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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방배동 모자 취재 뒷얘기…죽음과 노숙 생활이 드러낸 위기가구 현실

입력 2020-12-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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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방배동 모자 취재 뒷얘기…죽음과 노숙 생활이 드러낸 위기가구 현실

"아가씨, 이거 새 신발이에요."

갑작스런 '아가씨' 호칭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서울 동작구 반지하 주택에서 아들 최 씨를 만났습니다. 그동안의 고생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밝았습니다. TV에서 서부 영화가 나오자 멕시코 사람이냐 묻고,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 얘기를 하며 천진하게 웃었습니다. 올해로 37살이지만, 호기심 많고 엉뚱하기도 한 초등학생을 보는 듯 했습니다.

 
[취재설명서] 방배동 모자 취재 뒷얘기…죽음과 노숙 생활이 드러낸 위기가구 현실 지난 17일, 아들 최 씨를 만난 반지하 주택

한 달 전만 해도 차가운 이수역 거리를 헤매던 그였습니다. 사회복지사 정미경 씨가 최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달 6일. '우리 엄마는 5월 3일'의' 돌아가셨어요. 도와주세요.' 쪽지를 두고 바닥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복지사가 다가가자 최 씨는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합니다. 고기잡이 뱃사람들을 따라가지 말라던 돌아가신 어머니 김 씨의 당부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움 받고 싶지만, 동시에 도움 받기 두려웠던 최 씨는 그길로 어디론가 숨어버립니다.

 
[취재설명서] 방배동 모자 취재 뒷얘기…죽음과 노숙 생활이 드러낸 위기가구 현실

[취재설명서] 방배동 모자 취재 뒷얘기…죽음과 노숙 생활이 드러낸 위기가구 현실 이수역 12번 출구에서 노숙 생활 하던 최 씨

# 세 명이 한 달 간 찾아 해맨 노숙인 '아들'…"엄마가 죽었어요. 벌레가 나왔어요."

지난 3일, 정 복지사는 최 씨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함께 노숙인들을 도와온 이성우 사당지구대 경위, 김재영 전도사와 함께 한 달 내내 이수역 인근을 샅샅이 뒤진 결과였습니다. 4년간 노숙인 돌보는 일을 맡아온 김 전도사는 "노숙인들이 범죄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됐다"고 했습니다.

어렵게 최 씨를 찾은 그 날은 이 경위의 휴무일이었습니다. 손발이 부르터 있는 최 씨를 직접 씻기고 아픈 곳은 없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집이 있어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집 있는 사람이 왜 노숙을 할까? 반신반의하며 넘기려는데 최 씨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집에 엄마가 죽었어요. 벌레가 나왔어요." 관할 경찰에 신고하고 바로 방배동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 김 씨의 시신은 5개월 만에 발견됐습니다.

 
[취재설명서] 방배동 모자 취재 뒷얘기…죽음과 노숙 생활이 드러낸 위기가구 현실 정부의 `위기가구 발굴시스템`에서 차상위계층, 기초생활수급자는 제외

# 김 씨 모자, 12년 간 '발굴시스템'에 한 번도 안 잡혀

김 씨 모자가 방배동 집에 살기 시작한 건 2008년 5월부터입니다. 이사 온 뒤 한 번도 '위기가구 발굴시스템'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단전, 단수, 건보료 체납 등 33가지 정보를 분석합니다. 때마다 기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3가지 이상 정보가 잡히면 위기가구로 여깁니다. 두 달에 한 번씩 17만 명 정도의 위기가구를 각 지자체에 통보합니다.

김 씨 모자는 2016년 이미 건보료 78만원이 밀려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단전, 단수 기록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위기가구로 분류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7년엔 차상위계층, 2018년부터는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이유로 발굴되지 못했습니다. 차상위계층과 기초생활수급자는 이미 '발굴된' 위기가구로 쳐서 시스템 상으로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 지자체 "아들 상태 얘기 했어야"…발굴 후 방치된 모자

'근로 능력 있는 2인 가구'. 월 28만원 주거급여를 받아 온 김 씨 모자는 이미 이렇게 등록돼 있었습니다. 올해 10월 기준, 건보료 482만원이 밀려 있었고, 5백만 원 금융 연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치됐습니다.

김 씨는 뇌경색 기저질환이 있지만 의료급여를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수입이 없어 생계급여를 안내 받았지만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부양의무자인 전 남편에게 연락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주민센터 측은 "김 씨가 전남편에게 연락 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10년이 넘도록 최 씨의 장애 사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서초구청 측은 "담당자에게 아들 상태 얘기했다면 돌봤을 수도 있는데 유난히 말씀 안하셨다"고 했습니다.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시작 이후 50여 차례 상담기록이 있지만 정작 김 씨 모자 집에서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모두 전화로 하거나 김 씨가 직접 주민센터를 찾아간 경우입니다. 김 씨는 그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기를 어려워했습니다. 결국 본인은 주검으로, 아들 최 씨는 노숙 생활로 세상에 드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취재설명서] 방배동 모자 취재 뒷얘기…죽음과 노숙 생활이 드러낸 위기가구 현실 지난 17일, 장애 진단 및 검사 받으러 가는 최 씨

# 장애 등록 절차 밟는 아들…6개월 간 긴급복지지원

최 씨는 현재 김 전도사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주 장애인 등록을 위한 진단과 심리 검사도 받았습니다. 우선 6개월 간은 긴급복지대상자로 선정돼 매달 생계비 45만 원 받게 됩니다. 최 씨가 사회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경계 안에 들어온 것은 다행인 일입니다. 하지만 사회가 아닌 개인 세 명이 어렵게 찾아낸 위기 가구의 현실. 과연 다행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우리 복지 시스템에 다시 질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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