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전국24시] "허리를 철사로 매어 끌고 가니" 처절했던 독립운동기록 복원

입력 2021-02-25 15:46 수정 2021-02-25 18:36

만세운동 현장부터 연행과 투옥, 재판까지 1년간의 기록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만세운동 현장부터 연행과 투옥, 재판까지 1년간의 기록

"일본의 득세함을 감당할 수 없어 순사(巡査) 순검(巡檢) 폭력에 떨치고 일어나니
불쌍한 백성들은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그 남은 백성들은 유죄 무죄를 가려 형벌에 처해졌다.
분노한 백성들을 더욱 조여 매어 옥에 가두고 허리에 철사로써 줄줄이 매어서 끌고 가니..."

1919년 3·1운동 무렵 생사를 넘나드는 독립운동가들의 투쟁 모습이 담겨있는 기록이 공개됐습니다.
국가기록원은 3·1절 102주년을 맞아 경남 김해시의 독립운동 기록 〈김승태 만세운동가〉를 복원해 공개했습니다.

 
"일본의 득세함을 감당할 수 없어"로 시작하는 기록 일부분.〈사진=국가기록원〉"일본의 득세함을 감당할 수 없어"로 시작하는 기록 일부분.〈사진=국가기록원〉

독립운동가 김승태 선생의 모친 조순남 여사가 1년에 걸쳐 아들과 동료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한 모습을 직접 보고 겪은 후 이를 기록했습니다. 총 37쪽 분량으로 장유만세운동 전개과정, 일본 기마대 연행, 투옥 및 재판 과정, 출소 이후 분위기 등 긴박했던 당시 상황이 자세히 담겨있습니다. 김승태 선생은 1919년 4월 12일 장유 무계리 장터에서 선두로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 시위행진을 하였고, 이로 인해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습니다.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상태였던 복원 전 모습.〈사진=국가기록원〉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상태였던 복원 전 모습.〈사진=국가기록원〉

〈김승태 만세운동가〉는 일부가 찢어지고 잉크가 심하게 번져 글자를 읽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위 사진 참조) 지난해 5월 김해시가 국가기록원에 복원 지원을 의뢰했고 국가기록원이 3개월의 노력 끝에 복원에 성공했습니다. 최재희 국가기록원 원장은 "고귀한 독립운동 정신과 의미를 되새길 소중한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복원된 〈김승태 만세운동가〉는 국가기록원 홈페이지(www.archives.go.kr)에서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