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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마을 뒤덮은 '회색빛 가루'…주민들 "수십년 고통"

입력 2020-11-30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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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붕에도, 장독대에도, 태양광 패널에도, 뿌옇게 먼지가 쌓였습니다. 여기저기서 보이는 회색 가루들은 60년대부터 지어진 시멘트 공장의 분진이라고 주민들은 말합니다.

시멘트 공장의 분진을 둘러싸고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분쟁과 그 배경을 밀착카메라 홍지용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충북의 한 시멘트 공장입니다.

굴뚝에서 회색 연기가 나옵니다.

높게 치솟습니다.

주변 하늘이 차츰 탁해집니다.

시멘트 공장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생태공원으로 가는 길목인데요.

바닥에 정체불명의 회색 가루가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

공장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마을입니다.

마을 전봇대와 도로 가드레일, 여기저기 검은 얼룩이 보입니다.

[장윤영/충북 단양군 : 끈적끈적해 먼지가 이게 먼지가. 닦아도 지질 않고, 시멘트 그대로 굳어 버렸어요. 여기 살던 사람들이 전부 관절하고 호흡기는 다 좋지 않았던 거 같아요.]

한때 이 공장 근처에서 700여 가구가 살았습니다.

1989년, 공장 분진과 소음으로 생활이 어렵다며 주민들이 이주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시멘트 업체가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 집을 샀고,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주민 이전이 추진됐습니다.

하지만 삶의 터전인 논과 밭을 포기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업체와 논밭을 사주는 문제에서 갈등이 생긴 주민들이 남았습니다.

장독대 뚜껑이 뿌연 먼지로 덮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닦지만, 금방 이렇게 먼지가 쌓인다고 합니다.

이쪽으로 오시면요, 냄비가 있습니다.

검게 얼룩졌는데 씻기 위해 꺼냈습니다.

닦아낼수록 원래 모습을 찾습니다.

바로 옆 솥에는 비닐을 씌워 놨습니다.

먼지를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두 달 전부터 텃밭에 기르기 시작한 배추는 먼지가 쌓여 먹지 못하게 됐습니다.

[장현수/충북 단양군 : (공장에서) 낮에는 이제 (연기를) 안 뿜고, 밤에 먼지 가루가 많이 날아와요.]

강원도 동해의 시멘트 공장 주변 마을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을 구석에 버려진 회색 덩어리들입니다.

시멘트 가루가 지붕 위에 오래 쌓여 있다가 굳어진 겁니다.

[최이순/강원 동해시 : (여기까지가 원래 지붕이고, 분진이 층층이…) 예. 이걸 다 회사에서 수거하고 새 지붕을 갈아주고, 이제 다시 이걸 가져가서…]

시멘트 가루는 돌담에도 강가에도 날아와 쌓였습니다.

[여기 사람들 참 고생스러운데, 돈이 없으니 떠나질 못하고 이리…시멘트 가루 맡고 산다니. (회사 측에서는 이주 비용이라든지 이런 걸 해주겠다는 얘기가 없나요?) 없어요.]

1960년대부터 시멘트 공장이 속속 들어선 이후 근처 마을에서 겪는 일들입니다.

환경 피해와 함께 주민들의 건강에도 이상 신호가 켜졌습니다.

지난 2013년 환경부는 시멘트 공장의 먼지와 주민들의 폐질환에 관련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충북과 강원 일대에서 진폐증 환자 84명, 만성폐쇄성 폐질환자 694명이 확인됐는데, 시멘트 공장이 없는 지역에 비해 환자가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하지만 법원에선 시멘트 업체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주민들이 공장에서 나온 시멘트 분진에 직접 노출됐다고 볼 수 없고, 발생한 병의 직접 원인이란 점을 입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업체들은 정부의 강화된 환경 기준에 맞춰 친환경 설비를 늘리면서 시멘트 분진의 유출은 과거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시멘트업체 관계자 : (시멘트공장과 주민 폐질환 사이) 인과관계 있다고 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환경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거든요. 관련 설비를 계속 교체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공장 굴뚝마다 설치한 측정기로 유해 물질의 농도를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가 정한 기준치 이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일부 분진이 공장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최병성/환경운동가 : 분진 나오는 곳이 1곳이 아니라 (연기가) 나온 자리를 적어도 4곳에서 봤어요. 잠깐 먼지가 나오는 게 아니라 2시간 넘게 계속해서 뿜어냈다. 그것까지 더할 경우 정확한 조사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전문가들은 오랜 시간 분진을 마시면 기도가 좁아져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의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김우진/강원대병원 환경보건센터장 : 시멘트공장 주변 주민들은 기도 벽이 많이 두꺼워졌고, 움직임이 제한되는 현상을 볼 수 있었거든요. 분진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기관지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시멘트 산업은 반세기 동안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죠.

그 밑바탕에는 크고 작은 호흡기 질환으로 신음하는 지역 주민들이 있습니다.

이들과 상생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VJ : 최진·서진형 / 인턴기자 : 황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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