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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기시 노부스케…'친서' 그리고 '훈장'

입력 2019-08-06 21:42 수정 2019-08-06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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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1961년 8월,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지 석 달이 지난 후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은 일본에 친서를 보냅니다.

"근계謹啓 (삼가 아룁니다) 귀하에게 사신을 드리게 된 기회를 갖게 되어 극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1961년 8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기시 노부스케 귀하'

그것은 한국의 최고 권력자가 일본의 막후 실력자에게 보낸 편지글의 시작이었습니다.

편지를 받은 사람은 기시 노부스케. 

기시 노부스케
- 전 만주국 산업부 차관
- 전 일본 상공부 대신
- 전 일본 총리

1930년대 만주국 산업차관을 지내면서 식민지 수탈을 주도했고 1940년대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는 상공부 대신을 역임한 A급 전범이자…

지금의 총리,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이며 아베에게는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기도 합니다.

과연 과거를 딛고 양국이 미래로 향해야 한다는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그는 2년 뒤인 1963년 8월에 두 번째 친서를 보냅니다.

"한·일 회담의 조기 타결을 위하여 배전의 협조 있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 1963년 8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기시 노부스케 귀하'

친서를 직접 전달한 인물은 화신백화점 사장을 지낸 박흥식.

"박흥식 씨 편으로 전해주신 귀하의 서한에 접하고…금번 다시 박흥식 씨가 귀국을 방문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 1963년 8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기시 노부스케 귀하'

영화의 실제 모델로도 잘 알려진 그는 해방 후 반민특위에 의해 첫 번째로 체포된 특급 친일파였습니다.

어제(5일)와 오늘 그리고 며칠동안 뉴스룸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 이후에 감춰진 이야기를 취재해서 전해드리고 있는 중입니다.

어제는 협정의 대가로 들어온 일본의 돈이 결과적으로는 다시 일본의 전범 기업으로 되돌아갔다는 내용을 보도해드렸고…

"돈을 빌려줄 때…일본 것을 쓰라고 딱 돼 있어요"
"일본과 겹치는 산업 육성 안 돼…"

오늘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를 앞세운 한·일 협력위원회의 면담문건을 입수해서 전해드렸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고 가자"

한국과 일본은 1965년의 그 협정 이후에 끈끈한 우애를 다졌다고 문건은 말하고 있는데…

그들이 다진 그 우애란, 한국과 일본의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가해국과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동시에 서로의 정치적 입지를 다진 계기로 이용되었던 것입니다.

그 밀약 아닌 밀약은 빌미가 되어서…

"한국은…믿을 수 없는 나라"

그의 외손자로 대표되는 일본의 극우는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 라면서 으름장을 놓고 있는 형국이지요.

오늘 보도해드린 내용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은 또 하나가 존재합니다.

1970년 한·일국교정상화 5년을 맞이한 한국의 대통령은 강제징용과 식민지 수탈에 앞장선 2차 대전의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에게 한국의 정부가 수여하는 1등급 훈장인 '수교훈장 광화대장'을 수여했습니다.

아마도 그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는 할아버지가 받은 그 훈장을 보면서…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되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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