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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①] 설기현 "늘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축구 했다"

입력 2012-01-04 07:01 수정 2012-01-0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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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①] 설기현 "늘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축구 했다"


일간스포츠가 와이드 인터뷰 Who+를 신설합니다. Who+는 단순히 이야기만 나누는 인터뷰가 아닙니다. Who+는 스타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즐기며 그 속에 담긴 추억을 나눌 것입니다. Who+는 스타와 함께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며 스타와 독자를 향해 한 발 더 다가가겠습니다. 겉모습 속에 감춰진 그 사람의 속내와 새로운 면을 탐색하고 조명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 부탁합니다.


부산에서 설기현(33)을 만났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해운대 한 횟집이다. 줄돔회, 산낙지, 전복회 등이 풍성하게 식탁을 채웠다. 해산물은 설기현에게 아주 익숙한 음식다.

바다는 설기현의 인생에서 늘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태어난 곳은 강원도 정선, 산골 마을이지만 중고등학교는 경포대를 끼고 있는 강릉에서 나왔다. 광운대 4학년이던 2000년 여름에는 혈혈 단신 바다 건너 벨기에 프로축구리그 안트워프에 진출했다.

2010년 K-리그로 돌아와서는 포항에서 뛰었고, 지난해에는 울산을 K-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공교롭게 두 팀 모두 바다를 끼고 있는 공업도시다. 현재 사는 곳은 부산. 처갓집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어릴 때 먹은 음식 중에 기억에 남는 음식은 무엇인가.

"가자미다. 어렸을 때는 오징어가 비싸고, 가자미가 쌌다. 가자미가 몸에 좋다고 뼈째로 먹었다. 뼈 자라는 데 좋다고. 특히 부상을 당했을 때도 뼈가 빨리 붙으라고 많이 먹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오징어가 더 싸고, 가자미가 비싸졌다. 어렸을 때는 가자미 대신 비싼 오징어가 먹고 싶었는데, 요즘에는 입맛도 반대가 됐다. 가자미를 먹어보면 '아 이래서 오징어보다 더 비싸졌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뼈 채 썰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 중에서 맛있는 건 없나.

"우리집은 4형제다. 식탁에 조금만 늦으면 한 숟갈도 없었다. 어머니가 닭고기 한 마리로 닭개장을 끓여주셨다. 한 양푼을 끓여놓고 다 함께 먹었던 기억이 난다. 형편이 좋아지면 닭개장이 아니라 닭도리탕을 해주셨다. 하하. 벨기에 시절에 닭개장이 생각나서 부인에게 해달라고 했다. 만드는 방법을 설명해주니까, 비슷하게 하더라. 아내는 부산 사람인데 닭개장을 한 번도 안먹었다고 한다. 나 혼자만 먹었다."

설기현은 박지성, 이영표 등 1990년대 말부터 등장한 축구 선수 중 해외 리그에 가장 먼저 진출한 선수다.

그는 "나에게 축구에 대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늘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축구를 했다고 말했다. 광운대 재학중 과감히 벨기에로 나선 2000년 이후 그의 축구인생은 늘 도전의 연속이었다. 벨기에, 잉글랜드, 사우디아라비아를 오가며 안트워프, 안더레흐트(이상 벨기에), 울버햄프턴, 레딩, 풀럼(이상 잉글랜드), 알힐랄(사우디아라비아)에서 뛰었다.

-2000년 여름에 도전한 첫번째 해외 구단이 앤트워프였다.

-벨기에 안트워프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짐풀고 근처 공원가서 혼자 몸을 풀었다. 어떤 청년이 와서 뭐하냐고 묻기에 안트워프에서 축구 선수로 뛰기 위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 청년이 도대체 이런 시시한 팀에 왜 왔냐고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괜히 왔나라고 굉장히 걱정했다. 출전한 지 두 경기만에 허리 부상을 당했다. 겨울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경기에 나섰다. 원정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동료와 함께 버스에서 맥주를 마셨다. 아주 즐겁게 축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설기현은 첫 시즌에 25경기에 출장해 12골을 넣고 이듬해 벨기에의 명문구단 안더레흐트로 진출했다. 결과적으로 안트워프는 유럽에 연착륙하는 데 아주 적절한 팀이었다.

-벨기에에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기름기없는 살코기를 피가 보일 정도로 살짝 인힌 스테이크가 있다. 소스 종류도 많은 데 너무 맛있었다. 문제는 양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손바닥 절반 크기도 안돼 포크로 찍어서 그냥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레스토랑이었는데, '감자튀김과 야채는 빼고 스테이크만 4~5개 올려달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라."

설기현은 2001년 여름부터 2004년 여름까지 안더레흐트에서 세 시즌 동안 뛰었다. 그는 이적 후 치른 첫번째 경기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리그 챔피언과 FA컵 챔피언이 시즌 초 개막전으로 붙는 슈퍼컵에서 교체 출전해 11분 동안 3골을 몰아쳤다.

-안더레흐트 첫 경기가 대단했는데.

"경기 끝나고 내가 어떻게 뛰었는지도 잘 생각이 안났다. 첫경기라 호흡을 맞출 새도 없었다. 그저 열심히 뛰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 경기 후 감독과 동료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호나우두를 쳐다보는 듯한 눈빛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 이후 그런 경기를 펼치지 못했고, 동료들 눈빛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하하."


▶TIP 내 인생 최고의 골

설기현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와 16강전 때 후반 종료 직전 터트린 천금같은 동점골이다. 그 골이 없었다면 이탈리아에 0-1로 패했을 것이다. 4강 신화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박지성과 이영표의 유럽 진출도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기현은 "그건 팬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골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최고의 골은 안더레흐트 시절 유럽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넣은 골"이라고 했다. 설기현의 설명을 들어보자.

"2003~2004 유럽 챔피언스리그 예선전이었다. 루마니아의 강호 부크레슈티와 경기였다. 원정에서 0-0으로 비기 후 홈에서 2차전이 열렸다. 안더레흐트는 전반에 0-2로 두 골을 내줬다. 그 경기에 이겨야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오를 수 있었다. 팀이 얼마나 급했던지 하프타임에 구단이 승리 수당을 베팅하기도 했다. 그 경기에서 우리는 후반에 2골을 넣었고, 내가 역전 결승골을 넣었다. 경기중 부상을 당해 이튿날 구단 의무실에 누워있었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햇살이 비치면서 감독이 너무도 자애로운 표정으로 와서 격려해줬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아주 중요한 일을 해냈구나'라는 생각에 너무 뿌듯했다. 감독도 내게 '넌 이번 시즌에 할 걸 다 했으니 푹 몸조리하라'고 말했다."

이해준 기자 hjlee72@joongang.co.kr
사진=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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