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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생존률 10% 미만…프로축구 K리그의 마지막 드래프트

입력 2014-12-1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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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생존률 10% 미만…프로축구 K리그의 마지막 드래프트


지난 9일 프로축구 K리그 신인 드래프트 취재를 위해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테이블, 어수선하고 경직된 분위기. 이제 막 '프로'에 첫 발을 내딛는 축구선수들을 축하해야 할 자리가 분명한데, 축하라는 단어가 생경했습니다. 긴장한 선수들을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고, 우선지명을 받은 선수들만 유니폼 차림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시작된 1라운드 지명.

"패스합니다"
"OO도 패스하겠습니다"

선수 이름이 불리기까진 꽤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1라운드 1번 지명권을 가진 성남부터 '패스'를 외쳤고, 12번인 광주FC 차례가 되서야 첫 선수의 이름이 불렸습니다.

아주대 졸업반인 미드필더 허재녕선수. K리그 1라운드 첫 지명선수라면 화제가 돼야 하는데, '패스'의 홍수 속에서 허재녕은 묻혀버렸습니다. 결국 허재녕은 K리그 클래식의 유일한 1순위 지명 선수가 됐습니다.

드래프트는 6라운드까지 간 끝에 총 21명이 호명됐고, 26명이 연봉 2000만원의 번외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나마 번외까지 내려가 선수들을 지명한 구단들은 대부분 재정이 어려운 시도민 구단들이었습니다. 우선지명을 통해 선수들을 확보해놓은 대기업 구단들은 이번 드래프트에서 1~3명 정도를 뽑았습니다.

올해 드래프트에는 역대 두 번째로 많은 526명의 선수가 나왔지만, 우선지명과 번외지명을 포함해도 84명 만이 선수의 길을 이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전체의 16%, 지난해 114명보다도 더 줄었는데, 2006년 이후 최소라고 합니다.

바늘구멍보다 더 통과하기 힘든 K리그 드래프트. 오히려 드래프트장에 선수들이 오지 않은 게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알아보니 프로축구연맹이 드래프트 규모가 축소를 예상해 일부러 선수들을 초청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대학감독들이 자리를 지켰는데, 제자들의 프로행을 보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 감독, 얼굴에 패인 주름이 더 깊어보였습니다.

드래프트 도중 대학감독들끼리 모여 심각한 얘길하는 게 보였습니다. 뭔지 물어보자 "현행 25명인 1군 등록선수 숫자를 늘리고 2군 리그를 부활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남부대 양철원 감독은 "제자 9명을 드래프트에 내놨는데 우선선발된 1명을 빼곤 아무도 뽑히지 못했다. 대학리그도 25명으로는 택도 없는데 프로리그가 저렇게 적은 인원으로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제도가 선수들을 실업자로 내몬다"고 한탄했습니다.

프로팀과 K리그 쪽 얘기도 들어봤습니다. 1명만 뽑은 수원 삼성 관계자는 "자체 육성 프로그램에 많은 예산을 투자한다. 경험이 적은 아마 선수보다는 자체 유스팀 선수를 쓰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대답했습니다. K리그 관계자 역시 "지난해 2군리그에 관해 구단별 수요를 조사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드래프트에서 한 명도 지명하지 않은 경남FC. 우선지명 선수인 골키퍼 최봉진이 유니폼을 입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2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며 누군가 이름이 불려 자신의 팀 동료가 되기를 기다렸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중앙대 동기 7명 중 자신이 유일하게 프로팀에 가게 된 겁니다. 2군 강등으로 불투명해진 팀의 운명보다도 세상에 던져지게 될 친구들의 운명이 더 걱정되는 표정이었습니다.

K리그 신인 드래프트는 올해가 끝입니다. 내년부턴 자유계약제로 전환됩니다. 특급선수에 대한 스카웃 경쟁은 더 치열해지겠지만, 작은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시험대는 사라지는 겁니다.

올해 농구와 야구에 이어 쌀쌀한 날씨 속 진행된 이번 축구까지, 여러 종목의 신인선수 선발을 지켜봤습니다.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오지만, 선발되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기다려도 갈 곳은 없습니다. 평생 축구만 해온 그들은 인생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열정에게 기회를'.

이젠 해체되고 없는 독립야구팀 고양원더스의 슬로건이 머릿 속을 맴돕니다. 이번 겨울은 참 잔인합니다.

(사진=중앙포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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