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수입차 업체가 연초부터 국내 주요 포털인 네이버 등에 내보내고 있는 '유예할부 프로모션' 배너 광고의 문구다. 광고를 클릭하면 해당 수입차의 공식 홈페이지에 연결돼 프로모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선납금 30%에 36개월 동안 매달 10만원을 내면 6000만원대 수입 중형 세단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이런 달콤한 광고만 보고 수입차를 구입했다가는 낭패 보기 일쑤다. 차량 가격에 비해 월 납부금이 지나치게 낮은 경우 유예율을 과도하게 높이거나 차량 잔존가치를 낮게 설정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수입차 업체들이 판매량 올리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차량 구입비와 유지비 부담에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카푸어(car poor, 소득 대비 무리한 고급차 구매로 생활고를 겪는 사람)'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예할부의 '달콤한 유혹'
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부 수입차 업체들을 중심으로 월 10만~30만원만 부담하면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각종 유예할부 프로모션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재규어다. 재규어코리아는 연초부터 중형 세단 '2.0D 프레스티지'를 선수금 30%(1848만원)만 내면 36개월 동안 월 8만5700원에 이용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20만원대의 프로그램을 선보인 바 있다. 현재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F-페이스 20d 프레스티지'도 선수율 30%, 유예율 60%에 36개월 월 32만5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도요타의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내 판매 1만대 돌파를 기념해 준대형 세단 'ES300h'와 준중형 SUV 'NX300h'에 대해 월 9만원대 구입할 수 있는 유예할부 프로그램을 내놨다. 구입 때 차 값의 50%는 미리 내고 24개월 동안 월 9만4430원을 내면 5200만원이 넘는 ES300h를 탈 수 있다. 6000만원대인 NX300h는 월 9만1837원만 내면 된다.
미국 프리미엄 브랜드 캐딜락은 지난 2월부터 대형 세단 'CT6'를 월 29만9000원(선수금 40%)에 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놨다. 중형 쿠페 'ATS'는 19만9000원, 'CTS'는 23만9000원이다.
유예할부의 함정 '유예율'
문제는 이 같은 수입차 유예할부 제도 때문에 무리해서 외제차를 샀다가 경제적 위기에 몰려 빚더미에 앉는 '카푸어'족이 늘고 있다는 데 있다.
유예할부는 차 값의 30~50%를 미리 내고 이후 2~3년간 매달 저렴한 비용만 납입하면 수입차를 몰수 있다는 점 때문에 당장 목돈이 없는 젊은 소비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이 같은 유예할부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바로 '유예율'이다. 유예율은 전체 차 값에서 계약기간 만료 시 완납해야 하는 금액의 비율을 말한다. 유예율이 60%라면 계약기간 만료 시 전체 차 값의 60%를 일시에 완납해야 한다는 얘기다.
즉 차 값의 60%를 해당 수입차 업체가 빌려준 셈이다. 매달 나눠 내는 금액에는 차 값 중 원금 일부와 업체가 빌려준 60%에 대한 이자가 포함돼 있다.
만약 계약 기간 만료 후 유예된 금액을 완납하지 못하거나 월 납임금을 제때 내지 못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 있다. 또 법적으로 민·형사적 책임도 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대출을 받는 등 빚을 지기도 한다. 이른바 '카푸어'가 이렇게 양산된다.
차 되팔아도 손해 보기 일쑤
차량가의 60% 정도라면 차를 팔아 갚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SK엔카 조사 결과 3년 된 수입차 모델 20개 중 신차 대비 60% 이상의 가격을 받는 것은 두 종에 불과했고, 대부분 40% 이하 수준이었다. 차량은 부동산에 비해 감가상각비가 낮아 처음 구입 금액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에 거래되기 일쑤이고, 유예금을 내지 못해 중고차 시장에 유입되는 수입차가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재규어 XF 2014년식(2.0 프리미엄)의 경우 현재 원래 차 가격인 6590만원에서 52%나 떨어진 315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만약 3년 전에 재규어 XF를 30% 선납금을 내고 유예할부로 구매했다면 중고차로 처분한 후에도 65%의 유예금(4283만원)을 맞추기 위해 1130만원 가량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결국 수입차 유예할부로 실질적인 이득을 얻는 쪽은 차를 많이 팔아서 좋은 수입차 브랜드들과 돈 장사하기 바쁜 파이낸스사들인 셈이다.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유예할부는 수입차 업체들의 수익 향상에 최적화돼 있는 프로그램으로 마치 물고기를 잡는 '통발'과 같다"며 "소비자로 하여금 수입차 시장에 발을 들여놓기는 쉽게 해놓은 반면 빼기는 어렵게 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카푸어 양산을 이유로 지난 2013년부터 수입차 업체들이 유예할부의 홍보를 자제해 왔다"며 "하지만 지난해 수입차 시장이 전년 대비 7% 가량 역성장하자, 일부 업체를 중심으로 유예할부 마케팅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