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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비관론과 싸워 온 20년…첫 국산 전투기 '카운트다운'

입력 2021-03-02 17:08 수정 2021-03-0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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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최신예 국산 전투기를 개발할 것입니다.
2015년까지 국산 차세대 전투기를 만들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2001년 3월 공군사관학교 임관식)

"그동안의 종이비행기가 실제 비행기로 바뀌어서 나오는 거고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류광수 한국항공우주산업 고정익사업부문장, 2021년 2월 KF-X 시제기 조립현장 공개 행사)

국산 전투기를 우리 손으로 개발해보자는 군 통수권자의 말이 현실이 되기까지 꼬박 2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국형 전투기 'KF-X'의 첫번째 시제기가 다음달 처음 모습을 드러낼 예정입니다.

지난달 24일, 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만난 KF-X 연구개발진들은 "설계도면 위에만 존재하던 종이비행기를 형상화 시켜서 우리가 연구했던 성능이 나오는 것을 검증하게 됐다"며 설레는 모습이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며 "연구했던 것을 검증하는 또 하나의 시작 단계"(정광선 방위사업청 한국형전투기사업단장)라고 했지만 개발진의 안내를 받아 둘러본 KF-X 조립 현장에선 연구진의 자부심과 기대감을 한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립이 이뤄지고 있는 고정익동에서 만난 이일우 한국항공우주산업 KF-X 기술책임 상무는 "현재 설계상의 결과로는 모든 성능 검증을 충족하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면서 "향후 지상 시험과 시험비행을 통해 계속해서 검증해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난달 24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항공기 조립동에서 엔지니어들이 다음 달 출고를 앞둔 KF-X 1호 시제기의 막바지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지난달 24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항공기 조립동에서 엔지니어들이 다음 달 출고를 앞둔 KF-X 1호 시제기의 막바지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페인트칠만 남긴 1호기…막바지 작업 한창

축구장 3개를 이어 붙인 크기(2만 1600㎡)의 고정익동에선 90% 이상 완성된 시제기 1호와 그 뒤를 이어 조립에 속도를 내고 있는 2호, 3호기가 나란히 서서 엔지니어들의 손길을 받고 있었습니다. 1호기는 내일(3일)로 예정된 도색 작업까지 마친 뒤 엔진을 재장착하고 랜딩 기어와 날개 등의 기능을 다시 한 번 점검하면 모든 공정을 마치게 됩니다. 고정익동에선 비행 시제 1~6호기와 지상 시험 전용 시제기 2대 등 총 8대가 동시에 제작되고 있었는데 각각 다른 용도의 시험에 최적화 된 다른 외형을 가진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이 중 시제기 4호기와 6호기는 2명의 조종사가 탑승할 수 있는 '복좌기' 형태로 제작돼 '공대지'(空對地·공중에서 땅을 향하는 공격) 임무를 시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가까이에서 본 시제기의 첫인상은 '예상했던 것보다 크지 않고 날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길이 16.9m·폭 11.2m·높이 4.7m'의 KF-X는 우리 군의 주력 전투기인 F-16 보다는 크고 F-15K보다는 작다고 하네요.

◇외국 방산업체의 방해공작…비관론과 싸워온 20년

이제 완성된 전투기의 형태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게 될 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그야말로 멀고도 험난했습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우리 손으로 만든 국산 전투기 사업을 공식화 한 뒤에도 무려 20년이나 더 걸린 겁니다. 사업을 추진하는 매 시기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는 식의 비관론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개발 비용만 8조 8천억원, 양산에 들어가면 추가로 9조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가는 천문학적 단위의 개발비에 '외국에서 사오는 게 싼 것 아니냐'는 논리와도 싸워야 했습니다.

사천에서 만난 한국항공우주산업의 한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전투기를 팔아야 하는 외국 방산업체들의 방해 공작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 당시엔 여기까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가 과연 전투기를 개발해서 하늘에 띄울 수 있겠냐, 사오는 게 훨씬 남는 장사라는 인식도 팽배했다"라고 말이죠.

 
KF-X의 조립 과정을 가상현실(VR) 화면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VR룸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전투기에 쓰인 부품과 미사일 등 무장 체계를 설명하고 있다.KF-X의 조립 과정을 가상현실(VR) 화면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VR룸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전투기에 쓰인 부품과 미사일 등 무장 체계를 설명하고 있다.


◇논문 뒤져가며 만든 국산 부품…국산화율 65% 달성

그럴수록 더욱 독하게 매달렸다는 게 연구원들의 회상입니다. 2014년 미국의 최대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으로부터 F-35 전투기 수십 대를 구입하는 조건으로 전투기 개발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전수 받기로 했지만 미국이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결국 전투기에 탑재할 레이더와 추적 장비 등 핵심 기술을 모두 스스로 개발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기술 이전을 거부한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 ?적외선 탐색·추적장비(IRST) ?전자광학 표적 획득·추적장비(EO TGP) 등 4개 핵심 기술은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으로 국내 업체 한화시스템이 개발을 맡았고, 조종사들이 비행을 모의로 훈련하는 시뮬레이터(HQS), 비행 전 감항인증 시험장비인 아이언버드(Iron bird)도 국내 연구원들이 관련 논문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자체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이런 피·땀·눈물 덕에 KF-X는 65%(비용 기준)라는 높은 수준의 부품 국산화율을 달성했습니다. 2016년 사업 착수 이후 한국항공우주산업을 비롯한 1차 협력업체에서만 최소 1만 1천여명의 고용 효과를 냈고, 생산 유발 효과가 약 24조 4000억원에 달하는 등 경제적 파급 효과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전투기가 비행 환경에서 받는 외부 하중을 지상에서 시험하고 전투기 내부의 세부 계통을 점검할 수 있는 장비인 '아이언 버드'의 모습. 미국이 기술이전을 거부해 국내 기술로 처음 개발됐다.전투기가 비행 환경에서 받는 외부 하중을 지상에서 시험하고 전투기 내부의 세부 계통을 점검할 수 있는 장비인 '아이언 버드'의 모습. 미국이 기술이전을 거부해 국내 기술로 처음 개발됐다.

◇아직도 먼 갈 길…"시험비행만 2200여회… 날씨 변수, 하늘에 맡겨"

시제기 조립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지만 실제 KF-X가 차세대 우리 군의 주력 전투기로 자리매김 하기 까지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다음 달 시제 1호기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와도 최소 1년 간 지상시험을 거쳐 내년 하반기에야 첫 시험비행에 나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제 1~6호기가 2026년까지 4년 간 2200회가 넘는 시험비행을 모두 무사히 마쳐야만 기본적인 비행 성능과 공중에서의 전투 능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KF-X의 개발 책임자 격인 류광수 한국항공우주산업 고정익사업부문장은 이 과정을 하늘에 맡긴다고 표현했습니다. "앞으로 나가야 되는 비행시험이 2200여회 인데 하늘에 빌어야 되는 게 있고요. 날씨가 중요하기 때문에 날씨에 대한 변수만 없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습니다

KF-X는 2026년까지 시험 비행을 마치고 그해 6월 1단계 체계 개발을 마치게 됩니다. 이후엔 2032년까지 모두 120대의 KF-X를 만들어 공군에 인도할 예정입니다. 국산 전투기 수출도 염두에 두고 있는데요. 정광선 사업단장은 "2000년대 초·중반 사업 추진을 검토할때 300~500대 정도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면서 "개발이 완료된 뒤 에어쇼에서 KF-X를 선보이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KF-X 개발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3번째로 전투기를 개발한 국가가 되는 겁니다. 전투기 국산화라는 목표에 더해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 항공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날이 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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