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일흔이 넘어서야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경북 칠곡의 할머니들이 조금 서툴지만,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은 그대로 시가 됐고 이젠 정식 폰트, 그러니까 글자체로도 제작이 돼서 한글 박물관에도 전시됩니다. 지금 보실 리포트 속 글자체가 바로 칠곡할매 서체인데요. 가족들은 "글씨가 보이는 게 아니라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선화 기자입니다.
[기자]
[폰트가? 폰트가 뭔지 몰라]
[뭐 뭐 맨드는깁니까? 비누 뭐 이런거 만드는기라예?]
폰트는커녕 평생 이름 석 자도 쓸 줄 몰랐던 할머니들.
[이종희 : 일본말 4년 배웠어. 4년 배우고 나니까 해방되어 버렸어.]
[이원순 : 글이라 카는 게 그렇게 무정하고 어떨 때는 속이 터져서 내가…]
마을회관에 생긴 배움학교를 다니면서, 세상이 선명해졌습니다.
여든 넘게 꾹 담아만 두었던 마음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시로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어무이-이원순 : 80이 너머도 어무이가 조타. 어무이가 보고시따]
시집을 내며 시인이 됐습니다.
이름을 못 써 서러웠는데, 이제 할머니들의 이름을 딴 서체도 생겼습니다.
글씨가 영원히 남는다는 말에 2000장 넘는 종이에 볼펜 7개의 잉크가 다 닳도록 연습했습니다.
한글뿐 아니라 영어 서체도 있습니다.
[이종희 : 듣도 보도 몬한 글을 쓸라 카니 꼬부랑 걸 그걸 몬쓰겠습디더. 최선을 다해도 안됩디더.]
'칠곡할매' 폰트는 한글박물관에도 전시됐습니다.
[김성호/이종희 할머니 며느리: 글씨가 보이는 게 아니라 어머님의 음성이 들리는 경험을 했어요.]
어렵던 시절 배움마저 뒷전으로 밀렸던 할머니들이지만 나눔에도 열심입니다.
모두 만 5000권이나 팔린 세 권의 시집, 수익금은 공부가 고픈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놓았고, 폰트는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게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간 못 배운 설움을 위로하지만, 할머니들은 지금이라도 한글을 배울 수 있어 좋다 합니다.
[이원순 : 위에 어른들은 세상을 떠서 이 세월도 못 타고났지마는 우리는 요 세월을 타고 났어요.]
(화면제공 : 영화 '칠곡 가시나들'·칠곡군청)
(영상그래픽 :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