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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와인 싸게 팔면 공급 끊겠다'…수입사 문건의 속사정

입력 2021-02-14 09:02 수정 2021-02-14 12:36

수면 아래서 이뤄지는 '불법 가격 통제', 피해는 소비자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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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아래서 이뤄지는 '불법 가격 통제', 피해는 소비자 몫

코로나 19로 집에서 술을 마시는 이른바 '홈술' 열풍이 불면서, 와인 수입사들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월~11월 사이 와인 수입액은 2,599억 원에 달합니다. 12월 수치가 빠졌는데도, 종전 최고치를 훌쩍 뛰어넘었죠.

 
일선 현장에서 팔리고 있는 와인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일선 현장에서 팔리고 있는 와인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그런데 와인을 사는 소비자들은 여전히 와인 가격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10여 년 전에 비해선 분명히 싸졌지만, 여전히 비싸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로 지목되어 온 것이 바로 수입사의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입니다.

▶ 공정거래법이 금한 재판매가격 유지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란 상품을 거래할 때 거래 상대방에게 지정된 가격대로 팔 것을 강제하고, 이를 위해 각종 거래 조건 등을 붙이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물건을 팔면서, 특정 가격대로만 팔라고 강요하는 것을 말합니다.
 
재판매가격유지 행위는 공정거래법이 금지한 불법이자, 형사 처벌 대상입니다.재판매가격유지 행위는 공정거래법이 금지한 불법이자, 형사 처벌 대상입니다.

소비자에게 직접적 해악을 끼치는 행위로, 공정거래법 29조는 이를 명확히 '불법'으로 간주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조치 대상이며, 매출액의 2%까지 과징금을 물 수 있으며 형사 처벌 될 수도 있습니다.

▶ 수입사가 거래처에 보낸 문건…"적발 시 3개월간 출고 정지"
JTBC가 확보한 한 중견 수입사가 거래처에 전달한 문건에는 와인 유통 현장에서 벌어지는 공공연한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가 담겨 있었습니다. 공문 형태로 씌여진 문건엔 2021년 2월 1일 자로 안내한 가격 아래로 와인을 팔아선 안 되며, 적발 시 3개월 동안 출고를 정지시키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최저가를 지키지 않을 경우, 석달 동안 출고를 막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최저가를 지키지 않을 경우, 석달 동안 출고를 막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같이 보낸 엑셀 파일에는 이 회사가 취급하는 328개의 와인 리스트와 함께, 업장 공급가와 최저 행사가가 적혀 있습니다. 예컨대 A와인의 경우, 업장 공급가가 7만 원 대인데 88,000원 이하로는 팔지 말라는 식입니다. 굉장히 인기가 많은 B와인도 공급가가 4만 원 대인데 53,000원 이하로는 팔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A와인은 보통 7만 원 후반~8만 원 초반에 팔렸고, B와인은 4만 원 중후반에 팔려 왔습니다.
 
붉은 글씨는 최저 행사가, 다시 말해 수입사가 정한 가이드라인 가격을 의미합니다.붉은 글씨는 최저 행사가, 다시 말해 수입사가 정한 가이드라인 가격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업장 공급가는 일선 매장에 들어가는 가격을 말합니다. 보통 대규모로 와인을 주문하면, 수입사가 업장 공급가에서 일정 부분 할인을 해줍니다. 예컨대 10박스(60병 혹은 120병)를 주문하면, 5~10%의 추가 할인을 해주는 식입니다. 주문량이 대규모면 20%나 그 이상의 할인이 이뤄지기도 합니다. 일선 판매처에서 사들인 A와인의 가격은 업장 공급가보다도 더 저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불법적 압력'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문건을 보내 가격을 통제하는 건 굉장히 드문 사례라고 합니다. 불법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보통은 훨씬 은밀하게 압력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이같은 재판매가격유지 행위가 와인 유통 시장에서 오래된 관행이라고 말했다.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이같은 재판매가격유지 행위가 와인 유통 시장에서 오래된 관행이라고 말했다.

"전화상으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수입사 직원이 직접 찾아오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 다른데, 물론 안 그러는 수입사도 많습니다"(주류업계 관계자 A 씨)

"보통은 더 은밀합니다. 인기 와인은 나중에 또 주문해야 하잖아요. 그러면 물량이 없다는 식으로 나중에 공급으로 보복을 하게 되죠"(주류업계 관계자 B 씨)

▶공정위 "공정거래법 위반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 사안에 대한 법률적 해석을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에게 요청했습니다.
 
와인을 팔고 있는 일선 매장의 모습와인을 팔고 있는 일선 매장의 모습

결론은 명확했습니다. 공정거래법 29조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사전에 공정위의 승인을 받아 고시가 이뤄진 품목에 대해서는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 재판매가격 유지 고시가 이뤄진 상품 중에서 주류에 대한 것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피해는 전부 소비자의 몫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는 소비자에게 직접 피해를 줍니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와인을 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선 판매처에서는 문건에 적힌 안내 가격과 같은 값에 와인을 팔고 있었습니다.일선 판매처에서는 문건에 적힌 안내 가격과 같은 값에 와인을 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런 가격 결정 과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선 판매처에 항의하게 됩니다. 지난달에는 얼마에 팔던 와인이 왜 한 달 만에 가격이 뛰었냐는 식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일선 판매처들은 고객들의 항의가 심했다고 말합니다.
 
일선 판매처에서는 포인트 증정이라는 우회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문건에서는 포인트 상한액까지 제시했습니다.일선 판매처에서는 포인트 증정이라는 우회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문건에서는 포인트 상한액까지 제시했습니다.

"고객들은 결국 저희가 폭리를 취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다 보니 저희 매장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는 거죠. 사정을 설명해도 고객님들은 모르십니다. 저희가 (수입사에서 받은) 공문이나 문자 메시지를 보여드릴 수는 없잖아요" (주류업계 관계자 C 씨)

이런 항의를 피해가기 위한 '묶음 판매'도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수입사의 와인 2~3병을 묶어서, 어느 쪽의 가격을 낮춰 파는지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방식입니다.
 
일선 판매 현장에서는 최저가 통제를 피해가기 위해 서로 다른 수입사 와인을 묶어 파는 '묶음 판매'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어떤 와인에서 가격을 낮췄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일선 판매 현장에서는 최저가 통제를 피해가기 위해 서로 다른 수입사 와인을 묶어 파는 '묶음 판매'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어떤 와인에서 가격을 낮췄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를 잡으면서 수입사의 압력도 피해가는, 일종의 '궁여지책'인 셈입니다. 하지만 소비자로서는 필요 없는 와인까지 사야 하기에, 피해를 본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수입사의 입장 "영업사원의 의욕 과다로 벌어진 일"
해당 수입사의 입장도 들어봤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일선 영업사원이 문제의 문건을 공문으로 기안해서 상급자를 통해 올린 건 맞지만, 회사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변호사를 통한 법률적 검토를 해보니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할 우려가 있어서 공문을 승인하지 않았는데, 이미 해당 문건이 일부 거래처에 전달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설명도 해 왔습니다.

해당 영업사원이 10년 이상의 경력을 갖고 있었지만, 문제의 행위가 불법인 줄은 몰랐다는 입장도 함께 전해왔습니다. 따라서 문건의 기재 내용은 회사의 공식 의견이 아니며, 거래처에 최저가를 지키도록 강제하거나 강요하지도 않았다고 밝혀 왔습니다.

수입사의 설명대로라면, 영업사원이 회사의 승인이 떨어지지도 않은 공문을 회사 이름으로 거래처에 전달한 것이고, 이 내용이 퍼지면서 벌어진 '해프닝'이라는 것입니다.

회사의 설명대로 이 사례가 '해프닝'이 맞다고 쳐도, 이런 '불법적 압력 관행'이 존재했다는 건 다수의 증언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수입사 관계자 역시 그런 관행이 있었을 수 있다는 취지의 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보복이 두려운 사람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여러 판매처들은 하나 같이 보복을 두려워했습니다. 실상을 말해주면서도 인터뷰만큼은 한사코 사절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 수입사의 경우, 싸게 팔던 와인을 전부 되사들인 뒤 공급을 끊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 수입사의 경우, 싸게 팔던 와인을 전부 되사들인 뒤 공급을 끊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민감한 이유는 실제로 압박 정도로 끝내지 않고, 아예 매장에 찾아와 저렴하게 팔던 와인을 통째로 되사들인 다른 수입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 뒤 해당 와인에 대한 공급은 끊겼습니다.

또한 새로운 유형의 압박이 생겨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손해를 감수하고 아예 공급을 끊는 식으로 가거나, 아니면 공급가격 자체를 지금보다 더 올려버리는 상황 등을 우려했습니다.

불법적인 압박을 하는 수입사와의 거래를 끊는 대응도 물론 가능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입을 모읍니다.

"마음 같아서는 '손절'하고 싶지요. 그 물건 팔고 싶지도 않고요. 그런데 고객님들이 찾는 물건인 경우가 많은데다, 안 갖춰놓으면 구색도 떨어집니다"(주류업계 관계자 C씨)

▶가격 통제의 이면…시장 논리로 돌아가지 않는 업계
사실 업장 공급가에서 할인까지 들어간 가격에도 수입사의 이윤은 이미 반영돼 있습니다. 수입사가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압력 행위가 이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은 문건 안에 담겨 있습니다.

"최근 불거진 최저가 경쟁의 종지부를 찍고자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여러 소매점의 손해를 막고, 서로 간의 출혈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생각해주시고…"

몇 년 전부터 마진을 대폭 줄여 와인을 파는 판매처가 하나둘 등장하면서, 기존 판매처는 가격 경쟁력을 점차 잃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오랜 거래 관계로 신뢰가 쌓인 수입사에 직접 항의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많은 판매처들은 문건에 적힌 가격을 따르고 있었습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많은 판매처들은 문건에 적힌 가격을 따르고 있었습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이게 꼭 수입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기존의 많은 와인숍들이 있잖아요. 마진율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소비자들은 앱으로 현지가 비교해서 곱하기 1.8해서 더 비싸면 구매를 안 하시거든요"(주류업계 관계자 A 씨)

"수입사와 숍이 오랜 기간 친한 관계였기 때문이죠. 뒤를 봐주는 거죠. 저기는 왜 싸게 파냐. 우리가 비싸게 파는 매장이 되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소통됩니다."(와인 인플루언서 D 씨)

좋게 보면 서로 최저가 경쟁을 하지 않고, 상생한다는 취지로 읽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가 반시장적인 것은 물론,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또한, 그 방식이 공문이나 유선, 구두, 문자 메시지든 간에 범죄 행위라는 점도 명확합니다.
 
판매처에서는 제시받은 최저가를 지키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입을 것을 우려했습니다.판매처에서는 제시받은 최저가를 지키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입을 것을 우려했습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자, 시정 조치를 받고도 이행하지 않은 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해놓고 있습니다.

"시장에 가도 새우깡이나 돼지고기 가격이 다 공개돼 있는데, 유독 와인만 가격이 비싼지 싼지 알지 못하게 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습니다"(와인 인플루언서 D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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