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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국정원의 판사 신원검증…'공포의 전짓불'

입력 2015-05-27 21:37 수정 2015-05-2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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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2부의 문을 열었습니다.

'공포의 전짓불'

오늘(27일) 앵커브리핑이 고른 말입니다.

작가 이청준의 단편 <소문의 벽>에 등장하는 박준이라는 인물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공포스러운 일을 겪습니다.

"백지 창문이 덜컹 열리면서 눈부신 손전등 불빛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어요. 전짓불의 강한 불빛 때문에 그 뒤에 선 사람이 어느 편인지는 죽어도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편이냐. 누구편이냐. 사정없이 추궁을 하고 들지 않겠습니까."

적과 아군. 우리 편과 반동분자가 엇갈리던 시절이었지요. 자칫 잘못 대답했다간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었을 겁니다.

요행히 살아남았던 작품 속 인물은 전짓불에 대한 공포. 즉 자신의 양심을 남에게 고백할 수 없는 이른바 '진술공포증'을 갖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1972년.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에 발표된 오래된 소설 속 이야기였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국정원이 경력판사에 지원한 변호사들을 사전에 접촉해서 물어봤다는 질문입니다.

'국정원장은 국가보안을 위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심 및 신뢰성을 조사하기 위해 신원조사를 한다'

그래서 법령에 따라 국정원이 이른바 '법관면접'을 봤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부가 제대로 어찌해보지도 못하고 수백 명의 아이들을 물속으로 보낸 참사를 놓고 바로 그 정부가 국가관을 시험하는 데 이용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힌 일이기도 하지요.

일부의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이념논쟁으로 몰고 갔다는 비판이 아직도 유효한데 정부가 이것을 이른바 국가관 검증에 쓰고 있다면 그 일부의 사람들은 어찌 보면 성공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 주제가 세월호는 아니니까요.

질문을 받은 이들의 머릿속에선 어떤 생각이 오갔을까요? 전짓불 뒤에 숨은 이들이 원하는 이른바 '정답'이 있을 터인데 법과 양심에 맞춰 판결을 내려야 할 '판사' 직에 지원한 이들은 과연 자신의 '양심'에 맞춘 답변을 내놓았을 것인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헌법 제103조에 명시되어 있는 조항을 읽어드렸습니다.

그러나 법의 뒤편. 법관의 양심 뒤에는 국정원이 가늠하는 '충성심'과 '양심'에 맞춘 신원검증이 자행되고 있었고, 전짓불 뒤에 누군가 숨어 질문을 던지는 무시무시한 일이 지금 시대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었던 겁니다.

끝으로 앞서 인용한 작가 이청준의 <소문의 벽> 중 또 다른 구절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 양심이라는 것이 나의 의지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이 지켜질 수 없게 되고 있다는 것뿐이다. 전짓불이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편이 되어 있곤 하는 것이다"

진정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오늘 앵커브리핑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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