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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파리협정 5년…우리는, 지구는 어떻게 바뀌었나 (하)

입력 2020-12-14 09:00 수정 2020-12-14 12:47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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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56)

[박상욱의 기후 1.5] 파리협정 5년…우리는, 지구는 어떻게 바뀌었나 (하)

지난 12일은 파리협정이 맺어진지 5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 날을 전후로 정부는 많은 다짐과 계획들을 발표했죠. 국제사회가 함께 노력하자고 약속한 최초의 보편적 기후합의, 그 후5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나 알아보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 (상) 편에선 파리협정이 무색하게 뜨거워지고 있는 땅과 바다, 그리고 기온… 그리고 계속해서 치솟는 온실가스 농도를 확인했습니다. 걱정과 우려가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만, 그 와중에도 조금은 다행인 것도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이제, 계획을 넘어 '행동'에 나서는 일들이 하나 둘 목격된 것이죠.

#그럼에도_지구_곳곳서_목격된_감축_움직임
탄소배출량 그래프는 해마다 우상향했지만 그 와중에도 감축 계획은 차근차근 마련되고 있었습니다. 감축을 위한 행동도 잇따랐고, 이는 객관적인 통계로도 드러났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파리협정 5년…우리는, 지구는 어떻게 바뀌었나 (하) 독일의 발전비중 변화 (자료: 독일 AG Energiebilanzen)

오랜 기간, 석탄 중심의 발전을 해오던 독일에선 2018년 처음으로 재생에너지가 다른 모든 에너지원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석탄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의 페이즈-아웃(Phase out, 단계적 철수)과 동시에 재생에너지가 그 대체제로서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는 곧 온실가스 감축으로 이어졌습니다. 독일은 적어도 발전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2013년 이후 탄소배출량을 계속해서 줄여나갈 수 있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파리협정 5년…우리는, 지구는 어떻게 바뀌었나 (하) 독일 전체 에너지 비중과 그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 추이 (자료: 독일 에코인스티튜트)

그저 독일이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 더 지구를 아껴서 그런 걸까요. 아마 그런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이렇게 석탄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사이, 전 세계에 '클린 디젤'을 앞세우고는 뒤에선 '배출가스 조작'을 벌이다 적발된 것도 독일이었으니까요. 바로 2015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디젤게이트' 말입니다.

이론적으로야 같은 양의 연료를 태워 더 먼 거리를 가는 디젤 자동차가 가솔린 자동차보다 온실가스를 덜 뿜어낼 수 있겠지만, 이론적으로야 그러한 디젤 자동차가 내뿜는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등 각종 유해물질을 각종 장치로 잡아둘 수 있겠지만… '기술의 독일'은 자신들의 기술을 이 유해물질 저감 장치가 인증 테스트 과정에서만 작동하도록 고도의 기만을 하는 데에 활용했죠.

다시 재생에너지로 돌아와서, 재생에너지 도입 초기 '일조량이 부족하다', '환경이 적합하지 않다' 온갖 반대 목소리가 컸던 독일이었습니다. 단순히 재생에너지 반대 목소리만 컸던 것이 아니라 석탄 관련 산업계와 노동계의 반발도 컸죠. 그럼에도 재생에너지 확대에 나선 결과, 독일은 자국 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만 높인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바탕으로 한 해외 수출로 수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확대 노력은 단순히 지구를 위해서가 아닌, 개인과 기업, 국가 경제를 위한 노력이었던 겁니다.

이런 오랜 계획과 그로 인한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난 덕분일까요. 신 기후체제의 시작을 앞두고 취임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2050년, 유럽이 최초의 탄소 탄소중립 대륙이 되길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그 핵심은 재생에너지와 전기차였고요.

#파리협정_5년_그_사이_도래한_전기차_시대
유럽이 공동체 차원에서, EU 회원국들은 각국 정부 차원에서 이런 노력에 나섰습니다만, 사실 전기차의 확대 움직임은 다른 곳에서 비롯됐습니다. 바로, 미국의 테슬라입니다. 모델S라는 단일 차종만을 판매하던 미국의 신생 전기차 제조사는 파리협정이 채택된 해이자 디젤게이트가 터진 해인 2015년, SUV 모델인 모델X를 출시했습니다. 이어 2017년 모델3를 내놨고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듯, 전에 없던 회사가 잇따라 전기차 모델을 선보이면서 마치 '전기차=테슬라'와 같은 인식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이후 기존의 자동차 제조사들도 앞 다퉈 전기차 모델을 내놓고 있습니다만, 수십~백여년 전통을 자랑하는 자동차 제조사가 만든 전기차는 매번 테슬라의 동급 모델과 비교되곤 합니다. 전기차가 마치 테슬라와 테슬라가 아닌 전기차로 구분되듯 말이죠.

미국에서 이런 제조사가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아이러니로 보이기도 합니다. 파리협정에서의 탈퇴를 선언한 나라, 대통령이 직접 '기후변화는 중국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주장하는 나라였으니까요. 그런 미국도 곧 탄소중립 선언을, 대규모의 전환을 앞두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인이 되면서 나타난 변화입니다.

EU에 이어 미국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을 하게 되고,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2관왕을 차지한 중국마저 탄소중립을 외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입니다.

#탄소가_곧_돈
유럽과 미국, 중국 등 전 세계의 '주요 시장'으로 꼽히는 곳들이 왜 이렇게 빠른 전환에 나서는 것일까요. 바로, 탄소가 곧 돈이기 때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파리협정 5년…우리는, 지구는 어떻게 바뀌었나 (하) 지난 2일 진행된 EU 온실가스감축목표 강화 관련 브리핑 장면

유럽은 당장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감축목표를 당초 '1990년대 대비 40% 감축'에서 '1990년대 대비 55% 감축'으로 상향할 계획입니다. 한국시간으로 지난 2일 밤 10시, 이러한 결정을 한 배경과 파급효과에 대한 브리핑이 열렸습니다. 브리핑엔 크리스티나 피게레스 전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파스칼 라미 전 WTO 사무총장을 비롯해 파리협정 초안 작성에 참여했던 전 프랑스 기후변화대사인 로렌스 투비아나 유럽기후재단 대표, 제인 앰바시어 BNP파리바 자산운용 글로벌 지속가능부문장 등이 참석했습니다.

감축 목표의 강화는 곧 탄소국경조정의 강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탄소국경조정은 EU 역외 국가들에겐 '탄소세'로 읽히는 내용이고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EU 역외에선 "새로운 보호무역주의의 시작"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이러한 조치를 한다 하더라도, 결국엔 19세기 보호무역주의로 회기하는 꼴이라는 주장입니다. 당장 우리나라도 EU와 FTA를 통해 관세 없는 무역을 해오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큽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파리협정 5년…우리는, 지구는 어떻게 바뀌었나 (하) 파스칼 라미 전 WTO 사무총장

파스칼 라미 전 WTO 사무총장에게 이러한 우려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반드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이, 이것은 보호주의(Protectionism)가 아닌 사전예방주의(Precautionism)"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보호주의는 자국내 기업들을 해외 경쟁사들로부터 지키려는 것을 의미하지만, 탄소국경조정과 같은 조치들은 위기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거죠. "탄소감축도, 탄소배출권의 가격을 올리는 것도 모두 위기에서 시민들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조치는 모든 무역 파트너들에게 철퇴를 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기후변화의 피해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라미 전 사무총장은 "세계 경제, 산업계에서 약 25% 가량은 이미 '넷 제로' 목표를 받아들였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여기에 한국과 일본, 중국도 동참할 의사를 밝혔고,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 역시 넷 제로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그렇게 되면, 2020년 한 해에 경제규모로는, 전세계 25%에서 75%가 넷 제로 행렬에 동참하는 셈"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넷 제로는 '뉴 노멀'이 되고 있고, 이러한 변화가 국제사회에 걸쳐 일어난다면 탄소국경 '조정'이 필요 없을 만큼, 모든 나라가 탄소를 줄일 것이다." 탄소국경조정에 대한 우려 자체가 '기우'일 뿐, 우려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이러한 저감, 넷 제로의 여정에 동참해야 한다는 전직 WTO 사무총장의 설명입니다.

#누가_척화비를_세웠나
이런 변화의 흐름과 달리 우리나라는 너무도 잠잠한 5년을 보냈습니다. 그저 잠잠하기만 했다기보다, 탄소 저감과 에너지 전환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경제 성장에 반하고, 국력 향상에 반하는 주장으로 치부됐죠. "경제는 모르고 지구만 생각하냐"는 핀잔과 함께요.

지구 반대편에서 탄소중립을 이야기하고, 탈석탄의 시점을 정하고, 더 강력하게는 '내연기관 금지' 시점까지 논의됐던 그 사이 우리는 해외 석탄 투자에 수조원의 나랏돈을 쏟아 붓고, 새로운 석탄발전소의 건립을 추진한 겁니다. 이쯤 되면, 도입 10년 만에 폐지된 '클린 디젤 정책'은 애교로 보일 정도입니다. 최소한 그 정책은 해외의 탄소 저감 정책 방향을 좇다 겪은 시행착오였으니 말입니다.

파리협정 이후 5년, 세계 각국이 바삐 움직이는 사이 우리나라는 그 마지막 해인 2020년, 그것도 하반기 6개월 만에 이를 따라잡기 위해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린뉴딜 발표에 이어 탄소중립을 선언했죠.

"정부도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이 매우 도전적인 과제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렇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사회의 생존을 위해 2050 탄소중립은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벌 사회에서 나서지 못하고 특히 글로벌 경제에서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장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난 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말입니다.

정부는 이날 탄소중립으로의 3대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포함한 3+1 전력을 내놨습니다. 이는 ① 경제구조 저탄소화, ② 저탄소 산업생태계 조성, ③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 전환이라는 '3대 정책 방향'에 '탄소중립 제도기반 강화'를 더한 전략입니다.

이를 위해 에너지 주공급원을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적극 전환하고, 철강 또는 석유화학과 같이 탄소 배출량이 많은 고탄소 산업부문에 대한 혁신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는 등 "경제구조 모든 영역에서 저탄소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입니다.

글로는 이렇게 간략히 정리될 수 있지만, 실제 이러한 대전환에 나서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습니다. 남들보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십수년 뒤늦게 시작하는 대전환에서 참고할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다음 연재에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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