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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어른들이 방심한 사이, 스쿨존 주변을 달리는 화물차

입력 2021-03-30 18:34 수정 2021-03-30 18:44

[취재썰]어른들이 방심한 사이, 스쿨존 주변을 달리는 화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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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어른들이 방심한 사이, 스쿨존 주변을 달리는 화물차

지난 18일 인천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이 학교 4학년 학생이 화물차에 치여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18일 인천시 한 초등학교 앞, cctv에 사고 당시 정황이 담겼다.지난 18일 인천시 한 초등학교 앞, cctv에 사고 당시 정황이 담겼다.

이 학교 앞 육거리를 설명하려니 아득합니다. 사거리에 일방통행길 하나, 양방통행길 하나가 붙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건너는 횡단보도는 그 옆에 나있습니다.

이 육거리 지도를 들고 전문가를 찾아가 봤습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스쿨존 설계' 라고 말했습니다.유 교수는 "원래 초등학교 진출입로를 대로, 6차로 이상 큰 도로와는 마주하지 않게 설계한다"면서 "새로 계획하는 도시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구도심에서만 나타나는 형태"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8일 어린이 사망사고가 난 인천의 한 초등학교 앞 6거리지난 18일 어린이 사망사고가 난 인천의 한 초등학교 앞 6거리
실제로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도시를 설계할 때 가장 신경쓰는 시설 중 하나가 '학교'입니다. 학생 안전을 위해 도로 차선은 줄이고 주변 도로는 일방통행으로 해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합니다. 어린이들은 어디로 튈 지 모르고, 어른들은 이를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고가 난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그동안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복잡한 육거리를 지나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횡단보도 위치를 바꿔달라, 신호체계를 바꿔달라 여러 차례 건의했습니다. 물류도시, 항구도시 인천의 특성상 큰 화물차가 많이 다니기 때문에 이러한 작은 안전을 놓치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이를 모두 묵과한 건 어른들이었습니다.

 
경찰이 지정한 '화물차금지구역'이라는 현수막에도 화물차가 지나가고 있는 모습경찰이 지정한 '화물차금지구역'이라는 현수막에도 화물차가 지나가고 있는 모습
인천의 또 다른 초등학교는 비슷하지만 다른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인천 미송초등학교 옆 580m 떨어진 곳에 500면 짜리 화물차 주차장이 들어섭니다.
이 지역 도로는 비교적 잘 정리가 되어있지만 큰 트레일러가 주차장에 드나들기 위해 끊임없이 오간다고 생각하면 인근 학부모들 마음이 편할 리 없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미송초등학교가 있는 송도 9공구는 원래 공원 지구였습니다. 인천항과 인천여객터미널을 끼고 있어서 대형 차들이 오갑니다. 그런데 인천시가 공원지구를 '주거 지역'으로 바꿔 송도신도시를 만듭니다. 바다가 보이는 화려한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섰습니다.
 
스쿨존에 화물차가 지나가고 있는 모습을 학부모가 촬영했다.스쿨존에 화물차가 지나가고 있는 모습을 학부모가 촬영했다.

이제 고민이 생겼습니다. 항구를 통해 들어오는 컨테이너를 실어나르는 대형 화물차 주차장이 없는 겁니다. 항구와 대형차 주차장, 대형차들이 빠져나가는 외곽순환도로가 먼저 설계되고 아파트와 학교 사람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구획이 나누어져야 하는 건데 순서가 바뀐 겁니다.

항만공사와 화물차 운전자들은 화물차 주차장이 당장 필요하고,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들은 황당할 따름입니다. 인천시 연수구 구청장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반대 입장을 내니, 이번엔 화물차 운전 기사들이 구청 주변에 현수막을 걸고 화물차 주차장 건립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항구도시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대형 화물차들을 위한 전용도로를 만들거나 도시 외곽을 순환하게 해, 화물차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의 안전을 확보하는 겁니다. 멀리서 일본 오사카와 홍콩이, 가까이엔 부산신항이 이렇게 운영됩니다. 인천도 구도심과 신도시 간의 구획정리를 하며 물류단지와 주거지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있지만 여전히 엇박자가 나는 겁니다.

인천시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위험지역 내 초등학교의 교통시설물 정비하면서, 보호구역 내 제한 속도 하향, 어린이보호구역내 화물트럭 출입금지 등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장의 해결책도 시급하지만, 인천시 지도를 펼쳐서 어떻게 하면 안전한 도시를 '구현해' 낼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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