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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유전자 맞으면 출생신고" 與도 놀란 대법원의 제안

입력 2021-02-23 20:18

대법 "유전자 검사 맞으면 미혼부 출생신고 허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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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유전자 검사 맞으면 미혼부 출생신고 허용해야"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로 세상을 떠난 8살 최양의 영정사진. [JTBC 캡처]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로 세상을 떠난 8살 최양의 영정사진. [JTBC 캡처]
"대법원의 제안이 파격적이라 여당 의원들도 놀랐다"

23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선 현행 출생신고 제도 개선을 위한 법안 심사가 진행됐습니다. 지난달 인천에서 친모에 의해 살해된 8살 최모양이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사망진단서에 '무명녀'라 적힌 사실이 알려진 뒤 촉발된 논의입니다.

이날 심사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건 여야 의원도 법무부도 아닌 바로 대법원 법원행정처입니다. 법사위 소속 야당 관계자는 "대법원이 여당 의원들도 놀랄만한 파격적인 제안을 들고왔다"고 전했습니다. JTBC는 대법원의 의견서를 입수했습니다.

최양의 사망진단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무명녀'로 적혀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JTBC 캡처]최양의 사망진단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무명녀'로 적혀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JTBC 캡처]
◆인천 '무명녀' 사건이 촉발한 출생신고 논의
현행 출생신고 제도에 따르면 미혼부의 경우 친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아이의 출생신고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2015년 이른바 '사랑이법'이 통과되며 미혼부에게도 출생신고의 길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친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JTBC가 만난 미출생신고 아동의 미혼부들은 많은 경우 친모와 함께 살다 헤어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가 출생한 의료기관에 엄마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가 모두 등록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법은 있지만 미혼부들의 출생신고는 불가능했습니다.

'무명녀'로 숨을 거뒀던 최양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친부 최모씨가 친모 백모씨에게 출생신고를 수차례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전 남편과 법적 관계를 정리하지 않은 백씨가 거부했고 아이는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습니다. 최양은 기본적인 의료 혜택도 받지 못했고 초등학교도 못갔습니다. 친부 최씨는 아이의 죽음을 알게 된 날 "딸에게 미안하다"며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최양의 친부가 남긴 카톡. 엄마 백씨에게 아이의 '출생신고를 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JTBC 캡처]최양의 친부가 남긴 카톡. 엄마 백씨에게 아이의 '출생신고를 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JTBC 캡처]
◆여야 의원들 기존 법안 수정안 제시
이날 법사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주로 현행 법안의 내용을 일부 수정하는 개정안을 제시했습니다. 미혼부의 출생신고 조건을 규정한 가족관계의 등록에 관한 법률 제57조 2항의 '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를 '모의 소재불명, 모가 정당한 사유 없이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백혜련, 김미애 의원 법안)로 수정하거나 '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등을 종합하며 모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강훈식 의원안)'로 완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존 법안을 약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데 입법 과정에서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파격적 제안을 내놨습니다. 법령에서 57조 2항을 전부 삭제하고 친부(미혼부)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녀와의 혈연 관계만 확인되면 가정법원을 통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겁니다. 모든 절차를 예외 없이 '유전자 검사'만으로 단축시키는 파격적 제안입니다.

대법원이 23일 국회 법사위에 제안한 출생신고 입법 의견서. [JTBC]대법원이 23일 국회 법사위에 제안한 출생신고 입법 의견서. [JTBC]
◆대법원 "유전자만 맞으면 출생신고 허용해주자"
대법원은 "미혼부가 친모의 인적사항을 아는 경우에도 혼외자의 등록을 허용해 주자"고 했습니다. 대법원은 법률적 용어로 "엄마의 경우 출산 사실만으로 법률상 엄마의 지위를 인정받듯, 부의 경우에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법률상 아빠의 지위를 보장해주는 것"이라 설명했습니다.

대법원의 제안은 기존 법안을 수정하는 여야 의원들의 입장보다 한발짝 더 나아간 것입니다. 법사위 소속 야당 관계자는 "여당 의원들이 대법원의 제안을 듣고 매우 놀랐다"며 "새로운 법안의 부작용은 없느냐며 물었다"고 했습니다. 실제 여당 법사위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대법원의 제안은 논의가 되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라 내일 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8살 최양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친모 백모씨가 지난달 영장실질심사를 받던 모습. 백씨는 살인죄로 구속기소됐다. [JTBC 캡처]8살 최양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친모 백모씨가 지난달 영장실질심사를 받던 모습. 백씨는 살인죄로 구속기소됐다. [JTBC 캡처]
◆"제2의 무명녀 사건 막아야"
이날 회의 사정에 정통한 대법원 관계자는, "왜 이런 제안을 했냐"는 JTBC의 질문에 "인천의 무명녀 사건을 잘 알고 있다"며 "그런 비극이 다신 발생하지 않도록 고민하다 이런 입법 제안을 검토했다"고 말했습니다. 법사위 소위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도 출생신고 제도 개선에 있어선 뜻을 함께 했다고 합니다. 이르면 내일 법사위 회의에서 법안 통과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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