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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글러브' 모델 서길원 "미국서 야구 도전"

입력 2014-12-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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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글러브' 모델 서길원 "미국서 야구 도전"학교 친구들과 함께 한 서길원.


서길원(19)은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충주성심학교 야구선수였다. 이들의 이야기는 2011년 영화 '글러브'로 제작됐다. 당시 영화가 히트하자 이들 중 야구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가장 뛰어났던 서길원과 양인하(19)는 한 방송에 출연해 수화(手話)로 자신들의 소망을 이렇게 밝혔다.

"장애를 딛고 반드시 프로야구 선수가 돼 장애인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의 꿈이 이뤄져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편견도 완화되면 좋겠다"

양인하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지난해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가 주최한 트라이아웃(Try out)에 도전했다. 그는 '체력검사-캐치볼-배팅-수비' 순으로 진행된 1차 테스트에 합격했다. 하지만 다음날 진행된 연습경기에서 5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배트 가운데에 잘 맞은 공이 몇 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야수 정면으로 날아가는 등 운도 따르지 않았다. 결국 양인하는 '불합격' 통보로 받고 눈물을 쏟았다.

[인터뷰] 영화 '글러브' 모델 서길원 "미국서 야구 도전"


박정석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장은 기자와 인터뷰에서 "(양)인하는 코치가 지시하면 꾀부리지 않고 항상 성실히 훈련에 임하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인 지도만 받으면 분명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며 "그런 인하에게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무척 아쉽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또 "이럴 줄 알았으면 (서)길원이도 함께 트라이아웃에 도전해 보는 건데 아쉽다"고 말했다. 충주성심학교는 열악한 재정과 한정된 인력 때문에 두 선수를 동시에 트라이아웃에 참가시키는 건 무리라고 봤다. 한 선수에게 인력과 경비를 집중해 합격자를 배출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되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바뀔 것이고 제2, 제3의 양인하를 배출하는 게 좀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트라이아웃에서 고배를 마신 양인하는 차선책으로 대학에 진학해 야구를 계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설령 운이 좋아 대학에 진학해도 매달 수십 만 원에 달하는 야구부 회비와 방학 때마다 국내 또는 해외로 떠나는 전지훈련비 수백 만 원을 선수가 직접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인하는 올 초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한 산업체 시설에 취업해 어려운 집안의 생계를 돕고 있다. 실질적인 가장인 셈이다.

[인터뷰] 영화 '글러브' 모델 서길원 "미국서 야구 도전"학교 수업 시간에 수화로 한국에 대해 발표하는 서길원.


반면 국내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서길원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올 초 미국유학 길에 올랐다. 어려운 그의 가정형편상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전 충주성심학교 장명희 콘솔시아 수녀는 물론 워싱턴 DC의 한인회와 원주 카리타스재단 등에서 십시일반으로 경비를 마련해 줬다. 서길원의 소식을 접한 메이저리그 시애틀의 한국인 유망주 최지만(23)도 힘을 보탰다. 그는 "후배 서길원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게 됐다"며 "나 역시 아직 빅리그에 데뷔하지 못해 사정이 넉넉하진 않지만 서길원이 자신의 꿈을 좇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선뜻 사비를 털어 야구용품을 후원했다. 최지만은 또 "내가 빅리그에 데뷔하면 서길원을 시애틀 구장에 초대해 꿈을 잃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주위의 도움으로 미국에 도착한 서길원은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청각장애인 야구팀이 있는 갤러뎃 대학에서 영어 수화 과정을 밟고 있다. 이 과정을 수료하고 학부에 진학하면 야구팀에 들어갈 수 있다. 이 대학에는 청각장애인 출신으로 과거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커티스 프라이드(46) 감독이 야구팀을 지휘하고 있어 장차 서길원에게 적잖은 도움이 될 전망이다.

다음은 미국 생활 1년째에 접어든 서길원과의 이메일 인터뷰 내용이다.


[인터뷰] 영화 '글러브' 모델 서길원 "미국서 야구 도전"


- 오랜만이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잘 지내고 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아무것도 몰라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영어 수화도 배우고 미국 문화도 익히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매일 도서관에서 숙제와 문장 익히기 그리고 ACT(미국대학입학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시험에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도 많지만 좋은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 미국생활 1년째이다. 가장 힘든 점을 꼽는다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벌써 1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미국생활에서 힘든 것이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얄미운 영어 단어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그리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영어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쉬운 문장인데도 영어 단어를 몰라 문장 만들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그리고 낯선 이국 땅에 혼자 있다 보니 정신적으로 힘든 면도 많다. 또한 한국에 있을 때는 좋아하는 야구를 매일 했는데 지금은 갤러뎃 대학의 학부학생이 아니어서 학교 야구팀에서 야구를 할 수 없는 게 가장 힘들다."


[인터뷰] 영화 '글러브' 모델 서길원 "미국서 야구 도전"학교 친구와 함께 갤러뎃 대학 행사에 참가한 서길원


- 반대로 미국생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타향에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지만 나에게 기회를 준 분들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지금의 고난을 통해 내가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힘들지만 그래도 내 꿈을 향해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현실이 가장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내 꿈을 향해 전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


- 최지만 선수 또한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 올 초에도 글러브와 모자 등 야구용품을 보내줬는데 최근에도 최지만 선수가 직접 사인배트를 보내줘서 너무 고마웠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을 통해 연락한다"


- 영어 수화 연수과정 중이다. 학부는 언제쯤 입학하게 되나.

"ACT를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 갤러뎃 대학에 정식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다. 지난 11월에 ACT를 처음 봤는데 아쉽게 떨어졌다. 한국에서 수능시험을 치를 때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는데 ACT를 볼 때는 정말 긴장을 많이 했다. 내년 1월에 있는 ACT를 위해 현재 열심히 공부 중이다."


- 야구연습도 계속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 3월부터 9월까지는 주말마다 한국인들로 구성된 야구동호회에서 함께 운동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즌이 끝나 야구연습을 많이 못하고 있다. 정말이지 야구가 너무 하고 싶고 그라운드가 그립지만 지금은 ACT에 합격하기 위해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시간을 야구에 할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영화 '글러브' 모델 서길원 "미국서 야구 도전"서길원 선수의 생애 첫 홈런볼


- 야구선수로서 본인의 장단점을 꼽는다면.

"다른 선수들하고 비교할 때 체격이 작은 것이 단점이다. 하지만 지난 여름에 생애 첫 홈런을 쳤다. 하하. 장점으로는 필드에서 힘들어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다는 것과 리더십이 좋다는 것이다. 충주성심학교 시절에도 힘든 훈련을 하면서도 항상 즐겁게 팀 분위기를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분위기 메이커라는 별명도 있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 충주성심학교 출신 최초의 프로야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은 아직 유효한가.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ACT에 합격해 학부학생이 되는 것이 먼저이다. 그래야 학교 야구팀에 들어가 운동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차 야구를 좋아하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전문적인 훈련도 시키고 일반인들과 함께 어울려 운동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고 싶다. 어려운 과정이겠지만 청각장애인들에게 힘이 되고 그들을 돕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겠다."


[인터뷰] 영화 '글러브' 모델 서길원 "미국서 야구 도전"


- '프로야구선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본인이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보완해야 할 점이 아주 많다. 남보다 야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크고 강하지만 현재는 연습도 부족하고 그래서 야구기술도 점점 더 떨어지는 것 같고 체력도 부족한 것 같다."


- 끝으로 본인처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장애인이기 때문에 무조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본인들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전했으면 좋겠다. 두려움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면 모두 다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상희 메이저리그 인터뷰 전문기자·베이스볼긱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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