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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손녀에게 옮기면 안 되잖아...아프냐고? 암 것도 아녀!"

입력 2021-04-01 13:42 수정 2021-04-01 18:40

전국 46곳에서 75세 이상 화이자 백신 접종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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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46곳에서 75세 이상 화이자 백신 접종 시작


드디어 날이 밝았다. 솔직히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올해 내 나이 여든여덟(주민등록상으로는 여든여섯이지만 옛날에는 태어나자마자 얼마 못 살고 죽는 아이들이 많아서 다들 늦게 호적에 올렸다)이지만 그래도 나는 겁이 많다.

고혈압에 당뇨, 고지혈증까지 있다. 몇 달 전에는 허리 수술도 했다. 그래서 어제 병원을 갔었다. 의사가 오늘 백신을 맞아도 된다고 했다. 그래도 솔직히 걱정된다.

75세 이상 고령자를 시작으로 일반인 대상 코로나19 백신 첫 접종이 시작된 1일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접종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첫째줄 오른쪽 분홍색 외투를 입으신 분이 서정옥(86) 할머니다. 〈사진=연합뉴스〉75세 이상 고령자를 시작으로 일반인 대상 코로나19 백신 첫 접종이 시작된 1일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접종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첫째줄 오른쪽 분홍색 외투를 입으신 분이 서정옥(86) 할머니다. 〈사진=연합뉴스〉

아들딸 6남매는 모두 출가하고 남편도 없이 나는 혼자 살고 있다. 집 근처에 마련된 접종센터지만 동 주민센터에서 태워 준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 친구 셋이랑 큰 차를 타고 함께 왔다. 편하게 왔다. 그래도 주사를 맞는다고 하니 떨린다.

75세 이상 고령자를 시작으로 일반인 대상 코로나19 백신 첫 접종이 시작된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한 어르신이 접종에 앞서 문진표를 작성하고 있다.  글자를 모르거나 예진표 작성에 어려움이 있는 고령층을 위해 직원이 일대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75세 이상 고령자를 시작으로 일반인 대상 코로나19 백신 첫 접종이 시작된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한 어르신이 접종에 앞서 문진표를 작성하고 있다. 글자를 모르거나 예진표 작성에 어려움이 있는 고령층을 위해 직원이 일대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내 순서는 두 번째다. 먼저 예진표라는 것을 작성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 나는 눈이 어둡다. 나는 까막눈이지만 그래도 육 남매는 잘 키웠다. 뭐를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앞에 앉은 직원이 하나하나 불러주면서 내 몸 상태를 물었다. '쇼크', '이상 반응', '혈액 응고' 사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독감 백신을 맞고 이상 증상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그런 것 없습니다." 혈압약은 먹고 있지만, 어제 의사도 주사를 맞아도 된다고 했고, 간호사도 괜찮다고 한다.


75세 이상 고령자들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1일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화이자 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75세 이상 고령자들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1일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화이자 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곧바로 주사를 맞으러 가라고 한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플까 봐 겁은 난다. 자리에 앉으니 간호사가 평소에 오른팔로 주로 쓰냐고 물어보더니 왼쪽 팔뚝에 주사를 놓겠다고 한다. 간호사는 '화이자' 백신을 맞는다고 설명을 해준다.

화이자가 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백신은 꼭 맞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내가 아파서 우리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옮기면 안 되지 않냐. 내가 겁이 많은데도 백신을 맞겠다고 한 건 우리 가족과 다른 사람에게 전염이 될까 봐서다. 자식들도 괜찮으니 맞으라고 했다.

75세 이상 고령자를 시작으로 일반인 대상 코로나19 백신 첫 접종이 시작된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서정옥(86) 할머니가 화이자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75세 이상 고령자를 시작으로 일반인 대상 코로나19 백신 첫 접종이 시작된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서정옥(86) 할머니가 화이자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왼쪽 어깨를 내렸다. 잠시 후 간호사가 "따끔"이라고 말하더니 주사를 맞았다. 많이 아프지 않았다. 손자 같은 기자라는 사람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암 것도 아녀. 가시 찔린 것만도 못혀". 그래도 전혀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눈곱만큼 아파"

접종이 끝나고 나니 접종 확인서라는 것을 받았다. 그리고 30분 동안 기다렸다. 직원이 네모난 기계를 주면서 벨이 울리면 돌아가라고 하면서, 열이 나거나 아프면 손을 들라고 했다.

30분이 지났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집으로 가려고 하니 아까 본 손자 같은 사람이 어떠냐고 또 물어본다. "멀쩡해. 아무렇지도 않아. 안 맞은 거나 똑같아."

지난달 3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어드벤처의 야외 파크인 매직아일랜드에 벚꽃이 만개해있다. 본 기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연합뉴스〉지난달 3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어드벤처의 야외 파크인 매직아일랜드에 벚꽃이 만개해있다. 본 기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연합뉴스〉

집에 갈 때는 걸어서 가려고 한다. 날씨도 따뜻하고 봄꽃도 활짝 핀 동네를 같이 온 동네 친구 세 명과 함께 가려고 한다. 며칠 전 경로당에 갔더니 백신이 위험하다며 맞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또 좋다고 하니 대부분 다 맞겠다고 한다. 가서 전해줘야겠다. "암 거도 아녀!"

자식들, 손자 손녀에게도 전화해야겠다. "할미, 우리 새끼들 보려고 주사 맞았다. 자주자주 보러 오너라"

오늘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88세(주민등록상으로는 86세) 서정옥 할머니의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75세 이상 고령자를 시작으로 일반인 대상 코로나19 백신 첫 접종이 시작된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접종에 앞서 예진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75세 이상 고령자를 시작으로 일반인 대상 코로나19 백신 첫 접종이 시작된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접종에 앞서 예진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늘 오전 9시를 전후로 전국 예방접종센터 46곳에서 75세 이상에 대한 백신 접종이 시작됐습니다. 접종 대상이 의료진이나 노인시설에 있는 어르신들 외에 '일반인'으로 확대된 건 처음입니다. 오늘부터 75세 이상(1946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자) 총 350만 8,975명이 화이자 백신을 맞게 됩니다.

송파구 접종센터에서 만난 박성수 송파구청장은 "어르신들의 이동 편의를 위해 버스 4대를 준비했다"라며 "돌발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1명씩 안전요원도 배치했고 접종센터에는 휠체어와 돋보기안경 등도 비치해 뒀다"라고 말했습니다.

75세 이상 고령자를 시작으로 일반인 대상 코로나19 백신 첫 접종이 시작된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한 어르신이 화이자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75세 이상 고령자를 시작으로 일반인 대상 코로나19 백신 첫 접종이 시작된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한 어르신이 화이자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화이자 백신은 보관과 유통이 까다롭습니다. 영하 75도 초저온 상태에서 보관해야 하고, 해동한 다음에는 5일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백신을 폐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확한 접종 인원을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요. 강미애 송파구 보건소 건강기획팀장은 "하루 예상 접종자를 파악해 백신을 해동하고 냉동고의 전원이 나가는 상황 등에 대비해 알람 장치도 갖추고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75세 이상 고령자들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1일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화이자 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75세 이상 고령자들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1일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화이자 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예방접종센터의 접근성과 접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이번 달 말까지 전국 지자체별로 최소 1개 이상의 센터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입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도서·산간지역에 살고 있어서 접종 센터를 직접 찾기 어려운 고령자를 위해서는 교통편을 제공하거나, 또는 방문 접종 등 별도의 접종 방법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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