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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판정 논쟁, "심판의 고유권한이다" VS "항의의 자유를 허하라"

입력 2018-04-1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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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판정 논쟁, "심판의 고유권한이다" VS "항의의 자유를 허하라"

베테랑 심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오늘 경기에서 누가 심판을 봤는지 아무도 몰라야 최고의 게임이자 최고의 심판이다." 그렇다면 요즘 KBO 리그엔 '좋은 심판'이 많지 않은 듯하다. 프로스포츠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야구도 심판 판정을 둘러싼 논란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10일 대구 삼성-두산전에서 벌어진 이른바 '볼 패싱' 해프닝은 여러모로 곱씹어볼만 하다. 두산 포수 양의지가 7회말을 앞두고 후배 투수 곽빈의 연습 투구 가운데 하나를 뒤로 흘렸다. 선수 스스로는 고의성을 부인했지만, 지켜 보는 이들에게는 공을 일부러 잡지 않고 흘렸다는 인상을 줬다. 하필이면 바로 직전 공격이던 7회초 타석에서 양의지가 구심의 바깥쪽 공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KBO 상벌위원회가 열렸고, 양의지는 벌금 300만원과 유소년 야구 봉사활동 80시간의 징계를 받았다. 그 일이 벌어진 뒤 많은 야구팬은 "양의지의 행동이 잘못된 것은 맞지만, 애초에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판들의 들쑥날쑥한 스트라이크-볼 판정이 선수들의 반감으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불붙은 판정 논쟁, "심판의 고유권한이다" VS "항의의 자유를 허하라"

야구규칙 9.02에는 '투구가 스트라이크냐 볼이냐 하는 심판원의 판단에 따른 재정은 최종의 것이다. 선수, 감독, 코치 또는 교체 선수는 그 재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한 베테랑 심판은 "다른 판정에 대해 감독이나 선수가 항의할 때는 우리도 최대한 잘 설득하고 좋게 대화로 풀어 보려 한다. 하지만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하게 경고를 준다"고 했다.

그만큼 스트라이크-볼 판정은 모두가 인정하는 심판의 고유 권한이다. 심판의 권위가 바닥을 치고, 비디오 판독이 도입됐다 해도,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은 심판들이 지켜야 할 최후의 자존심이자 마지노선이다. 하지만 동시에 포수 뒤에 선 구심의 정확한 판정과 역량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도 된다. 야구는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냐 볼이냐에 따라, 그리고 그 결과로 볼카운트가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공수 전반이 요동치는 게임이다. 심판의 판정이 모두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그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삼진을 당한 선수나 불만을 표현한 선수에게만 불이익이 돌아가는 것은 충분히 억울할 수 있는 일이다.

올해 초반부터 유독 구심의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선수가 많았다. 롯데 채태인은 지난달 28일 잠실 두산전에서 루킹 삼진을 당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면서 자신의 배트를 집어 던졌다. 조원우 롯데 감독이 나와 심판을 진정시킨 뒤에야 겨우 분위기가 가라 앉았다.
불붙은 판정 논쟁, "심판의 고유권한이다" VS "항의의 자유를 허하라"

한화 이용규도 지난 13일 대전 삼성전에서 7회 심판의 볼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 당했다. 이용규 역시 삼진을 당한 뒤 타석에서 펄쩍펄쩍 뛰다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KBO는 16일 이용규에게 리그 규정 벌칙내규 3항에 의거해 엄중 경고했다.

두산 오재원이 지난 3일 잠실 LG전 스트라이크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 당한 뒤에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심판위원의 판정과 권위를 존중한다. 그러나 이번 사례의 퇴장 근거가 되는 KBO와 심판위원회의 결정사항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중 심판위원에 질의 금지(볼 판정 여부, 판정에 대한 어필 등은 감독만 가능하고 선수가 어필하면 퇴장시킨다)'는 조항은 선수들의 자유를 너무 억압한다는 주장이다.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을 둘러싼 심판과 선수의 대립은 그동안 숱한 에피소드를 낳았던 해묵은 역사다. 갈수록 그 빈도가 더 잦아지고 있는 게 문제다. KBO 역시 모두가 납득할 만한 접점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정금조 KBO 사무차장과 김선웅 선수협 사무총장, 김풍기 심판위원장이 지난 13일 한 자리에 모여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

정 차장은 "경기장에서는 선수와 심판이 주역이니, 동업자 의식을 갖고 서로 존중하자는 얘기를 나눴다"며 "양측이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재발 방지책을 논의한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배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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