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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비서의 '속옷·혈압 챙기기'…이제 매뉴얼로 금지한다

입력 2021-03-22 16:34 수정 2021-03-22 16:42

젊은 여성 비서 배치 관행도 고쳐…공개 선발 방식으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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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 비서 배치 관행도 고쳐…공개 선발 방식으로 전환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의혹 사건 조사를 마치며 서울시에 숙제를 내줬습니다.

비극의 되풀이를 막기 위해 서울시도 바뀌어야 한다고 구체적인 재발방지책을 주문했습니다.

서울시는 얼마나 바뀔 준비가 됐을까요?

 
지난 17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의혹 사건 피해자 기자회견지난 17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의혹 사건 피해자 기자회견

● 속옷 챙기기, 혈압재기…비서가 '못 하는 일'로

인권위는 지난 1월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먼저, 서울시 비서 운용 관행의 문제점을 짚었습니다.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자는 비서 시절 시장의 '샤워 속옷 관리, 약 챙기기, 혈압 재기, 명절 장보기' 등 사적 영역의 일까지 해야 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런 업무의 특성은 시장과 비서 사이를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로 오인하게 할 수 있다고 인권위는 지적했습니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 문제가 업무로 포장돼 정당화 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비서의 업무를 '공적 영역'으로 제한하는 업무 지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뚜렷한 지침이 없어 시장의 요청으로 공과 사를 넘나드는 일들을 비서가 모두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 총무과에서 최근 마련한 지침에 따르면, 비서의 업무는 '공적 영역'으로 철저히 제한될 예정입니다.

위반 시 처벌이나 조치가 취해지는 강제 규정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비서진이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는 사적 심부름에 대해 문제 삼을 수 있는 명시적 기준이 생겨난다 볼 수 있습니다.

박원순 전 시장 사건 이후 만들어진 '국가인권위 권고사항 이행 계획 자문위' 회의에서 이번주 이 새로운 지침에 대해 논의합니다.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곧바로 시행될 예정이라고 서울시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또 당초 인사과 추천을 받아 젊은 여성 직원 직원들로 채워넣었던 비서실 직원 채용 절차도 투명화하기로 했습니다. 일반 직원들과 똑같이 희망자를 받아 공개적으로 선발해 성평등한 인력 배치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7월 전 서울시장 성폭력 의혹 사건 직권 조사 여부를 국회에 보고하고 있는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지난해 7월 전 서울시장 성폭력 의혹 사건 직권 조사 여부를 국회에 보고하고 있는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 국가인권위 "서울시 사건 처리 과정은 2차 피해"

인권위는 당시 박 시장을 밀착 보좌하는 비서실 구성원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친밀하다고만 보고 문제시하지 않은 것 자체를 지적했습니다.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의무적인 교육으로 보강하라고도 했습니다. 실제 이번 사건 피해자는 비서실 근무 4년 동안 한번도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이 불거지고 피해자를 성폭행했다는 또다른 비서실 동료가 지목되면서 수사를 받고 지난해 9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인권위는 이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해서 '2차 피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서울시는 해당 가해 직원을 전보 조치했지만, 피해자 업무과 여전히 관련성 있는 부서였습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담당 부서장에게 호소했지만, 추가 조치가 없었던 점도 지적했습니다.

이 때문에 인권위는 서울시장처럼 막강한 권력의 인물이 가해자일 경우 내부 고충 처리시스템이 무력화될 수 있음을 우려했습니다.

독립적이고 전문성이 있는 외부 조사 기구를 통해 공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성폭력 조사부터 조치까지 일원화…'권익조사팀' 출범

이에 지난 1월 서울시는 여성가족정책실 여성권익담당관 아래 4명 규모의 권익조사 TF를 만들었습니다. 그간의 준비를 거쳐 다음 달이면 정식 팀으로 출범합니다.

기존 성폭력 사건 때엔 인권담당관실에서 조사해 여성권익담당관실로 조사 결과가 통보되면 피해자 분리 등 조치가 취해지는 식이었습니다. 이를 모두 여성권익담당관실 산하에서 이뤄지도록 일원화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절차를 간단화하면 조사 중 피해 사실에 관한 정보의 보안이나 피해자 보호가 한결 쉬워질 것이라고 서울시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외부인 전문가들이 포함된 고충심의위원회의 권한도 강화할 방침입니다. 위원회 위원의 숫자도 늘리고, 법률가 등을 포함할 예정입니다.

위원회는 성폭력과 같은 내부 비위 사건이 발생해 조사가 이뤄지면 그 결과를 보고받습니다. 이후 비위 여부나 수사 의뢰 필요성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겠다는 겁니다. 인사위원회 등 비위에 대한 내부 징계나 처분 조치가 이뤄지기 전 외부인들이 사안을 들여다보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절차를 내실 있게 만들어 공정성을 높여보겠다고 합니다.

아직 구체성이 떨어지지만 지켜볼 일입니다.

 
서울시청서울시청

● 살아나갈 사람들의 몫, 서울시의 책임

박 전 시장이 숨지면서 사건의 진상규명이 멈췄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은 이 사건의 의미를 기억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반성하고 문제점을 찾아내 고쳐야 할 것입니다.

서울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책임 있는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이번 사건으로 상처 입은 사회 곳곳을 치유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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