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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포항 지진 3년…"혼자 있으면 자꾸 엉뚱한 생각이 들고 힘들어"

입력 2021-01-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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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포항 지진 3년…"혼자 있으면 자꾸 엉뚱한 생각이 들고 힘들어"

"혼자 있으면 자꾸 엉뚱한 생각이 들고 힘들어."

경북 포항 흥해 실내체육관에서 처음 만난 이재민이 꺼낸 말입니다.

잠깐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청에 계속 손사래를 치다 어렵게 입을 뗐습니다.

 
[취재설명서] 포항 지진 3년…"혼자 있으면 자꾸 엉뚱한 생각이 들고 힘들어"

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 지진 이후 3년째 체육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 등이 마련한 임대 아파트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체육관 텐트를 택했습니다. 왜 아파트로 들어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집에 가서 가만히 있으면 우울한 생각이 자꾸 나고 이상한 생각도 들고. 사람이 순간순간 자꾸 엉뚱한 생각을 하거든. 그러니까 여기 여러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괜찮고."

이재민들의 거처 걱정으로 시작된 취재의 방향이 달라지던 순간이었습니다. 이재민 상당수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체육관에서 만난 또 다른 이재민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마찬가지로 임대 아파트 대신 텐트를 택했습니다.

"(새벽) 1시에도 내가 막 돌아다녀. 불안해가지고. 신경 쓰는 걸 안 쓰려고 막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거예요. 집에는 잘 안 가. 집에 가면 불안하니까. 일부러 사람들 만나고 하는 거지. 같이 밥 먹자고 하고."
 
[취재설명서] 포항 지진 3년…"혼자 있으면 자꾸 엉뚱한 생각이 들고 힘들어"

[취재설명서] 포항 지진 3년…"혼자 있으면 자꾸 엉뚱한 생각이 들고 힘들어"

이들의 텐트 안 구석에는 약봉지가 한 가득이었습니다. 대부분 마음의 병 때문에 먹는 약입니다. 상당수는 포항시가 운영 중인 트라우마 센터를 다니고 있습니다. 지진으로 얻은 정신적인 피해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걸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지진 이후 극도의 불안 증세 등에 시달려 자동차는 물론이고 한동안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동안 가족들과 불화도 겪었습니다. 마음의 병은 신체적인 변화로 연결됐습니다. 탈모가 생기고 체중도 늘었습니다. 지속적인 치료로 그나마 많이 호전됐지만 여전히 매일 한 움큼의 약을 먹어야 합니다.

정신적인 피해가 상당하지만 피해 보상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2019년 11월 국회에서 포항지진특별법이 통과돼 지원 보상 대책이 하나 둘 마련되고 있지만 마음의 병은 사실상 대상에서 제외된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인 피해를 인정받는 기준이 굉장히 까다롭고 어렵다는 겁니다. 정신과 치료를 통해 장해 진단을 받아야 하는데 해당 질환이 지진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이걸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게 아닙니다. 일상이 망가지고 삶이 무너졌는데 최소한의 피해구제 지원이 안 된다는 부분이 너무나 억울한 겁니다. 전 누구에게 이걸 하소연해야 하는 겁니까."

포항시도 주민들의 이 같은 어려움을 알고는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무조정실 산하 포항지진 피해구제심의위원회에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인정 대상을 넓혀줄 것을 요청 중이라고 합니다.

"심의위원회에 저희도 요청은 하고 있는데 쉽지 않아요. 트라우마 센터에 전문 의료진이 계시기 때문에 센터에 다니시는 분들이라도 인정을 해주면 좋겠는데."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가 아니다보니 피해 산정에 어려움이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피해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습니다. 지진 발생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들은 분명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피해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마음의 병은 혼자 감내하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가장 피해가 심각했던 아파트는 얼마 전 모두 철거됐습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도 찾았던 아파트였습니다. 아파트가 철거된 자리에는 도서관과 어린이집 등 주민들을 위한 공공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합니다. 피해 주민 복지를 위해 참 잘된 일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이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다면 모든 지원 대책과 장밋빛 지역 개발 청사진은 반쪽짜리에 그칠 겁니다.

재난은 불행히도 매년 발생합니다. 미리 대비한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포항 주민들의 정신적인 피해가 남의 이야기로 그쳐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정신적인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나올 텐데 피해 산정이 어렵다고 매번 이를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취재설명서] 포항 지진 3년…"혼자 있으면 자꾸 엉뚱한 생각이 들고 힘들어"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정신적인 피해를 산정하는 별도의 기준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심리 지원 대책을 확대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최근 내놨습니다. 권역별 트라우마 센터를 확대 운영하고 각 지자체의 정신 건강 전문 인력도 대폭 늘린다고 합니다. 환영할 일입니다. 내친 김에 포항 지진을 포함해 각종 재난으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 방안도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취재를 마칠 때쯤 포항 지진 트라우마 센터에서 만난 주민은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마음의 병이 심각한데도 치료받지 못하는 분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요. 당장 상처가 나고 피가 나고 하면 병원으로 달려가겠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혼자 끙끙 앓고만 있는 거죠.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문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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