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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새로 개통한 도로에서 숨진 신문배달원…유족이 LH에 분통터뜨린 사연은?

입력 2021-03-04 15:20 수정 2021-03-04 17:00

유족 "진행 방향 바뀐 사실 알기 어려워…LH 안전조치 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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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진행 방향 바뀐 사실 알기 어려워…LH 안전조치 미흡"

설 연휴 전날인 지난달 10일 아침 7시 30분. 경기 의정부시 고산지구 한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신문 배달을 가던 권 모(58) 씨가 마주 오던 SUV 차량에 치여 숨졌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둔 권 씨는 20년간 신문 배달 지국을 운영하며 매일 아침 직접 배달업무까지 했습니다. 성실한 가장이었던 그는 지난 9개월 동안 매일 다니던 길에서 의도치 않은 역주행을 하다 사고를 당해 숨졌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2월 10일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한 도로에서 역주행하던 오토바이가 SUV와 부딪혔다. 이 날은 왕복 6차선 이 도로가 개통한 다음날이었다.〈사진=한국토지주택공사(LH) 제공〉2월 10일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한 도로에서 역주행하던 오토바이가 SUV와 부딪혔다. 이 날은 왕복 6차선 이 도로가 개통한 다음날이었다.〈사진=한국토지주택공사(LH) 제공〉

◇ 매일 다니던 길, 사고 당일 '역주행' 한 까닭은?

사고가 난 왕복 6차선 도로는 사고 발생 전날 오전까지 9개월 동안 공사 중이었습니다. 공사 기간에는 한쪽인 3개 차선만 열었습니다. 1차선은 상행선, 2차선은 중앙분리용 라바콘, 나머지 3차선은 하행선으로 운영됐습니다. 9개월 동안 권 씨를 비롯해 인근 마을 쪽에서 이 도로로 들어서는 차는 모두 진입로에서 좌회전해 1차선으로 올라타야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달 9일 오후 2시 30분 왕복 6차선이 모두 개통했고, 임시로 상·하행선으로 나뉘었던 3개 차선이 하루아침에 모두 하행선으로 바뀐 겁니다.

사진 속 큰 도로의 좌측 3개 차선은 2월 9일 개통 전까지는 공사 때문에 폐쇄된 상태였다. 공사 기간 중에는 우측 3개 차선의 1차선은 상행선, 2차선은 중앙분리용 라바콘, 나머지 3차선은 하행선으로 운영됐다.〈사진=유족 제공〉사진 속 큰 도로의 좌측 3개 차선은 2월 9일 개통 전까지는 공사 때문에 폐쇄된 상태였다. 공사 기간 중에는 우측 3개 차선의 1차선은 상행선, 2차선은 중앙분리용 라바콘, 나머지 3차선은 하행선으로 운영됐다.〈사진=유족 제공〉

하지만 주로 아침 배달에만 도로를 이용하던 권 씨는 개통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로 개통 다음날인 지난달 10일 권 씨는 평소처럼 오토바이를 몰고 진입로에서 좌회전해 도로에 진입 후 1차선으로 상행 운행했습니다. 도로 개통 이후니 결과적으로 역주행한 겁니다. 권 씨가 타던 오토바이는 정상 주행하던 SUV 차량과 그대로 부딪혔습니다.

◇ 유족 "LH가 사고 예방조치 제대로 했어야"

권 씨의 자녀와 조카 등 유족들은 운전자들이 헷갈릴 수 있다는 게 충분히 예상되는데도 LH의 안전 조치가 미흡했다고 지적합니다. 사고 전날 왕복 6차선 도로가 개통했는지, 그래서 평소 다니던 대로 운행하면 역주행이 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고 후 현장을 방문한 유족은 "고작 현수막 몇 개만 있었고, 이마저도 운전자들이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또 "도로를 개통했으면 마을에서 도로로 가는 진입로를 막거나 '역주행 금지' 제대로 알렸어야 했다"며 "바닥에 페인트로 '역주행 금지' 표시를 하고, 표지판을 세운 것도 사고가 난 이후"라고 말했습니다.
사고 이후 LH의 대응 태도에도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유족들은 "LH 현장소장이나 서울지역본부에서도 충분한 안전조치를 했다고만 말하고 있다"며 "사고 이후 뒤늦게 추가 조치를 한 것은 결국 처음 조치가 미흡했다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마을에서 사고가 난 도로로 가는 진입로. LH는 사망사고가 나자 바닥에 '역주행 금지' 페인트 표시(왼쪽 사진)를 하고, 진입을 막는 플라스틱 보호벽(오른쪽 사진)을 추가 설치했다.〈사진=유족 제공〉마을에서 사고가 난 도로로 가는 진입로. LH는 사망사고가 나자 바닥에 '역주행 금지' 페인트 표시(왼쪽 사진)를 하고, 진입을 막는 플라스틱 보호벽(오른쪽 사진)을 추가 설치했다.〈사진=유족 제공〉

◇ 시행사 LH "개통 후 도로 모습 확연히 달라"

의정부 고산지구 도로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아직 경찰이 조사 중인 사건"이라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LH는 JTBC의 문의에 "역주행 방지를 안내하는 현수막이 사고 지점 인근에 3개 설치돼있었고, 개통 후 도로 상태는 개통 전과 차이가 있다"며 운전자가 혼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도로 개통 전 의정부경찰서가 현장을 방문해 개통을 허가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다만 마을에서 도로로 나가는 진입로에 방호벽을 추가 설치한 것은 사고 발생 후 8시간 뒤인 오후 3시 30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또 다른 운전자 "나도 개통 몰라 역주행…운 좋아 사고 안 났다"

유족들이 LH의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또 있습니다. 사고 발생 2시간 전쯤 역시 도로 개통 사실을 모르고 역주행을 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권 씨처럼 이 지역에서 신문지국을 운영하는 염 모 씨는 JTBC와의 통화에서 "사고 발생 1시간 반쯤 전인 새벽 6시에 나도 똑같이 그 길로 배달을 갔다"며 "나도 개통 사실을 몰라 역주행을 한 것이고, 결과적으로 운이 좋아 사고가 안 났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고 말했습니다. 염 씨는 "현수막 몇 개가 있었다고 해도 운전자 입장에서 평소처럼 진입하면 안 된다는 걸 몰랐다면 그 책임은 시행사 LH에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 경찰 "아직 사고 1차 조사 중"

취재진이 자문을 구한 법무법인 정진 황귀빈 변호사는 "도로와 같은 공공시설의 설치 또는 관리상 하자로 손해를 입은 경우, 국가배상법 5조에 따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며 "LH 측에서 당시 현장 상황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통상 갖추어야 할 충분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사고 당사자에 대하여 국가배상법에 따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사고 지점 관할인 의정부경찰서 관계자는 오늘 오전 JTBC에 "아직 사고 1차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단계"라며 "LH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1차 조사 이후에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LH는 "성실히 조사에 임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가혁 기자(gawang@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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