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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더 힘들어진 '한 끼'…노숙인들의 '급식 원정'

입력 2020-12-0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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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코로나 때문에 노숙인들이 한 끼 챙기는 것도 더 고단해졌습니다. 문 닫은 급식소가 늘었고 거리두기를 걱정하는 주민들의 불안과 불만도 많아졌습니다. 스스로 급식소를 쓰레기 매립장에 빗댄 한 노숙인의 말속에, 또 자존심이라면서 남이 볼까 서둘러 도시락을 욱여넣은 한 노숙인의 가방 속에 이들에게 '밥을 먹는다'는 게 어떤 건지, 그 속에 든 이야기들을 들어보겠습니다.

서효정 기자입니다.

[기자]

광장에 불이 꺼졌습니다.

사람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서울역입니다.

이곳 서울역에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들이 누구일지 현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여기저기 침낭이 있습니다.

움직임이 없습니다.

전철역 아래로 내려가 봤습니다.

일렬로 놓인 침낭들, 노숙인들입니다.

추위를 견디려고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었습니다.

어둠이 깔린 새벽 2시, 하나둘 몸을 일으킵니다.

덮고 있던 이불을 정리합니다.

무슨 일일까.

전철역 출구에서 나온 사람들이 다 이쪽 방향으로 이동을 하고 있는데요.

저도 어디로 가는 것인지 좀 따라가 보겠습니다.

겉옷과 모자로 중무장을 한 이들, 짐가방을 끌거나 큰 가방을 메고 걸음을 재촉합니다.

어디로 가는 걸까.

박스 한 장을 손에 쥔 남성, 횡단보도를 지나 다리를 건넙니다.

거리엔 24시간 편의점 불빛만 있습니다.

15분 정도 걸어 도착한 곳엔 먼저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A씨/노숙인 : 아침 하는 데가 여기밖에 없어요. (지금 식사 시작하는 거예요?) 5시 10분에요.]

밥을 먹기 위해 새벽 3시부터 줄을 서는 겁니다.

들고 온 박스를 깔고 앉아 숨을 돌립니다.

[A씨/노숙인 : 줄 서는 게 일이야. 하루 두 끼만 먹으면 좀 편하고. 두 끼 먹는 사람들 많아요, 줄 서기 싫으니까.]

코로나19 유행 이후 서울의 무료 급식소 54곳 중 17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이 열린 곳을 찾아 모이는 겁니다.

[B씨/행인 : 어떤 날은 저 위에까지 줄이 서 있어. 너무 지저분하더라고.]

배식까지 2시간, 주변 건물을 보며 기다립니다.

[A씨/노숙인 : 아파트 저런 거 얼마짜리예요, 올라간 것. 엄청 비싸잖아요. 근데 이런 시설이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쓰레기 매립장 들어서는 것 반대하는 거랑 똑같은 거지, 뭐.]

새벽 4시. 줄이 빠르게 길어집니다.

직원들이 순서대로 식권을 나눠줍니다.

준비한 200장이 동났습니다.

[C씨/서울브릿지종합지원센터 직원 : 집 있는 사람들이야 아침도 안 먹고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이거 먹고 또 언제 먹을지 모르거든.]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열을 재고 손을 소독한 뒤 칸막이 속에서 밥을 먹습니다.

경기도 성남 안나의 집도 최근엔 100인분의 식사를 더 준비합니다.

역시 다른 지역에서의 '원정 노숙인'을 위해서입니다.

봉사자들은 최대한 밥을 많이 담습니다.

누군가에겐 유일한 식사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원봉사자도 많이 줄었습니다.

일손이 부족해 기자도 도왔습니다.

[김한구/안나의 집 자원봉사자 : (나 좀 빨라진 것 같아.) 사람이 없을 때 혼자서 설거지도 다 해야 될 때도 있고.]

맞은편 성당 앞마당엔 전국에서 온 노숙인들이 거리를 두고 서 있습니다.

도시락 650개를 실은 카트가 도착하고,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맛있게 드십시오.)]

노숙인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김하종/신부 (안나의 집 대표) : 우리가 잘났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게 밥 주는 것이 아니고 같은 인간이라 인사드리는 것입니다. 음식보다 이게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실내 급식을 했었지만, 감염 우려로 이젠 마당에서 먹습니다.

그 가운데 도시락을 챙겨 전철역으로 가는 사람들, 서울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성북구에서 왔어요.]

[서울에서. 천호역에서.]

길목에 잠시 멈춰 서더니 가방에 도시락을 밀어 넣습니다.

[D씨/서울에서 원정 온 노숙인 : 들고 다니는 게 창피하잖아, 전철에. 자존심이죠, 본인의…]

서울 급식소들이 문을 닫고, 일부에선 방역을 위해 노숙확인증을 요구하자 지방까지 내려온 겁니다.

몇 시간씩 걸려 힘들게 왔습니다.

그래도 오늘 한 끼를 해결했습니다.

[E씨/서울에서 원정 온 노숙인 : (선생님, 그러면 이거 점심이에요?) 이거요? 저녁으로 먹으려고 그래.]

이들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뭐 하는 거야. 거리두기 하나도 안 하잖아, 지금!]

[전철역 관계자 : 연세가 많은 분들은 무임이나 다 그렇잖아요. 저렇게 공짜로 주니까 더 일을 안 하시는 거죠.]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급식소에 대한 각종 민원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무료 급식을 하는 사람들은 이럴 때일수록 이들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김하종/신부 (안나의 집 대표) : 이분들을 관리하고 식사 드리면 이 사람들도 건강하고 국민에게 피해 주지 않아요. 식사 못 하면 병 걸려서 다른 사람에게 쉽게 옮길 수 있어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무너지고 있습니다.

특히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은 더 무방비 상태입니다.

노숙인 숫자만 관리할 것이 아니라, 이들과 함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책을 고민해봐야 할 때입니다.

(VJ 서진형 / 영상그래픽 : 박경민 / 인턴기자 : 황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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