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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취재] "유럽 가자" 이말에 속아 중졸된 축구 유망주.jpg

입력 2021-03-08 05:02 수정 2021-03-08 09:42

前프로축구 선수 도화성 사기 피해자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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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프로축구 선수 도화성 사기 피해자들의 이야기

유럽에서 축구 훈련을 받았을 만큼 '유망주'였던 조성협 전 선수. 도화성씨에게 사기를 당한 뒤 축구를 포기했다. 사진은 2019년 조씨가 자비를 들여 스웨덴에서 훈련을 받던 모습. [조성협씨 제공]유럽에서 축구 훈련을 받았을 만큼 '유망주'였던 조성협 전 선수. 도화성씨에게 사기를 당한 뒤 축구를 포기했다. 사진은 2019년 조씨가 자비를 들여 스웨덴에서 훈련을 받던 모습. [조성협씨 제공]
"크로아티아에 보내주겠다"

전직 프로축구 선수 도화성(41) 씨의 수법은 매번 비슷했습니다. 대학 진학을 앞둔 절실한 시기의 고등학교 선수들을 골랐습니다. 이들에게 '크로아티아 프로팀'이란 매력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부모에게 수천만 원의 돈을 요구했지만 돈을 받은 뒤에 체결된 계약은 없었습니다. 사기였던 겁니다.

◆축구 유망주에서 중졸 일용직으로
2011년 승부조작 혐의로 K리그에서 영구제명을 당한 도화성은 그 뒤에도 축구계에 머물며 '유럽 에이전트 활동'을 했습니다. 정식 에이전트가 아닌 '프리랜서 신분'이었습니다. 지난달 4일 사기 혐의로 인천지법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을 때까지 JTBC가 확인한 피해 선수만 3명입니다. 이들 중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크로아티아에 가려다가 중졸 일용직이 된 선수도 있습니다. 합격했던 대학을 포기한 뒤 축구를 그만뒀다가 독립 구단에서 뛰는 선수도 있습니다. 이들이 좁은 한국 축구계에서 용기를 내 JTBC 취재에 응한 이유는 "다시는 우리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 했습니다.

도씨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조성협(21) 전 선수입니다. 축구 유망주였던 조 전 선수는 2017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크로아티아로 갔습니다. 사기를 당해 중졸 학력이 됐고 축구를 포기한 뒤로는 일용직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지금은 인천의 한 공장에서 근무하며 방위사업체 지원을 준비 중입니다. 군대를 가고 싶어도 당시 규정상으론 학력 때문에 갈 수 없었습니다.

 
축구를 포기한 뒤 일용직으로 근무하던 조성협씨의 모습. [조성협씨 제공]축구를 포기한 뒤 일용직으로 근무하던 조성협씨의 모습. [조성협씨 제공]
도씨가 구속된 것은 조씨 측의 고소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지난 4일 인천지법 판결에 따르면 도씨는 "크로아티아·세르비아 구단에 입단시켜 주겠다"며 조씨 가족으로부터 총 7900만원을 받았습니다. 도씨가 현재까지 변제한 금액은 이중 190만원입니다. 조씨 측은 "보낸 현금까지 더하면 실제 사기금액은 1억원에 달한다"고 했습니다.

조 전 선수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7년 도씨에게 유럽 진출 제안을 받았습니다. 조 전 선수는 부산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꼭 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축구 선수들에게 대학 진학을 앞둔 고2~고3은 미래가 결정되는 가장 절실한 시기입니다.

◆"전직 축구 선수라 사기칠리 없다 생각"
조 전 선수는 JTBC와의 통화에서 "전직 프로축구 선수가 사기를 칠 리 없다고 생각했다"며 "부모님을 3일간 설득했다"고 말했습니다. 조 전 선수의 부모님은 도씨의 제안에 1억 원을 대출 받았습니다. 조 전 선수의 아버지인 조모씨는 "한국에서 축구를 하려면 인맥, 학연 등이 중요하다"며 "유럽엔 그런 것 없이 실력으로만 평가받을 수 있어 아들을 보낸 것"이라 했습니다.

 
조성협 전 선수와 도화성씨가 유럽 진출 등을 두고 주고받은 카톡. [조성협 제공]조성협 전 선수와 도화성씨가 유럽 진출 등을 두고 주고받은 카톡. [조성협 제공]
하지만 그 뒤부터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조 전 선수는 2017년 5월 크로아티아로 출국해 어느 팀에도 입단하지 못하고 한 달 만에 귀국했습니다. 같은해 8월과 12월, 2018년 1월에도 다시 크로아티아로 출국했지만 역시 어느 팀과도 계약하지 못했습니다. "기다려라""팀을 찾고 있다"는 말만 들었고 성사된 계약은 없었습니다. 당시 현지에서도 주로 호텔에 머물렀고 생활비도 스스로 충당했습니다. 축구 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몸도 마음도 망가졌습니다.

조 전 선수는 직접 도씨가 입단을 약속한 구단에 이메일 등으로 연락을 했지만 아무 답변도 듣지 못했습니다. 이때서야 사기를 알아챘다고 합니다. 도씨는 조 전 선수 부모님에겐 조씨가 유럽으로 떠났다고 말했지만 실제 조 전 선수를 한국에 머물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조 전 선수는 당시 감금의 공포를 느끼며 "휴대폰을 꺼놓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축구 못하게 할 수 있다" 협박성 발언 들어

당시 고등학생이던 조 전 선수는 도씨에게 제대로 항의조차 못했습니다. 도씨는 승부조작으로 퇴출됐지만 여전히 축구계의 대선배였기 때문입니다. "허튼짓 하지마라""나만 따라와라""축구를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협박성 발언도 들었다고 했습니다. 여전히 '인맥'이 중요한 한국 축구계에서 전직 프로축구 도화성의 이름은 너무 크게 다가왔습니다. 도씨는 축구계에서 여전히 끈끈한 인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2011년 승부조작으로 K리그에서 퇴출되기 전까지 선수활동을 했던 도화성씨의 모습. [연합뉴스]2011년 승부조작으로 K리그에서 퇴출되기 전까지 선수활동을 했던 도화성씨의 모습. [연합뉴스]
조 전 선수는 용기를 내 언론에 실명을 공개한 이유로 "나 같은 피해자가 다신 없어야 하기 때문"이라 말했습니다. 조 전 선수는 지난해엔 스스로 오스트리아 하부리그 팀에 지원을 했습니다.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사태가 터지며 방출됐고 축구를 포기했습니다. 조 전 선수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아버지에게 돈을 더 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며 "내가 장남이다.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조 전 선수의 아버지는 "내가 생각이 짧았다. 축구를 포기한 아들을 보면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며 울먹였습니다. 조 전 선수의 아버지는 사기를 당한 이후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직 부산에서 떡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달 300만원씩 갚아 최근에서야 1억원 대출을 모두 처리했다고 합니다. 조씨 측은 법률대리인을 구해 지난 2일 도씨에게 사기금액 7900만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스웨덴에서 자비로 훈련을 받던 조성협 전 선수의 모습. [조성협 제공]스웨덴에서 자비로 훈련을 받던 조성협 전 선수의 모습. [조성협 제공]
◆사기당한 피해자들 "축구 그만두고 싶었다"
조 전 선수와 마찬가지로 도씨에게 사기를 당했던 A,B 선수는 JTBC에 익명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아직 축구를 하고 있어 인터뷰 자체에도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들은 고3 때 도씨에게 크로아티아 진출 제안을 받았고 합격한 대학까지 포기하며 출국했습니다. 하지만 조 전 선수와 거의 똑같은 수법으로 사기를 당했습니다. "오늘이 계약이다""내일이 계약이다"는 말만 듣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선수는 이런 경험을 한 뒤 "축구가 너무 싫어져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전직 프로축구 선수에게 배신을 당해 축구에 대한 모든 열정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평생동안 해 온 축구를 그만둘 수 없어 현재는 지방 독립 구단 등에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인 B선수는 "도화성이 가장 절박한 사람들만 골랐던 것 같다"며 "어떤 고등학교 선수도 전직 프로축구 선수가 유럽진출 제안을 하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K리그 상벌위원인 김가람 변호사(법무법인 지혁)는 "도화성씨의 경우 대학 입시를 앞둔 절실한 수험생들을 노린 것으로 보아 죄질이 좋지 않다"며 "해외 진출의 경우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에이전트를 통해 진행하지 않으면 사기를 당하기 쉽상"이라 전했습니다.

 
조성협 전 선수 가족이 도화성씨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소장 중 일부. [조성협 측 제공] 조성협 전 선수 가족이 도화성씨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소장 중 일부. [조성협 측 제공]
◆"진심으로 유망주 돕는 에이전트가 꿈"
조 전 선수는 돈을 벌어 도씨와는 다른 유럽 에이전트가 되는 게 꿈이라 했습니다. 조 전 선수는 "거짓되지 않게 유럽 진출을 꿈꾸는 축구 유망주를 돕는 에이전트가 될 것"이라 했습니다. 1심에서 사기 혐의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은 도씨는 지난달 항소했습니다. 1심 재판에선 혐의를 부인했었습니다. JTBC는 도씨의 1심 변호를 맡았던 변호인에게 항소 이유를 물었지만 "현재는 사임한 상태"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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