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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리스' 유혹에 이자 내기도 힘겨운 수입차 '카푸어' 전락

입력 2014-10-1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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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8월 한 달 동안 수입 승용차 1만6633대가 추가 등록되면서 8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 등록된 수입 승용차는 모두 100만6328대가 됐다"고 밝혔다.

마침내 수입(승용)차 100만대 시대가 열렸다. 앞서 지난 1987년 1월, 정부가 배기량 2.0리터(ℓ) 이상의 대형차와 1.0ℓ 이하의 소형차를 먼저 개방한 이후 27년7개월 만의 일이다.

같은 달까지 국내에 등록된 국내외 승용차는 총 1554만213대였다. 길에 굴러다니는 승용차 15대 중 1대가 수입차인 셈이다.

1987년 10대에 그쳤던 수입차 등록대수는 2010년 9만562대, 2011년 10만5030대, 2012년 13만858대, 2013년 15만6497대로 급증했다. 올해는 1~8월에만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24.6% 늘어난 12만8817대가 등록됐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올 연말까지 19만대 이상이 신규 등록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수입차가 급증하면서 어느덧 우리 사회는 수입차를 타는 것에 대해 더 이상 '매국'이나 '사치'라고 비난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게 됐다. 소비자가 더 이상 '과시'만이 아니라 '성능', '안전', '연비', '디자인' 등 다양한 이유로 수입차를 선택하는 것처럼 대다수 국민도 그들 나름의 이유를 수긍하고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수입차를 몬다는 이유로 운전자가 시민들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일부 주유소에서 주유를 거부당했던 일이 '신화'나 '전설'처럼 여겨질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수입차 열풍 속에서 또 다른 부작용들도 하나 둘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카푸어 문제', '수입차 이용 범죄' 등이 그것들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K씨(34·서울 당산동)는 지난 2010년 봄 자신의 '드림카(Dream Car)'였던 독일제 중형세단을 3년 유예 리스로 구입했다.

연봉 3000만원대에 불과했던 그가 수입차 오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유예 리스' 덕이었다. 딜러는 "6000만원대인 00모델의 경우 선납금 30%만 내면 오너가 될 수 있다. 이후에는 36개월 동안 매월 리스비 30여 만원씩만 내면 된다. 3년 뒤 나머지 60%를 일시에 납부하면 차량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다. 그게 부담스러우면 그때 가서 재리스를 하면 된다"고 K씨를 유혹했다.

예전부터 xxx차를 탐냈지만 목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꿈도 못 꾸던 그는 '타던 국산 소형차를 처분하고, 적금을 깨서 마련한 돈으로 선납금 2000여 만원을 내자. 매월 용돈을 아끼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리스비를 내면서 차를 마음껏 타다 3년 뒤 한 번에 갚거나 안 되면 재리스를 하면 되겠군'이라는 계산으로 과감히 드림카의 운전석에 앉았다.

수입차 오너가 되니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친구들, 회사 동료들의 부러움을 산 것은 물론, 소개팅해 만난 여성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다른 것을 실감했다. 차량 구입 후 이듬해 결혼식 날 그 차가 하객들의 선망을 받는 '웨딩카'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약정기간 만료가 다가오면서 그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 갔다. 상환유예원금 4000여 만원을 만들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 분유비가 만만찮게 들어갔고, 뒤이어 둘째 아이까지 갖게 되면서 아내의 직장 복귀도 어려워졌다. 전세 보증금을 올려줄 것을 요구하는 집 주인의 말은 늘 "좋은 차를 타면서…"로 끝났다. 남들이 부러워 하는 차를 소유했지만, 정작 K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근길이면 늘상 '만원 지하철'에 시달려야 했다. 주말에도 마트에 쇼핑하러 갈 때나 이용할 뿐이었다. 아내와 연애할 때처럼 드라이브를 간다는 것은 엄두도 못냈다. 3000㏄인 차의 기름값이 두려워서였다. 전형적인 '카푸어(Car Poor)' 신세였다.

3년이 다 돼가던 지난해 봄 K씨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유예원금을 다 내고 진짜 내 '애마'를 만드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결국 재리스를 할 것인가, 차를 중고차 시장에 내놓을 것인가 중 선택해야 했다.

중고차 값은 유예원금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3000여 만원에 불과했다. 수입차의 감가상각률이 몹시 커서 3년이 되면 40%를 받기도 힘든 데다 2010년에 역시 유예리스로 구입한 차들이 대거 매물로 나와 중고차 값이 더 낮아졌다.

재리스를 해 1년 더 현실을 회피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36개월 동안 리스료로 부담했던 1000여 만원 중 원금 상환액은 10%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조리 이자였던 것으로 볼 때 하루 빨리 카푸어 신세에서 벗어나는 것이 살길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차를 팔고 부족한 액수는 신용대출을 받아 해결했다.

K씨는 "손해를 더 안 본 것만도 다행이다"며 "그간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한동안 국산 소형차도 없이 살기로 했다. 나를 '능력남'으로 알고 결혼했을지도 모르는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다"고 털어놓았다.

◇'위험한 유혹' 유예리스

K씨를 카푸어 신세로 몰아넣었던 유예리스는 2000년대 국내에 도입된 이후 '목돈이 없이 수입차의 오너가 될 수 있는 묘안'으로 인기를 끌면서 수입차 100만대 시대를 앞당기는 기폭제 구실을 했다.

2000년대 후반 국내 수입차 시장의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수입차 브랜드들은 당시 "구입 단계에 차량의 선납금 30%를 내고 차량을 인수한 뒤 이후 3년(36개월) 동안 차량가의 10%와 이자를 포함해 월 리스비를 내면서 차량을 이용하면 된다. 3년 뒤 약정기간 종료 시 상환유예원금 60%를 일시 납부하면 해당 차량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다. 만일 상환유예원금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재리스를 통해 차량을 연장 이용하면 된다"고 호객했다.

그러나 K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지금 당장 없는 목돈을 3년 지나 마련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결국 차를 중고시장에서 팔아 유예원금을 최대한 마련해야 하지만, 수입차의 높은 감가상각률 탓에 유예원금을 마음먹은 대로 충족하지 못한다.

온라인 중고차 매매사이트 SK엔카에 따르면, 3년 된 수입차 25개 모델 중 잔존 가치가 신차 가격 대비 60% 이상인 것은 4개 모델에 불과하고 21개 모델이 40% 이하에 그쳤다. 게다가 전체 중고차 매물 중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1년 9.3%, 2012년 10.1%, 2013년 11.6%로 점점 늘어났다. 특히 올해는 9월30일까지 이미 13.8%에 달했다.

결국 유예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K씨처럼 자신의 돈까지 보태야 한다. 재리스를 한다고 해도 늘어난 기간 만큼 이미 3년이 지난 '헌 차'에 과거 '새 차'를 살 당시 보다 이율이 2% 가량 높아진 리스비를 매월 내다 다시 그 기간이 끝난 다음 남은 유예원금을 갚아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만일 만기 시 유예원금을 못 갚거나 월 리스비를 제때에 내지 못한다면 신용불량자 전락은 물론, 민·형사적 책임도 피할 수 없다. 3년 만기 뒤 재리스를 하고 싶어도 신용등급에 변동이 생겼을 경우 연장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결국 이래 까지고, 저래 터지면서 달콤한 사탕발림에 혹해 기둥뿌리가 썩는 줄 몰랐던 '죄값'을 톡톡히 치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수입차 유예할부로 실질적인 이득을 얻는 쪽은 차를 많이 팔아서 좋은 수입차 브랜드들과 돈 장사하기 바쁜 파이낸스사들인 셈이다.

◇카푸어 방지 대책

지난해 말부터 수입차 유예리스로 인한 카푸어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자 수입차 업계는 일단 유예리스에 관한 홍보를 예전처럼 열을 올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관련 상품은 여전히 남아있고 상담을 원하면 얼마든지 해준다.

실제로 한 독일 브랜드는 지난 9월 한 달 간 스포츠 유틸리티(SUV) 모델과 중형세단 모델을 대상으로 유예금융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선납금 30%를 내고 매월 이용료를 납부하면 3년 간 차량을 탈 수 있는 조건으로 소비자를 꾀었다.

자동차 금융 전문가인 어인태 카스피리스(www.starcarspi.com) 팀장은 "유예리스도 사용 여하에 따라 괜찮은 수입차 금융 상품이다. 그러나 3년 뒤 확실히 유예원금이 준비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면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면서 "특히 유예리스는 금융리스로 분류돼 3년 뒤 차량 반납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소비자가 미리 알고 계약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이어 "운용리스로 둔갑한, 3년 뒤 차량 반납 가능 상품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며 "3년 뒤 잔존가치가 60%를 넘는 수입차가 거의 없는 만큼 할부금융사가 차를 떠안을 이유가 없다. 어떻게든 이유를 달아서 소비자에게 떠넘기거나 연장을 권유해 소비자에게 부담을 지울 수 있으니 처음 계약할 때부터 확실히 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수입차를 할부로 구입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유예리스처럼 3년 뒤 고민에 빠질 염려는 없다. 그러나 만일 능력에 부치는 수입차를 구입한다면 할부 대금을 내기 위해 처음부터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간신히 수입차 할부금을 완납했다면 그때부터 5년, 10년 동안 이 차를 타겠다고 마음먹으면 되겠지만, 국내의 상당수 차량 소유주들은 국산차든, 수입차든 할부 기간이 끝나는 대로 차를 팔고 다시 새 차를 할부로 구입한다. 수입차를 타다 다시 새로운 수입차를 사는 비율이 3.7%(2013년 기준, 마케팅 인사이트 조사)로 수입차에서 국산차로 넘어 간 비율(1.7%) 보다 높은 것으로 볼 때 다시 카푸어의 '악순환'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마음 단단히 먹고 3년이 지난 수입차를 계속 타기로 한다면 이때부터는 만만찮은 수리비가 발목을 잡는다. 각종 보증서비스 기간이 이 시기에 대부분 끝나는 것도 카푸어 신세를 갓 탈피한 수입차 소유자들에게는 새로운 짐이다.

결국 카푸어 문제는 소비자들이 분수에 맞는 소비를 하지 않는 한 그림자처럼 줄곧 따라다닐 수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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