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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올림픽 유산'에만 집착하는 평창올림픽조직위와 강원도

입력 2014-10-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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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올림픽 유산'에만 집착하는 평창올림픽조직위와 강원도


지난 10월 13일, 평창군 주민들은 그렇게 어렵게 따낸 동계올림픽을 "반납도 불사하겠다"며 대대적인 투쟁을 예고했습니다. 올림픽 개·폐회식장을 평창 대신 강릉에 있는 종합운동장을 개조해서 치르는 안을 정부가 추진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심각하게 전개되자 그날 저녁 조양호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과 최문순 강원도지사,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의 한 호텔에 모였습니다. 예정대로 평창에서 개회식을 치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조양호 위원장은 JTBC 카메라 앞에서 "개·폐회식장 위치를 결정하는 게 중요했는데 이제 정해졌으니 안심하셔도 된다. 걱정 하실 것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2011년 7월 올림픽을 유치하고, 3년 3개월 만에 돌고 돌아 '예정대로' 확정된 것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을 '강릉'에서 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정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제안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정부로서는 걱정이 컸습니다. 당초 개·폐회식장은 평창의 알펜시아 리조트에 있는 스키점프 경기장 관람석을 증축하기로 했습니다. 300억원도 안 되는 예산이 편성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직위는 4만석 규모의 경기장이 들어서기에 부지가 좁다며 새로 짓자고 했습니다. 공사비는 최소 700억원으로 2배 넘게 늘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개·폐회식장 주변에 홍보관과 상업시설 등이 들어서는 올림픽플라자를 함께 지어서 '올림픽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무려 1200억원이 더 필요한 사업입니다. 게다가 조직위는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문화시설인 만큼 국비의 비율을 최대치인 75%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정부의 편이 아닙니다. 3년 4개월 후면 올림픽을 열어야 합니다. 강원도나 조직위는 틈나는 대로 "공기를 맞춰야 한다" "사전 대회까지 치르려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정부를 압박합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시간에 밀려 합의를 해나가다 보니 언뜻 이해할 수 없는 사업들에도 예산을 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4조원 가까이 투입되는 원주-강릉 복선 철도 공사를 연장하는 데 4600억원이 더 투입됐고, 가리왕산 알파인 스키장은 지었다가 복구하는 데 2000억원을 써야 합니다. 대관령에 600억원짜리 '올림픽 식수 전용 댐'이 들어서고, 수천 세대의 선수촌과 미디어촌이 강릉시에 새로 지어집니다.

얼마 전 끝난 인천아시안게임 준비 당시에도 문학경기장을 증축해 개·폐회식장을 짓자는 정부의 제안에 주민들은 대회 반납을 선언하며 반발했고, 시간에 쫓긴 정부는 결국 5000억원짜리 경기장을 지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천시는 대회 한 번 치르고 2조원에 가까운 빚더미 위에 올라앉았습니다. 인천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평창올림픽이지만, 조직위나 강원도의 관심은 "올림픽 유산을 남겨야 한다"는데 집중돼 있습니다. 인천아시안게임은 총사업비 2조원의 33%를 국고에서 지원받았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은 11조원 중 66%인 7조원이나 국고가 쓰입니다. 그만큼 대회가 끝나고 강원도민뿐 아니라 전 국민이 갚아 나가야 할 돈도 천문학적입니다.

이날 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나온 조양호 조직위원장과 최문순 도지사의 표정은 무척 밝았습니다. 혹시 그 미소가 정부를 설득해 예산을 확보했다는 안도감 때문은 아니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윤영탁 기자 kaiser@joongang.co.kr
(사진=2018평창동계올림픽 홈페이지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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