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팩트체크] 노동과 근로…'근로'는 일제·군사시대 용어?

입력 2018-03-20 22:00 수정 2018-03-20 22:51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조국/청와대 민정수석 : 노동자의 기본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였습니다. (헌법에서)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수정하고…]

[앵커]

노동과 근로… 같은 듯 다른 두 단어가 오늘(20일) 화제가 됐습니다. 지금의 헌법은 '근로'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을 '노동'으로 바꾸자고 청와대가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시대에 사용자 관점에서 만들어진" 용어라는 이유를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사실인지 그리고 어떤 역사적인 맥락이 있는 것인지 팩트체크에서 확인해보겠습니다.

오대영 기자, 단순한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이죠?

[기자]

그렇습니다. 헌법에는 '근로'라는 단어가 10번 넘게 나옵니다.

예를 들면 이것입니다.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 의무를 가진다"는 32조가 대표적입니다.

1948년 제헌 헌법 때부터 '근로'라고 표현을 해 왔는데, 이번에는 '노동'으로 바꾸자고 제안을 한 셈입니다.

[앵커]

구체적으로 두 단어의 뜻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요?

[기자]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근로'는 "부지런히 일함"이라고 뜻합니다.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를 말합니다.

'근로'는 부지런한 것, 그리고 '노동'은 일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근로의 의미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지거나 바뀐 것입니까?

[기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근로는 삼국사기에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현대적 개념이 언제 생겼냐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1890년대에 자리 잡았습니다.

1895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 교과서로 불리는 '국민소학독본'이 있습니다. 이게 만들어졌습니다.

이 책에서 노동은 말 그대로 '육체적 생산 활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반면에 근로는 '나라의 부강'과 '부지런함'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앵커]

1895년이면 일제강점기 이전이고 그때 이미 '나라를 위한다'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군요.

[기자]

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 새로 만들어졌거나 뜻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물론 1930~4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제가 '근로'를 '식민지배 논리'로 악용한 측면이 있습니다.

'근로정신대'나 '근로보국대' 같은 명칭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독립운동 진영에서도 '근로정신'을 강조했습니다.

또 해방 직후에는 중간파에서는 '근로인민당'도 만들었고,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근로자'라는 기관지를 발행했습니다.

결국 이념의 구분 없이 근로라는 말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948년 제헌 헌법에도 '근로'의 개념이 들어갔습니다.

[앵커]

그러면 군사 독재시대 때는 '근로'의 개념이 어땠습니까?

[기자]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좌우 이념'의 개념이 더해지게 됩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발의된 이 법안이 잘 말해주는데요.

1963년, '근로자의 날 제정법안'입니다.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공산진영에서 이날을 정치적으로 역이용 함"

이 법안이 통과가 되면서 기존의 '노동절'은 '근로자의 날'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앵커]

지금도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르는데, 다 역사적인 맥락이 있는 것이군요.

[기자]

실제로 이후에 '노동'이라는 표현의 이용이 크게 줄었습니다.

이것은 고려대학교 연구진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인데요.

1945년부터 2012년까지 언론의 용어 선택을 연구한 결과, 1946에서 1967년 사이에는 '노동'을 많이 썼습니다.

그러다 1968년 역전이 됐고, 1970대 그리고 80년대에는 '근로'를 압도적으로 많이 썼습니다.

이 격차가 다시 좁혀진 것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였습니다.

[앵커]

정부가 '근로'를 강조한 것이 언어를 쓰는 데에도 영향을 줬다라는 얘기인 것이죠.

[기자]

그렇습니다. 그동안에는 "근로에 담긴 애국주의가 지나치게 강조된 면이 있다. 반면에 자기 주도적인 노동의 의미가 가려져왔다"라는 지적이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개헌안 논의 과정에서 짚어봐야 할 부분입니다.

[앵커]

네. 팩트체크 오대영 기자였습니다.

관련기사

정의 "청와대 개헌안 환영…국회 협상도 적극 나설 것" 바른미래, 청와대 개헌안에 "개헌쇼…일절 평가하지 않겠다" 정부개헌안 '근로조건 향상→권익보호' 단체행동권 범위 확대 홍준표 "대통령 개헌안 표결 보이콧…본회의 입장 시 제명" 대통령개헌안, 직접민주주의 강화…국민발안·국민소환제 신설
광고

관련이슈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