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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천만' 서명운동, 효력있나? 확인해보니…

입력 2016-01-28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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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고 있는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 서명운동', 대통령과 일부 국회의원들도 참여하면서 서명자가 30만 명을 넘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데요. 그러면서 "중복서명이 가능하더라" "서명에 동원이 됐다"는 논란도 계속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서명운동의 신뢰성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인지, 또 효력은 있는 것인지 오늘(28일) 팩트체크에서 짚어보겠습니다.

김필규 기자, 저희도 관련 내용에 대해 보도해드린 바 있는데 주로 제기되는 건, 온라인으로 서명을 받다 보니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 중복 서명이 된다, 이런 얘기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간단히 보여드릴 텐데요.

이번 민생구하기 서명의 경우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 이름 란에 '홍길동'이라고 적고 소속기관, 그리고 주소 넣으면 서명이 완료됩니다. 같은 이름에 다른 직장이나 주소를 넣어도 계속 서명등록이 되는데요.

이뿐 아니라 아무 기호나 이모티콘을 넣어도 서명이 되더라, 심지어 아이언맨이나 역사 속 인물을 넣어도 서명 등록이 되더라 하는 보도도 잇따라 나왔는데요.

대한상의 측에선 이런 중복, 허위 서명을 실시간으로 걸러내겠다고는 했지만, 어떤 식으로, 얼마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앵커]

기입하는 내용이 너무 단순하다 보니 이렇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자]

실제 이번 서명운동의 경우 이름과 직장, 주소, 이 세 가지만 넣으면 됩니다. 그러니 앉은 자리에서 조금만 바꿔서 여러 번 참여할 수도 있는 건데요.

주민소환, 그러니까 주민들이 지방자치단체장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 투표를 할 때는, 주민 10%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적은 뒤 서명을 하거나 도장까지 찍어야 합니다.

사실 다른 서명운동에서도 이 정도는 해야 중복, 허위 서명을 막을 수 있을 건데,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이 많고 실제 그런 사고도 있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이건 국회에 입법청원할 때 쓰는 서명 양식인데 이름, 주소 정도만 받고,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서명운동에선 이메일 주소까지만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는 상태입니다.

[앵커]

그러면 규정도 마련하고, 또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장치도 마련하고. 그렇게 하면 훨씬 더 신뢰도도 높아질 텐데, 그건 왜 안 됩니까?

[기자]

사실 주민소환을 위한 경우 외에는 나머지 서명운동이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입법청원을 하기 위해서나 재판을 위한 탄원용 서명운동도 마찬가지인데 전문가 이야기로 들어보시죠.

[오영중/변호사 : (서명은) 입법 참고자료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법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재판에서도 저희도 가끔 하는데 탄원서에, 이런 정도로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석방을 원하므로 참작해서 석방한다, 이런 경우도 있는데 법의 구속력은 없습니다. 입법부에서는 입법 참고자료, 사법부에서는 재판 참고자료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법을 만들어 달라" 청원할 때도 정해진 양식만 잘 갖춰 제출하면 되지, 한 명이 하든 10만 명이 공동으로 하든 접수 여부에는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국회사무처)

이렇게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일반적인 서명운동에서 중복 서명을 하거나 허위가 있어도 가려내기가 힘들고,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측에서도 허위를 막게 할 의무나 어떤 징계 규정도 없습니다.

[앵커]

예전에 김연아 선수가 소치 올림픽에서 은메달 땄을 때도 국제적으로 청원 서명이 있었잖아요? 그런 것도 별로 효력이 없는 건가요?

[기자]

당시 "국제적인 청원 서명운동 사이트에다 100만인 서명을 하면 국제빙상연맹(ISU)이 재심사를 해준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상당수가 서명에 참여했는데, 이 역시 아무 근거가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외국의 경우 국가기관 차원에서 서명운동의 효력을 인정한 곳이 있긴 한데, 백악관의 '위 더 피플'이라는 청원사이트는 10만 명 이상이 서명할 경우 그 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혀주고 있고요.

영국 의회에서도 서명이 10만 건을 넘으면 의회에서 청원 내용을 토론할 수 있다고 정해놨습니다.

얼마 전 인종차별로 유명한 미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입국을 막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50만 명 이상이 서명에 참여했는데, 영국 의회에서 실제 이를 두고 토론이 열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앵커]

결론은 뭐였습니까?

[기자]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까지 토론에 참여해 진지하게 진행됐는데, "위험한 바보이긴 하지만 의회 차원에서 입국까지 금지할 순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앵커]

재밌네요. 아무튼 그러면 백악관이나 영국 의회처럼 규정을 만들어 놓은 곳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서명운동은 구속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는 건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오늘 그렇게 결론 내릴 수 있는데요.

역사적으로 보면 서명운동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게 1830년대, 영국 노동자들이 선거권을 얻기 위해 벌인 차티스트운동이었습니다. 무려 57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하면서 의회를 압박했던 건데요.

그동안 어찌 보면 서명운동은 약자들이 작은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사용했던 수단이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에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까지 폭넓게 참여하는 좀 다른 의미로 진행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팩트체크 김필규 기자였습니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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