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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억압에도…5·18 참상 알린 푸른 눈의 목격자들 '월요모임'

입력 2020-05-17 21:03 수정 2020-05-17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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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한국 독재정권의 실상을 외국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당시 한국에 있던 외국인들인데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을 비밀리에 외부에 전한 것도 이들의 덕이 컸습니다. 한국 민주화를 위해 매주 월요일 밤마다 뭉쳤던 월요모임이 대표적입니다.

박현주 기자입니다.

[기자]

[매리언 김/월요모임 회원 : 제일 무섭고, 놀랍고, 슬프고, 화나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보통사람들이 데모만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그냥 잔인하게…]

1980년대 월요모임 회원으로 활동했던 매리언 김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회원마다 정보원이 한 명씩 따라붙을 정도로 철저한 감시와 억압에도, 실상을 알려야겠다는 의지는 더 강해졌습니다.

[매리언 김/월요모임 회원 : 주로 선교사 집에서 만났어요. 돌아가면서. 양심수 있으면 그 가족도 직접 도와주고, '팩트 시트'(사실 보고서) 만들어서 외국으로 보내고, 외국 기자한테도 연락해서 이런 일이 있다고 알리고…]

남편 김용복 박사는 월요모임에서 모은 정보가 일본과 미국 등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텄습니다.

[김용복/박사 (매리언 김의 남편) : 한국에서 온 모든 자료를 영문화하고 체계화하고, 자연스럽게 광주도 그런 형태로 진실이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만든 겁니다.]

매리언 김은 한국 인권 상황에 대한 비밀보고서를 작성해 미국으로 몰래 전달했습니다.

이 문서는 한국 인권 관련 미 의회 청문회의 공식 보고서에도 반영됐습니다.

월요모임이 미국과 일본으로 보냈던 1980년 5월 19일자 보고서에는 "시민들이 총으로 잔인하게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광주의 상황도 담겼습니다.

[최용주/5·18 진상조사위 조사과장  : 이런 문서들(월요모임의 사실보고서)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불온 문서잖아요. 외국으로 나가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선교사들이 몰래 이런 문서들을 김포공항 등에서, 외국으로 빼돌렸고.]

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월요모임 회원들은 한국의 실상을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김흥규/목원대학교 명예교수 : 의회에서 청문회가 많으니까 국회의원들을 접촉하고, 또 정부 관리들을 접촉해서, 한국 상황을 정확하게 알리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영상그래픽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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