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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친환경차 전환, 몸 따로 마음 따로

입력 2020-10-26 09:52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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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49)

지난주 연재에서 국내외 자동차 제조사들이 잇따라 전기차 출시 준비를 마쳤다는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2021년, 전기차 출시를 안 하는 제조사를 찾기가 더 어려울 만큼 기존 내연기관에 집중하던 제조사들이 앞다퉈 전기차 시장에 본격 뛰어드는 거죠. 그 배경엔, 단순히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지구를 걱정하는 마음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판매하는 자동차의 탄소배출량에 따른 대규모의 '벌금 폭탄'이 있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친환경차 전환, 몸 따로 마음 따로

내년이 되면, 더 이상 "마땅한 선택지가 없다"고 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체급과 가격대의 전기차가 쏟아질텐데, 과연 우리는, 우리의 주변 환경은, 우리나라의 전기차 환경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히 됐을까요.

#지자체도_정부기관도_못_지키는데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인 그린뉴딜에 나서면서 '친환경 미래차 보급'을 대표 과제로 소개하기도 했죠. 민간 시장에서의 전기차 확대가 잘 이뤄질지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시범적'으로 변화에 나서는 공공부문의 사례를 살펴보는 겁니다.

정부는 2018년부터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 일정 비율 이상을 저공해차로 구매(혹은 임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2019년도 저공해차 의무구매비율은 70%였습니다. 이들 기관이 운영하는 차량의 70%는 저공해차량이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이를 지키지 못 해 환경부가 과태료를 부과한 곳이 수도권에서만도 46곳에 달합니다. 의무 대상 226곳 중 20% 넘는 곳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 한 겁니다. "그래도 80%가 달성한 것 아니냐"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이 기준을 따지는 방법을 보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차나 수소차와 같은 제1종 저공해차엔 1.5점, 제2종 저공해차(하이브리드차)엔 1점, 일반 휘발유차나 가스차 가운데 일부 차종들이 속한 제3종 저공해차엔 0.8점을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다시 말해, '저공해차 의무 구매'가 곧 '전기차(혹은 수소차) 의무 구매'가 아닌 겁니다.

그렇다면, 말 그대로 진짜 저공해차, 소위 '찐 친환경차'만을 선택한 곳은 얼마다 될까요.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구매 및 임차한 모든 차량을 전기차나 수소차로 선택한 기관은 단 11곳 뿐이었습니다.

이 저공해차 의무 구매는 점차 그 기준이 까다로워질 예정입니다. 올해부턴 구매 또는 임차하는 차량의 70%가 아닌 100%가 저공해차여야 하고, 내년부턴 이중 80% 이상을 제1종 저공해차로 구성해야 합니다. 2022년부턴 구매 또는 임차하는 모든 차량이 100% 제1종 저공해차여야 하고요. 정부와 지자체도 스스로 이를 지키지 못 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요구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의 변화를 잘 지켜봐야겠습니다.

#안_그래도_부족한_급속충전기_1년에_고장_건수_1천건_이상
현재 전기차 급속충전 인프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환경부가 설치 및 운영 중인 시설입니다. 기후변화 대응 주무부처로서 적극 인프라 확장에 나서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많은 전기차 오너, 예비오너들은 인프라 부족을 토로하고 있지만 말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친환경차 전환, 몸 따로 마음 따로 (자료: 안호영 의원실, 환경부)

그런데 당장 충전소의 개수도 개수지만, 고장이 잦다는 것 역시 큰 문제로 꼽힙니다. 올해 8월 기준, 환경부 급속충전기는 전국 2896기. 그런데, 올해 기록된 고장 건수는 1792건에 달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실은 환경부 급속충전기의 고장 현황 자료를 확보해 공개했는데요, 이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해마다 1천건 넘는 고장이 일어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사유별로는 충전 오류(커넥터 연결 오류 등)가 956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밖에도 각종 정보를 확인하고 입력하는 LCD의 이상이 306건에 달했고, 통신 미연결 144건, 프로그램 오류 128건 등 다양한 원인들로 전기차 운전자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수의 브랜드들이 앞다퉈 전기차를 시중에 내놓는다면, 그에 발맞춰 전기차 인프라의 규모도, 그 인프라의 질도 달라져야겠죠. 시민들에게 '전기차로의 전환'을 요구하면서 뒷일은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단순히 기후변화 대응 정책뿐 아니라 정부 정책 자체에 대한 불신을 부르게 될 겁니다.

#그나마_전기차는_양반_수소차는_어쩌나
전기차의 인프라만 문제일까요. 수소차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충전 인프라 확대를 외치고 있지만 2020년 8월말 기준, 전국의 수소충전 시설은 47기뿐입니다.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대구, 세종, 강원, 경북 4곳은 충전기가 단 1기 뿐이죠.

시설도 시설이지만 당장 공급 가능한 수소의 양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실은 전국의 수소 충전 인프라 현황을 공개했는데요, 각 지역별로 수소차 1대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충분히 충전을 할 수 있는지 분석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전국 평균 수소차 1대당 하루에 1.44kg의 수소밖에 충전할 수 없습니다. 국내 유일 수소차인 현대 넥쏘의 경우, 탱크 용량은 6.3kg입니다. '가득' 충전이 불가능한 수준인거죠. 이 역시 지역별로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친환경차 전환, 몸 따로 마음 따로 (자료: 이수진 의원실, 환경부)

강원도의 경우, 하루에 대당 0.43kg밖에 충전할 수 없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소차 등록대수를 자랑하는 울산(1125대)의 경우, 6기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충전 인프라를 자랑하지만 하루에 대당 1.26kg밖에 충전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수소 탱크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지자체는 전국에서 세종(6.94kg/대)과 전남(7.04kg/대), 경북(31.25kg/대) 단 세 곳 뿐입니다. 기준을 낮춰서, 통상 1회 충전량인 4kg을 충족시키는 지역을 찾아봐도 위의 세 곳에 대구(5.21kg/대), 전북(4.33kg/대), 충북(4.29kg/대)이 추가될 뿐입니다.

그렇다고 이들 지역에 충전기가 많아서 이 수치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세종과 경북은 단 1기, 전남은 2기 뿐이지만 이 지역에 등록된 수소차가 적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거죠. 당장 수소차 등록대수가 1천대를 넘는 지역(경기, 서울, 울산) 중 넥쏘의 탱크를 마음 놓고 가득 채울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왜 이리도 인프라 확대가 지지부진한 걸까요. 이수진 의원은 "현재 운영중인 수소 충전소는 높은 원료 공급가, 인건비 등으로 연간 평균 1억 5천만원의 적자가 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매달 1200만원 넘는 돈을 손해보는 겁니다. 사업성이 부족한 상황에 민간 사업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적극적인 참여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죠.

당장은 보조금 지급이 임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수소 충전소 설치 후 최대 3년간 운영비의 60~100%를 지원해주고 있고, 영국은 50%를 지원해주고 있죠. 하지만 이런 보조금을 천년, 만년 지급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당장 가장 중요한 것, 근본적인 해결책은 높은 수소 원가를 낮추는 것이죠. 현재 수소 공급가격은 kg당 7천원입니다. 그나마 적자를 보전할 수 있을 걸로 여겨지는 가격대는 5천원 아래. 이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신속히 이뤄져야 기후변화 대응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외친 '수소 경제'도 '실현 가능한 일'이 될 것입니다.

#주유를_넘어_충전으로_정유사의_탈정유
인프라의 부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그래도 반가운 소식이 하나 들려왔습니다. 국내 대표적인 정유사 4곳이 전기차 충전에도 나서기로 한 것이죠.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이 바로 이 4곳입니다.

사실 정유사의 탈정유 움직임은 이미 해외에서 시작됐습니다. 영국의 BP(British Petroleum)는 사명을 활용해 아예 '석유를 넘어(Beyond Petroleum)'라는 모토를 내세우는 데에 그치지 않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 10년간 매년 50억 달러를 재생에너지와 바이오에너지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BP뿐 아니라 쉘 역시 탄소중립을 선언했죠. 석유를 팔아 돈을 버는 회사가 탄소중립을 선언했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습니다. 석유로 사업을 일궈 현재까지 돈을 벌고 있지만, 이것이 곧 '좌초자산'임을 깨달은 겁니다. BP는 130~175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상각하고 나섰습니다. 우리 돈 약 21조원 규모입니다. 당장의 이유야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인한 경기침체, 그에 따른 유가 하락이지만 이를 시작으로 좌초자산 털어내기가 시작된 셈이죠. BP는 또, 앞으로 원유를 더 뽑아내기 위한 새로운 지역에서의 신규 탐사도 하지 않는다는 방침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국내로도 이어졌습니다. 이들 정유 4사는 기존의 주유소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기차 초급속 충전소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이미 각각의 정유사들은 충전기 업체들과 파트너십도 맺은 상태죠. 기존 주유 방식보다 정차 시간이 긴 만큼, 여기에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공간의 변화'도 예상됩니다.

#보급만_하면_끝?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그저 '연료의 전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겉보기에 비슷하게 보이는 형상을 띄고 있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패러다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부를 만큼,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는 다른 개념의 '물건'입니다.

그간 자동차 제조사들은 엔진과 변속기 개발이 가장 핵심이었습니다. 같은 양의 화석연료를 태우더라도 더 많은 힘을 낼 수 있도록, 더 먼 거리를 갈 수 있도록 노력했던 거죠. 그런데, 전기차에선 이 둘이 아예 없거나 없어도 무방한 것들입니다. 수십, 수백년간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입해 개발해온 것들이 한 순간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자동차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동차를 폐기하는 데에도, 바로 폐차에도 마찬가지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전기차 폐차와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의 폐차를 '그저 똑같은 일'로 여기고, 똑같은 프로세스를 거쳐 작업할 수 없는 겁니다.

그렇다면, 전기차로의 전환을 앞둔 지금 폐차 시스템은 얼마나 준비됐을까요. 2010년부터 올해 7월까지 총 540대의 전기차가 말소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배터리 폐기의 경우, 벌써부터 '구멍'이 발견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2013년부터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말소시 폐배터리를 각 지자체에 반납토록 해왔습니다. 그러다 2018년부터 '전기자동차 배터리 반납에 관한 고시'를 제정하며 이를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죠.

 
[박상욱의 기후 1.5] 친환경차 전환, 몸 따로 마음 따로 (자료: 김웅 의원실, 환경부)

국민의힘 김웅 의원실은 환경부의 폐배터리 보관 현황을 들여다봤습니다. 관련 고시가 만들어진 2018년 이전의 폐배터리의 경우 아무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540대의 전기차가 폐차됐는데, 이중 208대분의 폐배터리는 소재 파악조차 어려운 상태인 겁니다. 2010~2012년은 행정의 '공백기'라고 하더라도, 지자체에 폐배터리 관리 의무를 명시한 2013년부터 2017년조차 아무런 기록 없이 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거죠.

배터리엔 산화코발트 리튬, 망간, 니켈 등 여러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법적으로 유독물질로 분류되기도 하죠. 이러한 폐기물을 제대로 관리 안 한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이를 재활용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습니다.

테슬라를 필두로 전기차 시장이, 즉 배터리 시장이 점차 확대되면서 배터리 재활용은 향후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큰 분야로 꼽힙니다. 기존엔 전자제품, IT기기에 국한됐던 배터리의 사용처가 모빌리티 분야로 확대되면서 배터리 자체 수요도 많아질뿐더러, 용량 역시 다각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폐배터리 관리는 단순히 폐기물 관리를 넘어 '원료 관리'로서의 가치도 갖게되는 겁니다.

뒤늦게나마 환경부는 '미래 폐자원 거점 수거센터' 사업을 준비중입니다. 수도권과 영남, 호남, 충청 총 4곳의 거점 지역에 171억의 예산을 투입해 수거센터를 만든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중복 투자', '뒤늦은 결정'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 의원은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폐배터리의 잔존가치를 확인해 지난해 6월 '제주도 배터리 산업화 센터'를 개소했고, 나주와 울산에도 이를 건립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뒤늦게 폐배터리의 가치를 깨달은 정부 부처들이 서로 관련 사업에 뛰어들면서 서로의 사업 분야가 뒤엉키는, 곧 혈세 낭비로 이어지는 결과가 우려된다는 것입니다.

친환경차로의 전환을 앞두고 우려되는 부분과 기대되는 부분을 이렇게 간략하게나마 정리해봤습니다. 사실 이런 우려들은 이미 대다수가 예견됐던 내용이죠. '전기차 원년' 2021년까지 이제 불과 두 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다시 한 번 정리까지 한 만큼, 부디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와 대책을 갖고서 원년을 맞이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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