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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함박눈 바다 한가운데 테왁 하나 떠 있으니'

입력 2017-08-10 21:37 수정 2017-08-11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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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함박눈 바다 한가운데 태왁 하나 떠 있었네"

강문신 시인의 '함박눈 태왁' 중 한 구절입니다.

테왁은 물에 뜨는 바가지라는 의미의 제주 말입니다. 해녀들은 이 테왁을 바다 한가운데 띄워놓고 물 속 깊이 스며들죠.

깊은 숨을 끝까지 참다가. 떠올라야 할 때가 되면 해녀들은 테왁에 몸을 의지한 채로 '호오이~' 참아왔던 긴 숨, 숨비소리를 물 밖으로 내놓습니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나이 든 해녀의 말처럼. 욕심내지 않고 자신의 숨만큼만 갖고자 애쓰는 사람들.

각자의 일터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 역시 아마 같은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을까.

"저는 오늘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합니다. 통장에 남은 320만원은 아내와 여동생에게 전해주시길"

네팔에서 한국에 온 젊은 이주노동자는 이렇게 유서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됐습니다"

남겨진 그의 말은 의지할 곳 하나 없었을 고단한 처지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숨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차지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반대로 몸을 지탱할 그 작은 테왁조차 빼앗긴 채 홀로 버텨야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네팔에서 온 젊은 노동자는 바로 그런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컵라면을 남겨 놓고 떠난 구의역의 청년이 있었습니다.

또한 지금도…이 여름. 홀로 고해와 같은 세상을 테왁도 없이 버티는 또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많지요.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그리고 물 위로 올라 토해내는 숨비소리는 네팔의 청년도 지하철 구의역의 청년도 함께 낼 수 있는 소리였지만 그들에겐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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