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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취했으니 봐주자"…음주범죄 감경, 왜?

입력 2015-12-1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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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팩트체크를 시작하겠습니다. 연말에 술자리가 많아져서 그런지 최근에 음주와 관련된 시청자 질문이 팩트체크에 많이 접수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10일) 팩트체크는 이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들어온 궁금증 가운데 하나를 좀 풀어드린다고 합니다.

김필규 기자, 어떤 내용인지요?

[기자]

예, 이메일로 들어온 내용 직접 읽어드리면, '김필규 기자님, 우리나라가 유독 술 먹고 난 뒤 범죄행위에 대해 관대한 처벌을 받는 것 같습니다. 외국에선 더 강경하다고 하는데 진짜인지 궁금합니다.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는 것 같은데 기운 내시고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내용이고요.

또 SNS를 통해서 '얼마 전 술자리에서 성희롱에 해당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기분 나빴지만 주위에서 술 취해서 그런 거니 용서해주란 분위기였다. 우리나라가 특히 술에 관대한 것 같은데 외국도 그런지 궁금하다'는 이모 씨 질문도 있었습니다.

[앵커]

꾸준히 문제로 지적된 이슈인데, 실제 그런 면이 있습니까?

[기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법적 근거는 이렇습니다.

형법 10조 2항인데, '심신장애'로 변별 능력이 없는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형을 줄여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만취 상태 역시 자기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종의 심신장애 상태로 간주해 감형을 해준다는 거죠.

물론 취했다고 무조건 다 봐주는 게 아니라 3항에 단서를 달아놔서 일을 저지르겠단 생각으로 일부러 술 마신 경우는 제외한다고 돼 있습니다 .

[앵커]

하지만 일부러 마셨는지 어땠는지, 의식을 잃을 정도로 마셨는지 어땠는지, 그건 각자 주량에 따라 본인만 알지 다른 사람이 알기 힘든 것 아닙니까? 그래서 혹시 악용될 가능성이 있지 않으냐 하는 얘기도 나오죠?

[기자]

맞습니다. 그래서 그간 대부분 흉악범들이 경찰에 잡힌 후에 "술에 취해 경황이 없었다. 술이 원수다"(김수철), "술에 취해 아무 기억이 안 난다"(김길태) 이렇게 술 핑계를 대는 경우가 많았던 겁니다.

2009년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 강간상해 및 치상죄의 경우 '음주를 하지 않았을 때' 평균 형량이 31개월, '만취했을 경우' 26개월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법원에서도 술 마시고 저지른 범죄에 대해 정상참작을 좀 해준 경향이 있었던 거죠.

[앵커]

그런데 저건 2009년 한 해 동안의 자료잖아요. 그로부터 한 6년 정도가 흘렀는데 그사이에 사회적 인식도 많이 바뀌고 그래서 실제로 바뀐 건 없습니까?

[기자]

형사사건을 많이 맡았던 변호사 여러 명에게 물어봤는데요. 바뀐 부분 있었습니다. 직접 한번 들어보시죠.

[김경진/변호사 : 최근 4~5년 사이에 음주했다는 이유로 형을 감형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고요. 음주 도중에 범행했다고 해서 형을 깎아주던 과거의 관행에 대해서 사회적 비난이 크게 대두가 되니까, 법원에서 그 부분에 대해서 반성적 고려를 통해서 더 이상 음주 감형을 안 해주는, 이런 문화가 정착됐습니다.]

반성적 고려가 있었다 하는데, 어떤 내용이냐. 2008년 초등학생을 납치,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이 특히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됐는데요. 처음 무기징역이 구형됐지만 알코올 중독자에 만취 상태였던 점을 감안, 12년형으로 확정이 됐죠.

여론이 들끓자 양형위원회는 2012년 만취상태 범죄에 대한 감경 기준을 강화했고, 국회도 2013년 성폭력 특례법을 개정해, 음주로 심신장애 상태였다고 해도 성폭력범죄를 저질렀다면 감경해줄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앵커]

그런데 그게 다 지켜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간혹가다 보면 '술에 취해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다' 이렇게 정상참작하는 그런 판결이 나온 적이 있지 않나요?

[기자]

그렇습니다. 간혹 있었고요. 또 나올 때마다 논란이 됐는데, 양형기준이 어떤 강제성이 있는 게 아니라 결국은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서 판결이 내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직 국민 법감정과 판결 사이에 시차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그래도 "예전에 비해 만취 상태를 감경 사유로 보지 않는 분위기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오히려 판결문에 '만취상태였다는 피고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명시하는 경우도 많다"는 게 변호사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앵커]

외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이른바 주취 감형 이걸 인정하는 다른 나라들도 있습니까?

[기자]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데 일본이 우리와 비슷하게 만취자를 심신상실, 심신미약자로 봐서 형을 줄여주는 경우가 있고, 영국은 분위기가 달라서 만취 범죄에 대해 오히려 가중처벌을 받은 판례가 많다고 합니다.

미국 역시 상당히 엄격한 모습인데 전문가 이야기로 들어봤습니다.

[김익태/미국 변호사 : 미국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어떤 범죄에서든지 본인의 자의적인 음주는 감형 사유가 안 되는 거예요. 원칙적으로는 감형 사유가 안 된다는 거예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음주는 디펜스가 안 된다, 음주가 방어논리가 안 되는 거예요.]

자의적 음주, 스스로 술을 마셔서 취했으니까 이것을 감형요소로 볼 수 없다는 건데, 음주를 감형요소로 주장할 수 있는 몇몇 주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거의 뇌에 이상이 있을 정도의 알코올 중독자라든지 정신이상자 수준의 진단을 받았을 때만 가능해서요. 실질적으로 입증은 힘들다고 합니다.

[앵커]

엄밀하게 보면 각 나라의 술에 대한 인식, 문화 이런 것들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봐야 될 것 같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런데 앞서도 봤듯이 지금 그 문화나 인식이 국내에서 많이 바뀌고 있고 판결에도 반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연말 술자리 가지시는 분들, '좀 취해도 봐주겠지' 하는 생각 마시고요.

앞서 제보해 주신 시청자 이모 씨도 '술 취해서 그런 거니까 용서해 주자'고 말했던 그분들께 이제 더 이상 그런 분위기 아니라고 확실히 말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팩트체크 김필규 기자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는 것 같은데 기운도 내시고 피곤하지 말기를 바라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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