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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지 못한 '부마항쟁'…계엄군의 집요한 '보도 지침'

입력 2019-10-02 21:25 수정 2019-10-02 22:26

24시간 실시간 통제…모호한 기준으로 보도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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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실시간 통제…모호한 기준으로 보도 막아


[앵커]

오늘(2일)도 부마민주항쟁 관련 보도를 이어가겠습니다. 사실 한국 현대사에서 부마항쟁은 민주화의 도화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죠. 왜 그런지 찾아봤더니 항쟁 당시부터 박정희 정권이 집요하게 실시했던 언론통제가 있었습니다. 관련 자료를 저희가 입수했습니다.

김태영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부마항쟁이 한창이던 1979년 10월 18일 작성된 육군의 상황일지입니다.

부산 지역에 계엄령이 떨어진 뒤 8시간 만에 언론통제도 단행됐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언론사 보도에 대한 검열은 시 공보실에서 계엄군의 보도검열단이 실시했습니다.

검열은 매체별로 맞춤형으로 이뤄졌습니다.

신문들은 인쇄기가 돌기 직전에, 방송은 속보를 내지 못하도록 수시로 검열을 한 것입니다.

종합해보면 하루 24시간 내내 부마항쟁의 진상이 알려지지 않도록 틀어막은 셈입니다.

보도지침의 기준도 모호하기 짝이 없습니다.

국민여론을 자극하면 안 된다거나, 국가 이익에 위반돼선 안 된다는 식으로 느슨한 기준을 정해놓고 이를 근거로 부마항쟁 보도 자체를 막은 것입니다.

[차성환/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외 상임위원 : 지침의 내용이 너무 광범위하고 추상적이고 막연합니다. 계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소한도의 제한을 가하는 게 아니고 거의 모든 보도를 검열하게 두는 효과를…]

이렇게 철저하게 보도 통제가 이뤄진 탓에 부마항쟁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비해서도 관련 자료가 극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자료 : 김병기 의원실)
(영상그래픽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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