화면이 사라집니다.

[허은빈 :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초기화가 돼요.]

무인주문기마다 디자인이 제각각이라 익숙해질 수도 없습니다.

[허은빈 : ('신용카드를 카드 리더기에 삽입해주세요.) 이게 리더기도 문제인 게 기계마다 어디 있는지 다 다르더라고요. 그냥 카드 갖다가 대충대충 해보고…]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대학생 은산 씨는 키오스크를 이렇게 부릅니다.

[조은산 : 저는 이걸 '똑똑한 유리벽'이라고 불러요. (왜 그렇게 불러요?) 뭔가 말을 하고 동작을 하는 것 같긴 한데 (저한텐) 벽이나 마찬가지라서…]

장애인용 점자나 버튼이 있는지 눌러보지만,

[조은산 : 제가 한번 눌러 볼게요. 버튼이라도 있나. 뭐가 눌리고 있는 것 같은데.]

필요한 기능은 없고, 고르지도 않은 음식들만 장바구니에 담깁니다.

직원이 아무도 없어 취재진과 함께 '도움' 버튼을 눌러봤지만, 전화번호만 화면에 뜰 뿐입니다.

이마저도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조은산 : 만약 저 혼자 이런 곳에 왔다면 저는 아마 다시 돌아갔을 것 같아요. (어디로요?) 어디든 나가야죠. 이런 시스템이 아닌 곳을 찾으러…]

이들은 이렇게 일상에서 느낀 불편함을 계기로 소외 계층의 주문을 돕는 웹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허은빈 : 우리는 소비자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애초에 고려받지도 못 했구나…]

[조은산 : 이런 키오스크가 앞으로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 아주 확실한 상황에서 저희는 혼자서 처리하는 영역들이 적어지고 그럴수록 더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을까.]

무인 주문기가 어려운 건 특정한 사람들뿐만이 아닙니다.

[박정하/경기 용인시 : 디카페인 커피를 하나 마시고 싶다 그럼 그걸 딱 누르면 그것만 나와야 되는데 계속 다른 게 막 뜨는 거야. 시정이 돼야 해. 꼭 그거 얘기하고 싶었어 진짜.]

전문가들은 애초에 키오스크 설계 당시에 이용자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고 지적합니다.

[구정우/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 키오스크를 들여오는 처음부터 충분한 배려가 있어야 했고요. 개인들이 이해하고 쫓아가야 하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들이 생겨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지자체에선 키오스크 체험기계를 두고 주민들에게 사용법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오경순/서울 양천구 : (무인 주문하는) 이런 데 가면 엄한 데 누를까 봐 그래서 좀 무서웠는데, 오늘 이거 해보니까 좀 자신감이 생기네요.]

무인주문기를 피해다닌다는 한 여든살 노인은 취재진에게 "내가 똑똑하지 못해서 그렇다"며 자책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탓이라고 말하기엔 그동안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습니다.

더이상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이제라도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요.

(VJ : 최효일 / 영상그래픽 : 김정은 / 인턴기자 : 이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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