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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입력 2018-02-19 21:16 수정 2018-02-20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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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2월.

경북 영양군에 살던 한 주부는 한밤중 귀갓길에 두 명의 치한을 만났습니다.

그는 성추행범의 혀를 깨물어 더 큰 봉변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해자인 남성의 혀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됐습니다.

가해자 측 변호사는 피해자인 주부가 사건 당일 마신 술의 양과 시댁식구와의 불화 등을 거론하면서 그를 부도덕한 여성으로 몰아세웠고 검사는 폭행당시 정황을 묘사하는 진술이 계속 바뀐다면서 법정에서 호통을 쳐댔습니다.

"정당방위로서 인정될 수 없는 지나친 행위"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

성폭력 피해자인 그 주부에게 내려진 1심 판결은 그러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졸지에 폭행 가해자가 돼서 징역형을 받은 웃지 못 할 반전…

그러나 세상은 오래된 관습에 젖어있었던 법원의 낡은 판결을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성폭력을 당한 여성이 취할 수 있는 정당한 자기방어라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쟁을 일으켜서 여성단체는 변호인단을 구성했고, 항소심 법원 앞에서는 여성 100여명이 피해자의 무죄를 외쳤습니다.

사법부는 결국 2심에서 그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영화의 제목을 기억하시는 분도 있으시겠지요.

그 사건은 그렇게 연극으로도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

재판장님, 만일 또다시 이런 사건이 제게 닥친다면 순순히 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여자들에게 말하겠습니다.
반항하는 것은 안된다고, 얘기하는 것도 안된다고,
재판을 받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입니다.

+++

실화라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암울했던 과거.

그러나 과거의 일이라 말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한 현재.

그 비뚤어진 세상의 관습을 고발했던 그 영화의 원작과 각본을 쓴 인물은 바로…이윤택.

"극단 내에서 18년 가까이 진행된, 관습적으로 일어난 아주 나쁜 행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성폭력을 오랜 기간 지속해왔던 그는 추행을 일컬어 '관습'이라 말했습니다.

이제는 기억마저 희미해진 그 영화의 제목처럼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추한 관습을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라면 힘을 가진 자가 말하는 관습이란 얼마나 무지막지한 것인가…

그리고 그가 원작과 각본에 참여했다는 그 영화.

<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 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피해자로 고통받고 있는 이 땅의 여성들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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