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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노란리본→포스트잇…공감의 추모 도구 변천사

입력 2016-06-02 11:50 수정 2016-06-07 16:05

강남역에 쪽지 1만여장 붙은 데 이어 구의역에도 포스트잇 물결
전통적 촛불집회, 세월호 노란리본 이어 이젠 '쪽지'로 시민들 의사 표시
특정 도구를 매개로 한 '추모의 연대'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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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에 쪽지 1만여장 붙은 데 이어 구의역에도 포스트잇 물결
전통적 촛불집회, 세월호 노란리본 이어 이젠 '쪽지'로 시민들 의사 표시
특정 도구를 매개로 한 '추모의 연대'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촛불→노란리본→포스트잇…공감의 추모 도구 변천사


촛불→노란리본→포스트잇…공감의 추모 도구 변천사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았을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부디 평온히 잠드시길…."

벽에 쪽지가 붙기 시작했다. 누가 특별히 주도한 것도 아니다. 안타까운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한 고인을 애도하며 사고 현장을 오가는 시민들은 직접 펜을 꺼내 짧은 방명록을 남겼다.

희생자를 애도하는 추모 방식이 '포스트잇(접착식 메모지) 방명록' 문화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홀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김모(19)씨가 작업 중 열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어 늘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다녔다는 청년이다.

사고 소식이 전해진 후 시민들은 김씨가 변을 당한 구의역 내선방향 9-4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고인을 애도하며 같은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는 글이 적혔다. 이후 서울메트로 측이 역사 내에 마련한 추모공간에 2일까지 수백명의 시민들이 쪽지에 방명록을 남겼다.

출근길에 추모 현장을 들렀다는 오모(43)씨는 "비록 작은 행위이지만 포스트잇에 글을 남기면 고인을 추모하는 동시에 사회적 메시지도 전달할 수 있다"며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사회에서 추모가 일상이 된 것 같은데 아직도 고쳐지지 않아 답답하다. 이번 사건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포스트잇 등 쪽지를 통한 추모는 지난 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시작됐다.

서울 서초구의 한 노래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김모(34)씨가 휘두른 칼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한 네티즌은 트위터에 "국화꽃 한 송이와 쪽지 한 장으로 희생자를 추모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사고지점 인근인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출구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애도의 글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약 일주일간 추모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여성이나 어린이, 약자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못해서 미안합니다' 등의 글을 남겼다.

서초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3일 철거되기 전까지 강남역 10번출구에 붙은 쪽지는 무려 1만여장이었다.

◇촛불에서 포스트잇까지…변화하는 추모 문화

전통적인 촛불집회는 80년대에도 있었지만 시민들의 '집단적' 추모 문화는 2000년대 초반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한일월드컵으로 뜨거웠던 2002년 6월 경기 의정부시에서 당시 14살이던 신효순·심미선양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건'이 발생했다.

미군의 무죄 평결에 분노한 시민들은 고(故) 효순·미선양의 49재에 맞춰 추모제를 가졌다. 추모집회가 열린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는 시민 3000여명이 모였다. 추모객 손에는 저마다 촛불이 들려 있었다. 이후 미국 뉴욕 등에서도 무죄 평결에 항의하는 촛불시위가 열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여론으로 들끓은 2008년에는 촛불집회가 100일 이상 이어졌다. 이른바 '광우병 사태' 때 서울시청과 광화문 일대를 밝힌 무수한 촛불은 외신에 토픽사진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촛불의 절정기'였던 셈이다.

2009년 5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에는 노란 물결이 가득 했다. 추모객들은 노란 수건, 노란 풍선, 노란 만장 등을 들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노 전 대통령 영혼이 하늘로 자유로이 날아오르길 기원하며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이들도 있었다. 노란색은 노 전 대통령이 대선 때 상징으로 사용했던 색이다.

당시 노제에 참석했다는 최모(32·여)씨는 "노란 수건을 가방에 메고 서울광장에 나갔다. 당시 너도나도 노란색 물건을 들고나왔기 때문에 추모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나도 리본을 달았다"고 회상했다.

2014년 세월호 사건 때 등장한 노란리본은 새로운 범국민적 추모 도구였다.

노란리본은 미국 등에서 전쟁에 나간 사람이 무사히 귀환하길 바라며 노란 리본을 나무에 매단 것에서 유래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들은 실종자들이 하루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노란리본을 옷이며 가방 등에 달았다. 노란리본 사진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을 꾸민 이들도 많았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노란 리본 모양의 배지를 단다는 이모(25)씨는 "세월호 사건을 나나 내 가족이 당했다면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억울할 것 같아 지금도 노란리본을 달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사건 때마다 특정 추모 상징 등장…SNS로 급속 확산

특정 도구를 매개로 한 추모 문화는 사회를 바꾸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파생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2일 강남역 10번출구를 찾아 쪽지를 남겼다는 직장인 김모(26·여)씨는 "이전에도 비슷한 사건사고가 일어났지만 이번엔 여권(女權)의 관점에서 새로운 문제를 지적하는 흐름이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동참하는 일환으로 내 생각을 글로 적어 보관하고 싶었다"고 했다.

2014년 노란리본을 달았다는 김씨는 "세월호 때는 그런 참사 자체가 드문 일이기도 하고 슬픈 감정이 너무 커서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기보다 리본이라는 수단을 통해 마음을 표시하고 싶었다"면서 "강남역 사건은 희생자가 한 명뿐이더라도 파급력이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번에는 쪽지를 수단으로 흔적을 남겨 약자가 희생당하는 사회를 바꿔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왜 대형 사건사고 때마다 특정한 상징물이 추모 도구로 등장해 급속도로 확산되는 현상이 되풀이 될까. SNS의 신속하고 광범위한 전파력이 1차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2002년 촛불집회 때는 오프라인을 통해서만 사람들이 추모에 참여했지만, 2010년대 이후 SNS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더 쉽고 간편하게 동참하고 연대할 수 있는 방식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2011년 노르웨이 오슬로 테러사건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사고 현장에 꽃을 헌화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추모했다. 그러나 지난해 발생한 두 차례 파리 테러의 경우 분노한 시민들이 각자 SNS 프로필 사진에 프랑스 국기를 물들이거나 '나는 샤를리다'라는 문구를 올리는 등 새로운 추모 문화가 만들어졌다"며 "한국에서도 노란리본이나 포스트잇 등이 SNS로 빠르게 확산되는 추모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문가들은 '추모의 연대' '추모의 공감대'를 상징하는 효과적인 도구들이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감의 도구는 '표지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민들로 하여금 사건을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노란리본을 보면 세월호가 연상되듯, 포스트잇도 강남역이나 구의역 사건에 집중하게 하는 상징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촛불집회는 사회적 비극을 시민의 힘으로 밝게 비춘다는 일반적인 의미가 있어 예나 지금이나 추모 문화로 자리잡은 반면, 역사적 특수성을 띈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고정된 상징물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앞으로도 유사 사건이 발생하면 누군가의 제안으로 시작된 추모의 도구가 상징처럼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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