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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한 골프장 캐디…노동부 '캐디는 근로자 아니라 괴롭힘 금지법 적용 안 돼'

입력 2021-02-22 15:52 수정 2021-02-2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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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폭언과 괴롭힘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직원 A씨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괴롭힘은 맞지만, 근로기준법 상 관련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 등은 근로자라고 볼 수 없어 직장내 괴롭힘 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게 이유입니다.

2019년 7월부터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던 배 모 씨는 상사인 '캡틴'에게 지속해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캡틴은 100여 명의 캐디를 지휘하는 책임자입니다. 캡틴은 배 씨에게 "뚱뚱하다고 못 뛰는 거 아니잖아" "살 뺀다면서 그렇게 밥을 먹느냐" "네가 코스 다 말아먹었다"며 공개적으로 모욕과 질책을 일삼았다고 합니다. 이에 항의하다가 사실상 해고를 당한 배씨는 여러 차례 자해를 했고, 지난해 9월 극단적인 선택을 해 숨졌습니다.

이에 10월 배 씨의 유족은 고용노동부에 이 사건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넉 달만에 돌아온 답변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먼저 "캡틴의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인 것은 맞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골프장 캐디인 배 씨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을 직접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다만, 골프장 측에 적절한 조치를 하고, 괴롭힘 실태 조사를 하도록 권고하겠다고 했습니다.

캐디는 손님에게 수고비를 받는다는 이유로 골프장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특수고용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있어도, 특수고용직은 보호받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노동 시민단체인 직장 갑질 119는 "고용노동부가 배 씨를 노동자가 아니라고 단정한 이상, 회사가 조사를 하지 않고, 가해자인 캡틴에게 징계를 내리지 않아도 현행법상 정부가 이를 제재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지적합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배 씨 뿐 아니라 주민들에게 갑질 당하는 아파트 경비원이나, 원청업체의 지시를 받아 일하는 하청업체 직원, 프리랜서지만 사실상 상사의 지휘 감독을 받는 자동차 영업사원 등도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특수고용노동자를 지휘·명령하는 사실상의 사용자뿐만 아니라 사장 친인척, 원청회사, 아파트 주민 등 '특수관계인'에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적용할 수 없고, 처벌조항도 없기 때문입니다.

원청 회사나 고객, 제삼자 등 특수관계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내용의 '괴롭힘 금지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있지만, 통과될 지 미지수입니다.

직장갑질 119는 "국회가 직장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더 이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개정을 미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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