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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무명녀' 출생신고 해도 '성(姓)'은 부모 못따르는 이유

입력 2021-02-23 14:14 수정 2021-02-2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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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로 세상을 떠난 8살 최양의 영정사진. [JTBC 캡처]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로 세상을 떠난 8살 최양의 영정사진. [JTBC 캡처]

"부모의 성(姓)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현행법상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지난달 인천에서 엄마에 의해 목숨을 잃은 미출생신고 아동 최모(8)양에 대해 검찰이 출생신고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정확히는 살해 혐의로 구속된 엄마 백모씨를 주임 검사였던 김준성 검사가 설득해 아이의 사망신고 전 출생신고를 하기로 한겁니다.

◆주임검사 "무명녀란 사실이 너무 안타까워"

백씨가 구속된 상태라 김 검사가 백씨의 위임장을 받아 구청에 관련 서류를 제출할 예정입니다. 김 검사는 "딸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죽은 아이가 사건기록상 '무명녀'로 되어 있는 게 안타까워 백씨를 설득했다"고 했습니다. 최양의 친부는 최양이 살해된 사실을 알게된 날 "딸에게 미안하다"며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뒤늦게 출생신고는 하게 됐지만 고(故) 최양은 현행법상 친부모의 성(姓)으로 출생신고와 사망신고를 하지 못합니다. 평생 불리던 이름이 아닌 모르는 남성의 성으로 출생신고와 사망신고가 될 예정입니다.

 
최양의 친모를 설득해 출생신고를 하게 한 김준성 인천지검 검사의 모습. [JTBC캡처]최양의 친모를 설득해 출생신고를 하게 한 김준성 인천지검 검사의 모습. [JTBC캡처]

◆출생신고 하지만, 성(姓)은 부모 못따른다

아이의 친부모가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였고, 백모씨가 전 남편과 법적 부부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최양은 백씨의 법적 남편인 A씨의 성을 따르게 됩니다. 백씨의 법적 남편은 법원에 최양이 자신의 친딸이 아니란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최양의 성은 바뀌지 않습니다. 최양의 친부도 사망했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이 닫혔습니다.

백씨는 법적 남편과 10년째 연락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백씨는 김 검사에게 "내 성인 '백씨'로 아이의 출생신고와 사망신고를 할 수 없냐"며 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 검사는 "현행법상 어쩔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민법 제781조에 따르면 자녀가 엄마의 성을 따르려면 혼인신고 전 부부가 협의해 결정해야 합니다.

◆엄마 성은 혼인신고 전 협의해야 가능

혼인 신고를 할 때 이 부분을 협의하지 않았다면 아이는 무조건 아빠의 성을 따라야 합니다. 검사 출신인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는 "자녀가 엄마 성을 따르게 하라면 왜 꼭 혼인신고 전에 협의를 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아이를 낳은 뒤 부부가 그때마다 협의를 해 결정해야 하는게 맞다"고 했습니다.

 
최양의 사망진단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무명녀'로 적혀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JTBC캡처]최양의 사망진단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무명녀'로 적혀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JTBC캡처]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도 지난해 5월 "자녀의 성을 부모 협의로 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라"며 민법 781조의 전면 개정을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법개정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무명녀' 사건 출생신고 모든 허점 드러내

최양의 사망과 뒤늦은 출생신고는 한국 출생신고 제도의 여러 허점을 드러냅니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미출생신고' 아동을 지자체에서 발견하기 조차 어렵습니다. 최양이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최양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알려졌습니다. 아이가 출생을 하면 자동으로 출생신고가 되는 일부 선진국과 달리 부모가 직접 신고를 해야 출생신고가 됩니다.

이번 사건은 또한 사실혼 관계로 아이를 낳은 미혼부가 상대 여성의 동의 없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기 매우 어려운 점도 드러냅니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법률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아이의 출생신고는 엄마가 합니다. 아빠가 하려면 엄마와 연락이 닿지않는 엄마의 실종 상태를 입증해야 하는데 법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최양의 친부가 남긴 카톡. 엄마 백씨에게 아이의 '출생신고를 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JTBC캡처]최양의 친부가 남긴 카톡. 엄마 백씨에게 아이의 '출생신고를 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JTBC캡처]

◆생전 친부 카톡엔 "출생신고 해달라"

최양의 친부인 최씨는 숨지기 전까지 엄마 백씨에게 생활비를 보내며 수차례 아이의 출생신고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JTBC가 입수한 최씨의 생전 카톡에서 최씨는 아이가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고 걱정했습니다. 최양의 친삼촌인 최모씨는 "아이가 살아있을 때 어떻게든 출생신고를 하려했지만 백씨가 거부했다"며 "늦어도 너무 늦은 출생신고"라고 했습니다. 별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국회는 최양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법개정에 나섰습니다. 여야 의원들은 최양의 사건이 '인천 무명녀'란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출생신고 관련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그중엔 아이가 출생한 의료기관에서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면 자동으로 출생신고가 되는 법. 엄마나 아빠 모두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법. 엄마가 정당한 이유로 출생신고를 거부할 경우 아빠가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법안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모두 23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서 논의될 예정입니다. 관련 법안 중 하나를 대표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이번에는 반드시 출생신고 제도의 허점을 메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8살 최양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친모 백모씨가 지난달 영장실질심사를 받던 모습. 백씨는 살인죄로 구속기소됐다. [JTBC캡처]8살 최양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친모 백모씨가 지난달 영장실질심사를 받던 모습. 백씨는 살인죄로 구속기소됐다. [JTBC캡처]

◆국회, 23일 출생신고 법안 논의

하지만 법안이 국회 상임위를 넘어 본회의 문턱까지 다다를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여야 의원들은 기자에게 "이번은 다르다. 꼭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과 법무부 등에선 민법 개정에 매번 '신중론'을 펴왔습니다. 시민들의 관심이 식으면 이런 제도 개선 법안들은 의원들의 관심사에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여야 의원들의 말이 진실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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