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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와해' 새 증거 나왔는데…재판 두 번 만에 '삼성 승소'

입력 2020-09-21 21:28 수정 2020-09-2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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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삼성에서 8년 전에 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했습니다. 자신을 '문제 인력'으로 지목하며 '고립화 전략'을 짠 삼성의 내부 문건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이 문건을 아예 다루지 않았습니다. 재판은 단 두 번 만에 끝났고 이긴 쪽은 삼성이었습니다. 이 노동자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 법원이 검토도 안 했다며 항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지혜 기자입니다.

[기자]

2011년 11월 작성된 삼성 내부 문서입니다.

삼성 SDI의 직원인 이만신 씨가 '문제 인력'으로 지목돼 있습니다.

이씨에 대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노조를 설립하려 했다"고 적혔습니다.

이씨를 고립시킬 전략도 담겼습니다.

이듬해 6월 작성된 또 다른 문서입니다.

미래전략실과 SDI 수뇌부의 대책회의 내용이 나옵니다.

이씨의 파렴치성을 최대한 부각하라고 쓰였습니다.

징계위원회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뒀다고 돼 있습니다.

그 뒤 이씨는 해고됐습니다.

이 문서들은 삼성 노조와해 의혹을 수사한 검찰이 2018년 확보한 것들입니다.

이씨는 이를 근거로 지난해 8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전현직 임원이 대상이었습니다.

지난 14일 1심 재판부는 삼성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씨가 해고무효 소송을 냈다가 2016년 대법원에서 졌다는 걸 주된 근거로 삼았습니다.

문제는 이 문서들은 그 뒤에 공개됐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근거들을 증거로 삼아 따져볼 수도 있었지만, 법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도 단 2번 만에 끝났습니다.

[김낭규/이만신 씨 법률대리인 : 문서 제출물 채택도 안 됐어요. 실제로 이 사건에서는 특이한 점이 증거 조사나 사실 심리에 관한 것들은 어느 한 번 한(다룬) 적이 없어요.]

2016년 대법원의 판결은 삼성이 '근로기준법'을 어겼는지를 따지는 판결이었습니다.

반면 이번 소송은 '노동조합법'을 위반했는지가 쟁점이었는데, 재판부가 충분히 따져보지 않았다고 이씨 측은 주장합니다.

[김낭규/이만신 씨 법률대리인 : 해고 사유가 문제가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노동자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본인을 해고한 거잖아요. 이거는 (적용) 법 자체가 달라지는 거죠.]

이씨 측은 주심 판사와 삼성 측 변호사가 연수원 동기인 점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씨 측은 법률 검토를 거쳐 조만간 항소할 예정입니다.

■ "노조설립 앞장섰다가 왕따"…'외로운 싸움' 9년

[앵커]

방금 보도해 드린 이만신 씨는 삼성에서 26년간 일했습니다. 노조 설립을 위해서 발 벗고 나선 뒤에는 조직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해고된 뒤엔 가정도 무너졌습니다. 이씨는 "법이 여전히 재벌의 편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이도성 기자입니다.

[기자]

이만신 씨는 1987년부터 삼성SDI의 전신인 삼성전관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26년이 지난 2012년, 회사를 나가야 했습니다.

회사는 근무태만과 지시불이행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이씨는 노조설립위원장을 맡은 게 이유였다고 주장했습니다.

9년 동안 길거리에서 회사와 싸웠습니다.

복직을 요구했습니다.

[이만신/삼성SDI 해고노동자 : 아직도 삼성은 변하지 않았고 이재용 부회장이 노조 인정한다는 것도 말뿐이고.]

회사 생활을 할 때엔 따돌림도 당했습니다.

해외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고도, 별다른 일을 맡지 못했습니다.

노조 설립을 위해 애쓴 게, 조직적인 불이익으로 돌아왔다고 느꼈습니다.

[이만신/삼성SDI 해고노동자 : 오죽하면 현지인들이 저보고 제가 이씨니까 이건희 집안이라고 질문을 하더라고요. 왜, 저는 일이 없었거든요. '왕따' 생활을 했습니다.]

지난 2014년엔 해고무효소송 1심에서 이겼습니다.

그간 밀린 임금을 삼성에서 받았습니다.

하지만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판단이 뒤집혔습니다.

받은 돈에 이자까지 삼성에 고스란히 돌려줬습니다.

안식처였던 가정에 금이 갔습니다.

[이만신/삼성SDI 해고노동자 : 내가 받은 돈은 주겠다고 했는데 이자까지 다 달라고. 어쩔 수 없이 2억이 넘는 돈을 다 지불하고.]

'삼성 노조와해 문건'은 희망의 불씨였습니다.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하지만 단 2번의 재판에서 문서들은 끝내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만신/삼성SDI 해고노동자 : 약자를 봐달라는 게 아닙니다. 재판부가 잘못하고 검찰이 잘못하면 어떻게 우리가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몫입니다.]

(영상그래픽 : 이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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