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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찜통교실'…쓰러지는 학생들 누가 책임지나?

입력 2013-06-08 09:55 수정 2013-06-10 15:29

불볕더위 기승인데 교실엔 낡은 선풍기 4대만 가동
교육용 전기료, 산업용보다 비싸…에어컨은 '그림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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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더위 기승인데 교실엔 낡은 선풍기 4대만 가동
교육용 전기료, 산업용보다 비싸…에어컨은 '그림의 떡'

숨 막히는 '찜통교실'…쓰러지는 학생들 누가 책임지나?


"숨이 막힐 정도로 덥고 땀이 줄줄 흐르는 통에 수업에 집중하기는커녕 부채질하기도 바빠요."

원전 가동 중단과 때 이른 불볕더위까지 겹치면서 전력난 우려와 비싼 전기요금 탓에 학교에서는 냉방장치 가동이 사실상 중단됐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는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부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을 5분씩 줄이거나 체육 과목은 아예 교실에서 진행하는 등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수업 차질은 불가피하다. 교사와 학생들은 에너지 절약에는 공감하지만 획일적인 정부의 시책에 '해도 너무 한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낮 최고기온이 32도에 육박할 정도로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4일 오후 서울의 한 고등학교. 운동장에는 불볕더위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무도 없었고, 군데군데 아지랑이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땀내가 진동했다. 교실에 설치된 온도기는 섭씨 33.7도를 가리켰다. 하지만 에어컨은 가동을 멈췄고, 천장에 매달린 낡은 구형 선풍기 4대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이미 푹푹 찌는 '찜통'이 돼버린 교실은 선풍기만으로 더위를 식히기에 역부족인 터라 모든 창문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30여명 남짓한 학생들의 흐르는 땀을 식혀주기에는 태부족이었다.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교복 상의를 벗은 채 반팔 흰색 티셔츠만 입고 수업을 듣는 남학생들이 눈에 띄었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일부 여학생들은 얼린 물병을 끌어안고 있었다. 찜통 교실에서 더위에 지친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는가 싶더니 짐짓 딴청을 피워대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 책상에 쓰러지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남학생들은 앞 다퉈 화장실이나 수돗가로 달려가 세수를 하며 더위를 식혔다. 여학생들은 삼삼오오모여 매점에서 시원한 탄산음료 등을 나눠 마시며 더위를 달래기도 했다.

학생들은 무덥고 습한 날씨에 지쳐 수업에 집중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김민서(17)양은 "날씨가 갈수록 더워지는데 냉방기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해 정말 최악의 여름"이라며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교실에서 무슨 수업을 하고, 공부를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최일준(18)군은 "고3 수험생이라 더워도 그냥 참고 수업을 받지만 집중하기가 너무 어렵고, 공부도 잘 안 된다"며 "너무 더워서 그런지 선풍기 바람도 시원한줄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학생들을 지켜볼 수밖에는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3학년 담임교사 김모(42·여)씨는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고 있지만 수업 중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면서 "부채질을 하고 땀을 흘리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럽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학부모 박모(48)씨는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요즘 같은 불볕더위에도 에어컨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며 "학부모들이 전기료를 부담하더라도 냉방장치를 정상적으로 작동시켜 쾌적한 환경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도 학교에서 냉방장치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선 학교에서는 비싼 전기요금을 감당할 수 없는데다 올해 사상 최악의 전력난이 예고돼 있어 냉방장치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장은 "교육용 전기요금이 산업용보다 비싸기 때문에 학교로써는 전기료 부담이 만만치 않다"며 "학교운영비 가운데 전기요금을 제외한 다른 항목 예산을 쥐어짜듯 줄이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실제 교육용 전기료(2012년 12월 기준)는 1㎾h당 판매단가가 108.8원으로 92.8원인 산업용 전기료보다 16원 정도 비싸다. 학교 교육용 전기료는 2009년 6.9% 인상 이후 ▲2010년 5.9% ▲2011년 8월 6.3% ▲12월 4.5% ▲2012년 8월 3.0% ▲2013년 1월 3.5%로 매년 올랐다. 최근 5년간 인상률이 30.1%에 달한다.

특히 전국 초·중·고교 10곳 중 7곳은 전기료 부담 때문에 교육비 등 다른 학교 운영비를 줄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가 지난 4월15일부터 한 달 간 전국 1058개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용전기료 등 공공요금 실태조사'에서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

응답 학교 가운데 72.2%는 전기료 때문에 여타 학교운영비(교육비·시설 유지·보수비 등) 예산을 삭감했고, 87.9%는 지난해 전기료 인상으로 냉난방 가동을 자주 중단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95.6%의 학교는 전기료 인상으로 학교운영에 '부담스럽다'고 응답했고, 이 중 48%는 매우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관할 교육청은 전기료를 내리는 것 외에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정상 수업을 위해 교실 온도를 낮춰달라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며 "현실에 맞는 냉방장치 운영을 하도록 학교에 통보하고 있지만 전기요금 문제로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학교가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앞서 18대 국회에서 교육용 전기료를 산업용 전기료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전기사업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결국 폐기됐다.

전력 수요가 크게 늘면서 이틀째 전력수급경보 '준비'가 발령된 이날에도 학생들은 부채 하나로 '더위와의 전쟁'을 치르며 숨 가쁜 하루를 보내야 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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