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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이상(異常)'

입력 2020-08-10 09:28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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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38)

통상 사소한 변화는 큰 변화보다 알아차리기 어렵기 마련이죠. 그런데, 그 변화가 너무 커도 알아차리기 어렵기도 합니다. 지구가 자전하는 속도는 시속 1600km를 넘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속도를 느끼면서 살아가지 않죠. 강한 바람에 테트라포드를 넘어서는 파도는 우리가 보고 두려워하지만 해수면 자체가 올라가는 것은 체감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이상(異常)'

한 동안 연재를 통해 기후변화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중점적으로 전해드렸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엔 다수가 둔감하지만 돈, 금융, 경제엔 작은 변화에도 모두가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 이런 자연환경의 변화도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양상은 다릅니다만 최근 3년만 돌아보더라도 '전에 없던 현상'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8년엔 역대급 폭염이, 2019년엔 역대급 태풍과 '겨울 아닌' 겨울이, 올해엔 때 아닌 '봄 더위'와 역대급 장마가 찾아왔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기후변화'라는 아이템은 '계절 특수'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엔 기후변화에 주목했고, 그 덕에 기후변화 관련 기사도 여름철에 집중됐죠.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벌어지는 이상 현상은 계절에 상관 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기후변화가 '여름변화'가 아닌 '기후변화'인 이유기도, '온난화'를 넘어 '기후변화'인 이유기도 합니다.

#2018년의 이상(異常): 여름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이상(異常)' 2018년, 일찌감치 곳곳에선 폭염이 시작됐습니다.

2018년, 서울은 1907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높은 공식 최고기온인 39.6℃까지 달궈졌습니다. '대프리카'라는 말처럼 '지역명+아프리카'와 같은 별명은 더 이상 대구의 전유물이 아닌 게 됐습니다. 서울은 서프리카, 광주는 광프리카로 불렸죠. 게다가 그 해 강원도 홍천에선 41.0℃가 기록되면서 그간 대구가 쥐고 있던 '전국 역대 1위' 타이틀도 깨졌습니다. 2018년 여름, 전국 폭염일수는 31.4일에 달했습니다. 역대 최장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이상(異常)' (자료: 기상청)

서울의 밤 역시 2018년 역대 가장 뜨거웠습니다. 역대 1~3위가 모두 2018년 한 해에 나왔는데요, 그 여름 서울의 최저기온은 30.3℃를 기록했습니다. 밤사이 아무리 열이 식어도 30℃를 넘어섰다는 거죠. 서울만 그랬을까요. 인천(29.1℃), 포항(29.3℃), 대구(28.6℃) 등도 여름철 최저기온이 모두 역대 1위였습니다. 이렇게 밤사이 기온이 높았던 만큼 전국의 열대야일수도 17.7일로 역대 최장 기록이 세워졌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이상(異常)' (자료: 기상청)

학창시절 '고온다습'하다고 배운 북태평양고기압은 2018년 이례적으로 아주 강하게 발달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서쪽에서 비롯된 '티벳 고기압'도 한반도를 더욱 뜨겁게 달구는 데에 일조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봄까지 눈으로 뒤덮여 있어야 할 티벳의 고원이 평소와 다르게 더워지면서 동쪽으로 이동, '북쪽은 차고 남쪽은 더운' 본래의 균형이 깨진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이상(異常)' 역대급 폭염의 충격이 채 가시기 전, 강력한 태풍이 제주도를 덮쳤습니다.

그런가 하면, 8월 말 제주도엔 제19호 태풍 솔릭이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지나갔습니다. 우리나라 영토와 가장 가까워지면서, 그중 가장 위력이 강했던 시기에 눈앞에서 태풍을 맞이했던 저로서는 불과 며칠 전의 기록적인 폭염은 머릿속에서 잊혀졌습니다.

상황의 위험성과 심각성, 시급성을 가득 안고, 거짓말처럼 파래진 하늘을 건너 서울로 돌아왔지만 내륙에선 이미 태풍은 잊혀진 뒤였죠. 제주를 지나 내륙을 향하면서 급격히 힘이 빠진 솔릭이었습니다. 지구가, 기후변화가 한반도에 준 시그널은 그렇게 잊혀졌습니다.

#2019년의 이상(異常): 가을, 겨울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이상(異常)' 이어진 2019년 여름도 평년보다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이듬해인 2019년도 안 더웠던 것은 아닙니다. 7월 5일, 서울에 '폭염경보'가 내려졌죠. 여름에 폭염경보가 대수냐 할 수 있겠지만 폭염특보제가 시작한 이래 첫 폭염경보 발령지역이 서울이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역대 1위' 폭염이 찾아왔던 2018년만 해도, 서울에 처음으로 폭염경보가 내려진 것은 7월 16일. 7월 첫 주부터 내려진 폭염경보에 걱정은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 날인 7월 6일, 서울과 인천에선 기상관측 이래 가장 기온이 높았습니다. 이렇게 일찌감치 달궈진 적이 없었던 거죠.

그럼에도 2019년의 '이상(異常)'을 꼽자면, 더위가 아닌 태풍과 겨울인 듯 겨울 아닌 겨울 같은 겨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이상(異常)' (자료: 기상청)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이상(異常)'

그 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태풍의 수는 7개에 달했습니다. "근대 기상업무를 시작한 1904년 이후 가장 많은 수"라는 것이 기상청의 설명입니다. 평년(3.1개)의 2배를 넘는 수죠. 2018년, 솔릭이 준 경고는 현실로 찾아왔고, 남부지방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습니다.

태풍이 발생하는 태평양의 바닷물은 평년보다 뜨겁게 달궈졌고, 계속해서 바다에선 태풍이 만들어졌습니다. 얼마나 물이 달궈졌는지 '가을 태풍'이라는 말과 함께 2019년 온 국민은 태풍 소식에 귀를 기울여야 했고, 태풍의 '고향'에선 가을이 지나 겨울의 길목에 접어든 11월에만도 6개의 태풍이 만들어졌습니다.

물이 천천히 데워지고 천천히 식는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죠. 이렇게 바다가 달궈지면서 우리나라의 겨울도 '본 적 없는' 겨울이 됐습니다. 역대 가장 따뜻한 겨울이었던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이상(異常)' (자료: 기상청)

지난 겨울, 전국의 평균기온은 3.1℃였습니다. 평소엔 0.6℃였는데, 물이 얼을락말락할 정도가 평균이었는데 2.5℃나 높아진 겁니다. 전국 관측지점 45곳의 평균 최고기온은 8.3℃에 달했고, 평균 최저기온은 -1.4℃에 불과했습니다. 한파일수는 0.4일, 하루가 채 안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평소엔 5일 가까이 한파가 찾아왔었는데, 좀처럼 한파가 없는 겨울이었던 겁니다. '온난다습' 북태평양 고기압의 반대인 '저온건조' 시베리아 고기압은 힘을 잃었습니다. 얼음 꽁꽁, 허허벌판을 떠올리게 되는 시베리아에서도 고온 현상이 찾아온 겁니다. 여기에 역대급으로 달궈졌던 태평양은 식기까지 시간이 걸렸죠. 위에서 내려올 찬 공기는 자취를 감췄고, 겨울인데도 이 아열대 서태평양에서 우리나라를 향해 따뜻한 남풍을 불어줬습니다.

#2020년의 이상(異常): 모든 계절?
2018년, 여름이 이상하더니 2019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이상해졌죠. 올해는 봄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3월엔 역대급으로 따뜻하더니 4월엔 역대급으로 쌀쌀해졌고, 그러다 5월엔 다시 평년과 비슷해진 겁니다.

3월의 전국 평균기온은 7.9℃를 기록했습니다. 전국 40여곳에 걸쳐 관측망을 만들어 '전국 평균'이라는 통계를 만들어낸 이래로 두 번째로 높은 기온입니다. 평년보다 2℃가 높았습니다. 반면 4월엔 10.9℃로 역대 다섯 번째로 낮았습니다. 5월엔 17.7℃로 평년(17.2℃)과의 격차가 줄었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이상(異常)' 3월(왼쪽)과 4월(오른쪽), 지구의 기압계 배치를 나타낸 그림. (자료: 기상청)

위의 그림에서도 나타났듯, 3월엔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둬놓은 북극 제트(한대전선 제트기류)가 제 역할을 하면서 한반도로 찬 공기가 내려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반면, 지난 여름부터 평소보다 뜨겁게 달궈졌던 태평양과 거기서 비롯된 이동성 고기압은 우리나라 입장에선 온풍기 역할을 했죠.

그런데 4월엔 점차 고온현상으로 원래 추워야 할 북극에서 그 균형이 깨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되면, 북극 찬 공기를 가두는 제트기류가 파도모양을 그리며 늘어지게 되는데 그 제트기류가 내려온 부분이 한반도에 걸린 겁니다.

추워도 기후변화 때문, 더워도 기후변화 때문…'치트키'인 것이냐는 비아냥도 있죠. 위 그림 중에 오른쪽 상황이 이를 설명하는 키(열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트기류가 처진 곳에 속한 지역은 평소보다 추워질 수밖에, 반대로 올라간 부분에 들어간 지역에선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짱짱하게 쌩쌩 불어야 할 제트기류가 힘을 잃은 것, 그것의 원인이 기후변화인 거고요.

그렇게 온탕과 냉탕으로 오가던 봄이 지나 여름이 찾아왔고,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역대급 장마가 찾아왔습니다. 장마 기록이 가장 먼저 깨진 곳은 제주입니다. 올해 6월 10일부터 7월 28일까지 장장 49일간 지속되면서 역대 가장 긴 장마가 됐죠.

통상 6~7월 사이 찾아오던 장마가 올해엔 8월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부지방의 경우 오늘(2020년 8월 10일)까진 역대 최장 장마 타이틀을 2013년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당시 6월 17일부터 8월 4일까지, 49일간 이어졌는데요, 오늘까지 중부지방의 장마는 48일을 기록중입니다. 이미 역대 2위인데다 이번주에도 비가 이어지는 만큼 이 기록은 조만간 깨질 걸로 보입니다.

2020년의 '이상(異常)'은 여름에서, 장마에서 끝날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이상(異常)' 해수온도 심상치 않습니다. (자료: 기상청)

이미 5호 태풍 장마가 우리나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태풍의 '고향'인 북태평양의 수온은 30℃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직 바닷물이 식을 때가 아닌 만큼, 올해도 가을 태풍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고작 2018년부터 2020년까지의 상황만 살펴봤을 뿐입니다. 지구는 이렇게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는데, 우리만 또 이를 알아차리지 못 하고 지나가진 않겠죠. 불확실성을 키우는 이런 이상 현상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우리에게 큰 피해를 안길 것입니다. 점차 '이상(異常)'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미래가 아닌, 그저 우려가 아닌, 현실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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