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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조두순 심리치료는 왜 3년이나 밀렸을까?

입력 2020-11-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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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조두순 심리치료는 왜 3년이나 밀렸을까?

흔히 조두순 같은 흉악범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합니다. 

형벌이 왜 필요할까요. 첫째로 자유를 제한하고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징벌적 기능이 있습니다. 두번째로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기능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능은 다시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막는 것이겠죠. 

구치소와 교도소에선 재범 방지를 위해 성범죄자 등 일부 수용자들을 상대로 심리치료를 벌이고 있습니다.

최근 JTBC 취재진은 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의 출소를 앞두고, 재발 방지대책과 수용자 심리치료 제도 실태를 짚었습니다.
 


 
[취재설명서] 조두순 심리치료는 왜 3년이나 밀렸을까?

 
● 조두순은 원래 재범위험성이 낮았다?

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의 심리치료 내역을 살펴봤습니다. 지난 12년 형기 동안 총 550시간의 심리치료를 받았습니다. 2017년 100시간 '기본과정' - 2018년 300시간 '심화과정' - 2020년 150시간 '특별과정' 프로그램을 밟았습니다. 

두 가지가 이상했습니다.

먼저 '기본과정'은 교도소 수용자 상대 심리치료 중 가장 낮은 단계의 프로그램입니다. 집중(200시간), 심화(300시간) 과정보다 적은 100시간으로 구성돼있습니다. 평가 결과 재범위험성이 가장 낮다고 여겨지는 그룹의 사람들에게 처방됩니다. 조두순에게 어떻게 이런 처방이 가능했을까요? 

법무부의 대답은 그 당시 평가 체계가 허술했다는 겁니다. 재범위험성 평가는 1차(정적 평가)로 범죄 경력, 나이, 지능 등 '바뀔 가능성이 없는 위험 요인'을 평가합니다. 그리고 2차(동적 평가)로는 성격, 충동성, 자존감 등 '변화하는 요인'을 인터뷰로 심층 평가합니다. 1차 평가에서 위험성이 낮게 나오면, 2차 평가를 안 받기 때문에 조두순은 1차 평가 결과로 2017년 가장 낮은 단계의 프로그램을 듣게됐다고 했습니다.

 
[취재설명서] 조두순 심리치료는 왜 3년이나 밀렸을까?

2018년이 되어서야 재범위험성 평가 방식이 개선돼 다시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조두순에게 1·2차 평가를 모두 해봤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재범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는 겁니다. 낮았던 재범위험성이 갑자기 높아진 게 아니라, 충분히 평가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2009년 확정판결을 받은 조두순은 왜 2017년이 돼서야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을까요. 법무부는 2011년 아동성폭력사범에 대한 심리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수용자들의 재범위험성을 평가하는 체계는 2014년에야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2014년 조두순은 첫 평가를 받았고 그 때 100시간의 심리치료를 처방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3년 동안 시작도 못 한 이유는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수용자들이 밀려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법무부의 설명입니다. 심리치료를 할 사람도 공간도 부족했다는 겁니다. 출소일 순으로 치료를 진행해서, 조두순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3년 동안 1시간도 듣지 못했다는 겁니다. 

● 전문 상담인력 부족해 겉도는 심리치료

지금은 상황이 좀 나아졌을까요. 현장에선 제자리걸음이라고 말합니다.

지난해 전국에서 심리치료를 받은 수용자는 4947명입니다. 법원에서 판결을 받을 때 심리치료 수강 명령을 함께 받은 사람들이 주 대상입니다. 불특정한 대상에게 범죄를 저지른 사람, 도박·약물사범 등에 대한 프로그램들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1년에 16억 8600만원 정도. 한 달에 1인당 2만 8000원 정도 돌아가는 수준입니다. 상담·임상 학사 또는 석사 학위 소지 심리치료사가 성범죄자를 1시간 상담치료하고 받는 시급(4만~6만원)도 안 됩니다.

 
[취재설명서] 조두순 심리치료는 왜 3년이나 밀렸을까?

수용자 심리치료는 상담이나 임상 경험이 풍부한 전문 치료 인력이 많이 모여들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잠시 상담 경력을 쌓기 위해 짧은 기간 몸담는 상담사들이 많아 전문성을 확보하기도 어렵습니다.

외부 강사를 부를 돈이 충분하지 않으니, 법무부는 일반 교도관들을 상담 치료에 투입하거나 전문 상담사를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전국에서 심리치료 업무만 맡는 '심리치료과'가 있는 곳은 교정시설 53곳 중 5곳에 불과합니다

심리치료과가 없는 나머지 교정시설에선 심리치료가 보안과 업무 중 하나로, 본래 업무를 하면서 겸업을 하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문 자격을 갖추고 심리상담 특별채용으로 들어간 직원들까지 일반 교정 공무원과 똑같이 순환보직을 시킵니다. 상담 전문 인력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업무를 돌아가며 맡게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환경에서 수용자들 각각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분류하는 작업이 제대로 되기 힘듭니다. 조두순에게 '기본과정'을 처방했던 것과 같은 상황은 지금도 벌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심리치료 대상자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축에 속합니다. 대인관계나 의사소통 능력이 많이 부족해 치료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많고, 미숙한 치료사가 수용자의 분노나 반사회성이 높아지는 계기를 만드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숙련된 전문 상담 인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 "범죄자 심리치료는 사회적 투자"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치유의 대상으로 보는 것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심리치료는 언제고 우리 사회에 이웃으로 돌아올 사람들이, 보다 나은 모습으로 섞여살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리치료에 드는 예산은 성범죄자를 위한 비용이 아니라 성범죄자로부터 우리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조두순을 면담했던 전 프로파일러 권일용 동국대 교수는 조두순을 '비정상적으로 고집이 센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명백한 물증과 사실관계를 모두 부인하면서 거짓말로 일관해 대화 자체가 안 됐다는 겁니다. 죄질이 나쁜 범죄자들 상당수가 그렇다고 합니다.

권 교수는 "특히 아동성범죄의 경우 심리적 문제들을 본질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처벌이나 억제 정책 만으로 동기가 소멸되거나 바뀌지 않는다"며 "사회가 책임감을 가지고 예산과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오래오래 감옥에 가두어 벌을 주는 것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겁니다.

지난달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진(대표연구자 윤정숙 국제협력실장)이 심리치료를 받고 나간 성범죄자들을 추적해본 결과가 나왔습니다. 「교정시설내 성범죄자 심리치료 프로그램 효과성 평가 연구」에 따르면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수료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30%정도 재범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해외에서 보고되는 수치도 비슷하다고 합니다.

 
[취재설명서] 조두순 심리치료는 왜 3년이나 밀렸을까?

심리치료 현장의 전문가들은 가끔 놀라운 변화를 목도합니다. 2013년부터 심리치료 업무를 맡아온 김근국 안양교도소 심리치료팀장은 "형 확정 시까지 법정에서 줄곧 혐의를 부인해왔던 20대 남성이 심리치료 과정에서 자신의 죄를 이해하고 인정한 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수용자는 심리치료 과정에서 어렸을 적 심각한 가정폭력 학대 피해를 입었음이 파악돼 관련 상담치료도 함께 받았습니다. 이 수용자는 수감 중 검정고시에 합격해 출소 후 대학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혐의를 인정하고 수감 상황에 대해 느끼는 억울함이 줄어드니, 새 삶을 살아보고픈 희망이 생겼다는 겁니다. 

이렇게 선명한 결과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수라고 하더라도,수용자의 재범을 끊어 막을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은 추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취재설명서] 조두순 심리치료는 왜 3년이나 밀렸을까? 10개월 간 미술 심리치료를 받은 30대 남성이 그린 '사람 그림'. 왼쪽이 이수 전, 오른쪽이 이수 후 그림.

● 조두순, '분노유발자'로만 남아선 안 되는 이유

두달 전 조두순의 상담 보고서 내용 일부가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피해자 가족이 살고 있는 안산으로 다시 돌아와 살 예정이라는 점부터 평범한 삶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까지 내용 하나하나가 대중의 분노와 공포심을 자극했습니다. 조두순의 말과 행동을 기록했다는 동료 수감자의 증언을 토대로 조두순의 불량한 수감 생활 면면이 알려지며 한번 더 들끓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치 못한 말을 했습니다. "조두순 기사를 그만 쓰는 것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조두순에게 쏟았던 우리의 시선을 더 많은 조두순들로 넓혀 분산시켜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범죄자 심리 치료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형기를 마치고 풀려난 범죄자를 관리하는 대책만큼, 형기 중 범죄자를 변화시키기 위한 작업도 주목받아야 합니다. 범죄자를 응징하는 것만으로는 범죄가 되풀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범죄의 뿌리를 캐내는 과정이 충분한 지원을 받고,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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