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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비보, 전력수급기본계획

입력 2020-12-28 09:0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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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58)

어느덧 2020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코로나 펜데믹에서 벗어나지 못 하면서 코로나19는 2020년을 뒤흔든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를 위한 대안으로 각국이 그린 뉴딜과 탄소중립과 같은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하기 시작했죠. 우리나라 역시 이에 질세라 올해 하반기 전광석화로 한국판 뉴딜, 탄소중립 선언 등을 잇따라 발표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비보, 전력수급기본계획

#아사타비_후안무치

올 한 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아시타비'가 꼽혔습니다. 我是他非.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이죠. 2020년이 하도 '내로남불'의 해였기에 전국의 교수들은 전에 없던 사자성어를 만들어냈습니다. 1위 아시타비에 이어 전국의 교수들이 꼽은 두 번째 사자성어는 '낯이 두꺼워 부끄러운줄 모른다'는 후안무치였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비보, 전력수급기본계획 (자료: 교수신문)

아시타비, 후안무치와 같은 이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일이 지난 24일 벌어졌습니다. 바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에서 나온 계획안이 그렇습니다. 9차 계획의 기간은 2020~2034년, 총 15년입니다. 탄소중립이라는 정부의 약속, 더 나아가 파리협정을 지키기 위한 국제사회와의 약속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번 9차 전력계획안에 따르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7기는 예정대로 지어집니다.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연한은 30년. 이는 최소 2051년~2054년까진(7기의 완공 시기가 다르다보니)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된다는 뜻입니다.

탄소중립 시점은 이제 모두가 아시다시피 2050년이죠. 탄소중립은 하는데 석탄화력발전소는 가동한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말과 다를 바 없는 계획입니다. 탄소중립은 단순히 "하겠습니다!"라는 선언을 넘어 시민들과의 약속, 국제사회와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신규도_모자라_수명연장?

 
[박상욱의 기후 1.5]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비보, 전력수급기본계획 지난 24일, 온라인으로 개최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계획안 속 또 하나의 우려되는 대목도 있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연한 30년이 얼마든 엿가락과 같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령 3·4호기는 2023년, 동해화력 1·2호기는 2028~2029년에 가동연한 30년을 채웁니다. 하지만 이번 9차 전력계획안에서 폐지되는 석탄화력발전소 목록엔 빠져있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보령 3·4호기는 사실상 '수면 연장'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고, 동해화력 1·2호기는 국내산 무연탄 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폐지를 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미 탄소중립 선언 이후 나온 전력계획에서조차 '가동연한 30년'이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등장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앞으로 지어질 7기의 석탄화력발전소들도 2051~2054년 이후에 여전히 가동 중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지나친 우려'로 보기 어렵겠죠.

9차 전력계획의 기본 방향에 대해 정부는 "원전은 점진적 감축, 석탄은 과감하게 감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과감한 감축'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엔 가동연한을 채우기 전, 조기에 폐지하려는 것인가 기대했습니다. 정해진 수명대로 다 사용하고 폐지하는 것이 과연 과감한 것일까요. 석탄화력발전소 4기의 수명을 연장하면서도 정작 발표 자료에선 이를 아예 언급조차 안 하는 것이 도리어 과감해 보입니다.

#친환경전원_확대_주인공은_LNG?

9차 전력계획의 또 다른 기본 방향은 온실가스 감축입니다.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과 궤를 같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려되는 대목은 또 다시 등장합니다. 바로 전력계획 내에서 LNG의 역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비보, 전력수급기본계획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정부는 9차 전력계획의 발전설비 변화의 핵심으로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전제로 친환경전원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을 꼽았습니다. 그러면서 "폐지되는 석탄발전은 LNG발전으로 보완한다"고 덧붙였죠. 하지만 이 계획에서 LNG는 석탄의 보완재를 넘어 대체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비보, 전력수급기본계획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후,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가장 많은 전기를 생산해내는 것은 LNG입니다. 전 세계가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9차 전력계획의 최종 목표에 따르면 LNG의 비중은 47.3%에 이릅니다. 화석연료가 전체 전기 생산량에서 70%의 비중을 차지하는 셈이죠.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10%도 채 되지 않습니다. 정부는 폐지가 결정된 석탄화력발전소 24기를 LNG화력발전소로 전환해주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번 9차 전력계획에서의 주인공이 재생에너지가 아닌 LNG로 보이는, LNG가 석탄의 보완재가 아닌 대체재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이에 대해 환경운동연합은 "정부가 화석연료 퇴출을 또 다른 화석연료로 전면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이라며 비판했습니다.

#갈_곳_잃은_에너지_정책

걱정되는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전력수요 전망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남아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9차 전력계획의 수요 전망에 "8차 계획과 동일한 분석방법론인 전력패널모형을 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기획재정부와 KDI의 경제성장률 전망과 산업연구원의 산업구조 전망, 통계청의 인구 전망 등을 반영했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비보, 전력수급기본계획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문제는, 앞으로의 대전환에서 전기가 각종 기관의 '연료'로 쓰인다는 점이 얼마나 반영됐느냐 하는 부분입니다. 2021년을 기점으로 국내 자동차 제조사를 비롯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본격적인 전기차로의 전환에 나섭니다. EU를 비롯한 각국의 자동차 온실가스 규제 기준 역시, 전기차를 주 판매 차종으로 삼지 않으면 벌금을 면치 못 하게 만드는 구조로 이미 변하고 있고요.

시차를 두고 이 같은 변화는 자동차에서 건설장비로, 철도 운송수단과 항만 설비, 선박 등으로 점차 퍼져나갈 것입니다. 다시 말 해, 소위 '기름을 태워 쓰던 거의 모든 것'이 전기를 이용하는 모터로 대체되는 것이죠.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이 충분히 반영이 됐을지 의문입니다. 이 부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면 9차 전력계획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기본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계획으로써는 전망을 초과하는 수요에 대응하려면 석탄을 더 태우고, LNG를 더 태워야만 초과 수요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전환은, 즉 전력계획은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의 '첫 단추'와도 같습니다. 발전 분야에서의 계획은 그만큼 중요하고요. 지금의 이러한 계획이라면 2050년 탄소중립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에도, 국회의 기후위기 대응 결의안에도, 세계 최초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기후위기 비상선언에도 우리나라가 CCPI(기후변화대응지수) 세계 최하위권을 면치 못 하는 이유,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찾아온 이런 계획 때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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