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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학대 왜?②]그들을 위한 영유아 보육법…"제발 일 좀 해주세요"

입력 2021-02-10 09:44 수정 2021-02-10 14:34

미국선 B급 중죄 국내는 집행유예?…웃으면서 법정 나선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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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선 B급 중죄 국내는 집행유예?…웃으면서 법정 나선 그들

◇맞은 아이 세 살인데…법정선 "아이가 학대 유발"

어린이집 교사는 왜 아이를 때리거나 학대를 하는 것일까?

원생 3명을 40여 차례 학대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울산의 한 어린이집 교사는 법정에서 아이가 범죄를 유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이가 자신을 먼저 때렸고 말을 안 들었다는 겁니다. 아이는 겨우 3살입니다.

3살 아이에게 연속해서 물 7잔과 잔반까지 억지로 먹인 교사는 경찰 조사에서 원장이 쌍둥이를 맡겨 업무가 많아져 스트레스를 받아 학대했다고 진술했습니다.

CCTV에 찍힌 학대만 113건인 대전의 어린이집 교사는 공부를 잘 가르치려는 욕심 때문에 아이들을 때렸다고 말했습니다.

 
2020년 11월 19일 울산 어린이집 아동학대 규탄 촛불집회2020년 11월 19일 울산 어린이집 아동학대 규탄 촛불집회


◇"학대 유발 최악 보육환경"…1년 만에 따는 자격증

통계를 찾아봤습니다. 국내에선 가정을 제외하고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가 가장 많이 발생했습니다. 유치원과 비교해도 4배 이상 많습니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어린이집 아동학대

전문가들은 최악의 보육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보육교사들은 사실상 최저임금에 쉬는 시간 없이 온종일 아이와 씨름해야 합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점심시간에 보육교사의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았습니다. 점심시간에 보조교사만 투입해도 학대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교사 1명당 원아 비율은 나이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4살 이하는 7명, 5살은 15명, 6살과 7살은 20명까지 늘어납니다. 영유아의 경우 밥 먹다 토하고 변까지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사는 혼자서 이런 아이들을 돌보면서 자신의 밥은 제대로 먹지 못합니다. 물에 말아서 후다닥 밥 먹기가 일상이라고 했습니다. 위장 관련 질환을 달고 산다고 말했습니다. 최악의 근무환경인 셈입니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만 받습니다. 보육교사 자격증에는 1~3급으로 급수가 나뉘어 있고 경력도 다르지만, 민간 어린이집의 경우 월급에선 큰 차이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보육교사 자격증을 1년 만에 따는 것도 학계에선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아동학과 교수는 1년이라는 단기간에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행위로 전달하기까지는 짧은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의 외국 사례를 찾아봐도 1년 과정은 없다고 했습니다.
 
1년 만에 따는 보육교사 자격증 홍보 현수막1년 만에 따는 보육교사 자격증 홍보 현수막


◇그들을 위한 영유아 보육법…극에 달한 불신

아파트 1층에 자리 잡은 어린이집을 찾아갔습니다. 가정용 어린이집입니다. 말 그대로 가정용 집을 어린이집으로 이용하는 겁니다. 이곳에서 아이들과 교사까지 함께 생활해야 합니다. 보육실이 교실 겸 식당이자 놀이 공간입니다. 아이들은 마음껏 뛸 수 없고 교사에겐 쉴 공간이 없습니다. 주방 앞, 가스레인지 앞에 이불을 둔 뒤 교사에게 쉬라고 한 원장도 있었습니다.

국내 어린이집 설치 기준을 찾아봤습니다. 영유아 1명당 의무 면적은 교육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OECD 평균에도 한참을 못 미쳤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유아 교육 이론인 이탈리아 레지오에밀리아 접근법에선 환경이 제3의 교육자입니다. 그만큼 환경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어린이집 설치기준어린이집 설치기준

전문가들은 보육 환경과 학대와의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아동학과 교수는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공간이 좁으면 사람이 공격적으로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이집 면적은 왜 넓히지 못하는 걸까?

어린이집 원장들의 반발 때문입니다. 넓히게 되면 비용이 드는 데다 만약 넓히지 않으면 그만큼 원아를 적게 받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30년 전에 만들어진 어린이집 설립 기준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영유아 보육법은 아이가 아닌 그들을 위한 법이었습니다.


◇미국선 B급 중죄 국내는 집행유예?…웃으면서 법정 나서는 가해 교사


취재진은 어린이집 아동 학대 판결 사례를 찾아봤습니다. 가해 교사나 원장이 실형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2019년 경남 창원에서 발생한 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례도 그랬습니다. 1심 판결문엔 아이와 부모가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교사의 학대 행위가 위중하다고 했습니다. 또 CCTV가 없었다면 범행 적발이 어려웠고 가해 교사들이 부모로부터 용서도 받지 못했다 명시했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뉘우치며 반성하고 초범이라며 가해 교사 1명에게는 벌금 3백만 원, 나머지 1명은 징역 4월에 집행유예를 내렸습니다.
 
학대 교사에 벌금형과 집행유예 내린 판결문학대 교사에 벌금형과 집행유예 내린 판결문

피해 부모는 판결 직후 가해 교사들이 웃으면서 법정을 나선 모습에 분노와 자괴감이 밀려왔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울 때마다 억지로 보낸 자신을 탓했습니다. 가해 교사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은 것 같아 아이에게 더 미안했던 겁니다. 결국 부모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정신과 진료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아동학대 사건 이후 온 가족의 일상이 변했다고도 했습니다. 피해 부모는 가해 교사들에 대해 민사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법 테두리 안에서 가해 교사를 벌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안 남았다고 했습니다.

육아정책연구소에서도 어린이집 아동학대 교사들에 대한 재판 결과를 분석했습니다.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많았습니다.

미국과 영국 등에선 국내와 달리 아동학대 처벌 수위는 강했습니다. 특히 미국 네바다주에선 아동학대가 범죄 B급 중죄 해당 징역 2~20년까지 내려지고 있습니다.


가해 교사 자격정지 2개월…"학대했다고 휴가 보내주는 겁니까?"

어린이집 아동학대의 경우 법원 판결과 별건으로 지자체에서 행정처분도 가해집니다. 영유아 보육법 제39조 제2항에는 어린이집의 원장과 보육교사에 대한 행정처분의 세부기준이 있습니다. 영유아에게 중·상해를 입힐 경우 원장은 자격 정지 1년입니다. 교사는 자격 정지 6개월입니다.

그런데 중·상해가 아니면 그 밖의 경우에 모두 속합니다. 그 밖의 경우는 가벼운 처분입니다. 원장의 경우 자격정지 3개월에 가해 교사는 2개월 처분입니다. 아동학대와 관련한 행정처분은 사실상 이 두 가지 전부입니다. 부모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 피해 부모는 "아동학대 했는데 수고했다고 2~3개월 휴가 보내주는 격이라며 분노했습니다."

담당 공무원들도 난감해했습니다. 자신들은 규정에 맞게 처벌 수위를 내리는데 행정처분이 약하다며 민원이 폭주한다는 겁니다. 담당 공무원조차 행정처분이 약한 것 같다며 취재진에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울산지역 구청에선 어린이집 담당이 기피하는 업무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 국공립어린이집 원장은 부모가 학대를 의심하자 "신고하지 말라 처벌이 약하다. 벌금이나 정직 정도다. 오히려 어린이집에 정부 지원금 나오지 않아 아이에게 피해가 간다"며 회유하기도 했습니다.

 
아동학대 피해 부모 1인 시위(지난 2월 8일 울산 동구청앞)아동학대 피해 부모 1인 시위(지난 2월 8일 울산 동구청앞)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역시나…제발 할 일 좀 해주세요"

지난 1월 14일 최혜영(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담당 공무원 2명, 울산 5개 지역 아동학대 피해 부모 대표들이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부모들은 어린이집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습니다. 부모들이 CCTV 영상을 마음껏 보고 영상 보관 기관을 현행 두 달에서 더 늘려주라고 했습니다. 또 아동학대에 대한 행정처분 강화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화상회의를 끝낸 부모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는 겁니다. 실제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동안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지난 2월 8일 울산 동구청 앞에선 부모들이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부모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허술한 법 제도를 바꾸기 위해 국회나 정부가 아닌 부모가 직접 나서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했습니다. 울분에 찬 부모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부모의 입장으로서 봐 주세요. 당신도 한 아이의 부모일 텐데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 없습니다. 제발 할 일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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