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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취재] '8살 무명녀' 사망신고 날, 법 개정 시작한 국회.txt

입력 2021-02-25 15:20 수정 2021-02-25 18:36

미혼부 단체 "아이들 생명 위협받는데, 너무 늦은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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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부 단체 "아이들 생명 위협받는데, 너무 늦은 대처"

친모에 의해 살해된 8살 미출생신고 아동 최모양과, 딸의 죽음을 알게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친부 최씨의 영정사진. [JTBC 캡처] 친모에 의해 살해된 8살 미출생신고 아동 최모양과, 딸의 죽음을 알게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친부 최씨의 영정사진. [JTBC 캡처]
"살아있었을 때 어떻게든 출생신고를 하려고 했는데, 늦었죠. 늦어도 너무 늦었죠"

지난달 인천에서 엄마에 의해 목숨을 잃은 미출생신고 아동 최모(8)양에 대해 24일 뒤늦은 출생신고가 이뤄졌습니다. 살해 혐의로 구속된 엄마 백모씨를 주임 검사가 설득해 아이의 사망신고 전 출생신고를 하게 한 겁니다.

◆사망진단서 '무명녀' 뒤늦게 이름 얻었다
사망진단서에 '무명녀'로 적혔던 최양은 생을 마감한 뒤에야 이름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최양의 친삼촌인 최모씨는 별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최씨는 "(아이가) 살아있었을 때 어떻게든 출생신고를 하려 했다"며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했습니다.

최씨의 친형이자 백씨와 사실혼 관계였던 최양의 친부인 고(故) 최모씨는 생전 백씨에게 출생신고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백씨가 법적 남편과 혼인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다며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숨진 사실을 알게된 날 최씨는 "딸에게 미안하다"며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친모 백모씨를 설득해 최양의 출생신고를 하게 한 김준성 인천지검 검사. [JTBC캡처]친모 백모씨를 설득해 최양의 출생신고를 하게 한 김준성 인천지검 검사. [JTBC캡처]
◆최양 출생·사망신고 날, 국회 법 개정 시작
최양이 뒤늦은 출생신고를 한 날 국회도 출생신고에 관한 법안 개정 작업에 나섰습니다. 현행법상 친모가 협조하지 않을 경우 미혼부의 출생 신고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아이의 출생신고는 엄마가 합니다. 아빠가 하려면 엄마와 연락이 닿지 않는 엄마의 실종 상태를 입증해야 합니다. 법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숨진 최양은 8년간 '무명녀'로 살았습니다. 기본적인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고,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가지 못했습니다.

최양이 숨진 뒤 JTBC 등 언론에서 집중적인 보도가 시작되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1소위는 24일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제2의 무명녀를 막겠다는 겁니다. 여야가 합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친모가 정당한 사유없이 출생신고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가 미혼부 출생신고의 조건으로 추가됐습니다. 출생신고의 기준을 완화해 준 겁니다.

 
최양의 사망진단서에 적혔던 '무명녀'라는 이름. [JTBC 캡처] 최양의 사망진단서에 적혔던 '무명녀'라는 이름. [JTBC 캡처]
◆국회 개정안에, 미혼부 단체 "미흡한 법안"
입법 과정에서 대법원은 "미혼부와 아이의 유전자만 일치하면 출생신고를 해주자"는 파격 제안을 했지만 국회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점진적 개정안을 택했습니다. 이렇게 아이가 숨진 사실이 알려지고 한달만에 법 개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회는 그 이전엔 왜 적극적이지 못했을까요.

JTBC가 만나 본 미혼부들은 출생신고를 못한 자신의 아이들을 '유령'이라 표현했습니다. 내 눈에는 보이지만 국가에겐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최양은 뒤늦게 이름을 얻었지만 부모의 성(姓)은 따르지 못했다는 겁니다. 현행법상 백씨의 법적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백씨는 출생신고 전 검사에게 "아이가 내 성을 따를 수는 없느냐"고 물었지만 현행법상 불가능했습니다. 민법 제781조에 따르면 자녀가 엄마의 성을 따르려면 혼인신고 전 부부가 협의해 결정해야 합니다.

 
생전 다정하게 지냈던 최양과 친부 최씨의 모습. 택배 배달을 했던 최씨는 자신의 모든 여유시간을 딸과 함께 보냈었다. [JTBC캡처] 생전 다정하게 지냈던 최양과 친부 최씨의 모습. 택배 배달을 했던 최씨는 자신의 모든 여유시간을 딸과 함께 보냈었다. [JTBC캡처]
◆출생신고도 입법도 너무 늦었다
세상을 떠나서야 이름을 찾은 최양을 보며,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유가족의 답답함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지환 '아빠의품(싱글대디가정지원협회)' 대표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의 삶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회가 조금 더 과감하게 미혼부의 출생신고를 허용해줘야 한다. 대법원의 제안도 반영되지 않은 지금 개정안엔 아쉬운 점이 많다"며 답답함을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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