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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비대면 사회의 그늘…위험과 불편에 놓인 시각장애인

입력 2020-09-15 21:14 수정 2020-09-1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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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서로 만나지 않는 비대면 사회가 일상이 됐지요. 새롭게 적응하기 위해 모두가 애쓰고 있는데, 시각 장애인들의 하루하루도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점자가 새겨진 엘리베이터 버튼을 덮고 있는 항균 필름도, 또 간편한 신분 확인 절차로 이용되는 스마트폰 QR코드도 손으로 만지거나 소리를 들어야 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겐 또 다른 벽입니다.

밀착카메라 홍지용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고, 시각장애인 안마사 채수용 씨가 걸어 나옵니다.

승강기에 탑니다.

왼손으로 버튼을 더듬습니다.

1층을 누르려 하지만, 찾지 못합니다.

시력을 완전히 잃은 '전맹' 상태의 채씨.

[채수용 : 지금 이거는 여기를 봐봐요. 2층 옆에 1층 버튼 쪽이 붕 떠 있거든.]

결국 버튼을 눌러 1층에서 내립니다.

최근에 교체한 항균 필름들입니다.

이 점자를 하나씩 눌러봐도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쪽을 보시면 오래 써서 자국이 남아있는 필름이 보이실 텐데요.

이 정도는 돼야 몇 층인지 읽을 수 있습니다.

[채수용 : 사실 항균 필터라고 해놨는데, 저희들한테는 오히려 좀 더 불안해요. 옆에서부터 더듬어서 버튼을 찾아가야 하다 보니까…]

시각장애인용 유료 콜택시를 불렀습니다.

[채수용 : 연결 시간이 빠르면 한 20~30분, 아니면 길게는 1시간 이상씩도.]

손잡이를 잡고, 상가 계단을 한 걸음씩 내려갑니다.

안마원에 도착하자 세면대로 향합니다.

[채수용 : (손부터 먼저 씻으시네요?) 워낙 위험한 시기여서. 혹시 감염될까 싶어서.]

평소 하루에 50명 넘게 찾지만, 오늘은 반나절 동안 4명이 다녀갔습니다.

한 부부 손님을 만났습니다.

[정해성 : 제가 처음에 안마센터에 오게 된 게 목에 담이 왔었는데. 예전에는 무조건 꽉 차서 풀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그러나 채씨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합니다.

[채수용 : IMF 때보다도 현실적으로는 제일 더 힘들어요. 지금이 더 힘든 시기고요. 시각장애의 문제가 있다보니까 다른 일을 할 수 없다보니까, (수입이) 감소하는 걸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채씨처럼 중증 시각장애를 앓는 사람은 4만8천여 명.

이 가운데 1만여 명 정도가 안마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집 안에 있는 시각장애인도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은퇴 후 혼자 살고 있는 김호걸 씨.

코로나 이전보다 외출을 줄였습니다.

점자 단말기로 책을 읽고, TV를 켜서 소리를 듣고, 바닥을 닦습니다.

[김호걸 : 처음에는 진짜 '2주 후면 되겠지, 3주 후면 되겠지' 하는 게 벌써 몇 개월이 지났잖아요.]

계기를 묻자, 지인이 코로나에 걸린 사연을 말합니다.

[김호걸 : 본인이 전화한 거예요, 나한테. 자가격리했는데 진짜 나오고 싶었는데 못 나오겠더라. '나도 조심해야지' 하는 생각이죠.]

집 밖에 나갔다가 겪은 일도 털어놓습니다.

[김호걸 : 어느 복지관에 가니까 'QR코드 하셔야 해요' 그래서 결국은 못 들어갔어요. (활동)지원사분도 조금 서툴러요. 보시는 분인데도 스마트폰이 좀 서툴러서. 차라리 제가 포기하는 게 서로 간에 좋겠죠.]

스마트폰도 씁니다.

물건을 주문하거나 배달을 시키는 건 아직 어렵습니다.

한 쇼핑 앱에서 사고 싶은 물건을 찾았지만, 눌러도 안내 음성이 나오지 않습니다.

[김호걸 : (상품이 있는 자리를 손으로 만지셨어요.) 상품이라고 그랬죠, 분명히. 제가 몰라요 이걸. 그러면 나머지도 여기도 지금 모르고. 이렇게 읽어줘야 해요.]

글자를 소리로 바꿔 들을 수 있지만, 제품의 설명이나 코로나 확진자 동선 같은 정보가 그림 파일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김호걸 : 사람이 뭔가 처지는 느낌이 들어요. 대화라는 게 필요하고… (전화를 하거나 스마트폰으로는?) 양이 안 차죠.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까이서 대화한다는 그 자체가 또 의미가 있지 않겠어요.]

올해 대학을 졸업한 김한솔 씨는 학교 근처 스튜디오로 왔습니다.

[김한솔 : 유튜브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드디어 Q&A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각장애인은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자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론 김씨도 속으로는 많은 불편을 겪고 있었습니다.

[김한솔 : 강의를 들으려고 해도 화면 해설, 진짜 이거 저거. 여기다가 이거를 해가지고 그러면 이 그래프에서 어떻게 되지. 누구는 1시간 공부하는 걸 저는 5~6시간 이상은 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길을 가는 위험도 있었습니다.

[김한솔 : 누구한테는 쉽게 볼 수 있는 그 바닥 보면 알 수 있는 위치가 저희는 무조건 만져야 알 수 있는데.]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힙니다.

[김한솔 : 너무 획일화된 모습으로 장애인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많이 소통을 하고 싶습니다.]

시각장애인에게 비대면 사회는 또 다른 의미의 위기입니다.

이들은 각자의 노력으로 위기를 견뎌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부족합니다.

(영상그래픽 : 한영주 / 인턴기자 : 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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