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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마스크 못 쓰는 게 왜?…홍콩의 '복면금지법'이 무서운 진짜 이유

입력 2019-10-10 10:57 수정 2019-10-1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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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마스크 못 쓰는 게 왜?…홍콩의 '복면금지법'이 무서운 진짜 이유

홍콩에 취재를 갈 때 꼭 챙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노란색 조끼와 안전모, 그리고 마스크입니다.

특히 마스크는, 시위가 격해지면서 그 종류도 달라졌습니다. 시위가 시작됐던 6월, 미세먼지 때문에 대량으로 구매해 놓았던 보건용 마스크 대여섯장을 캐리어에 넣었습니다. 7월에는 작업장에서나 쓴다는 방진마스크를 챙겼습니다. 중계 직전 최루탄이 터지면서 급하게 쓰기도 했죠. 중국 인민군 투입 얘기가 나오던 8월에는 불안함에 현지에서 방독면도 샀습니다. 

앞서 나온 모든 마스크를 시위대가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 '복면금지법'입니다. 시위가 합법이든 불법이든 상관없습니다. 마스크를 쓰면 최장 1년 징역을 살거나 2만5천 홍콩달러(약 380만원)를 내야 합니다. 이 법은 홍콩 정부가 발표한 다음날인 5일 0시부터 바로 시행됐는데요. 입법 절차를 아예 건너뛴 겁니다. 이게 가능했던 건 '긴급법' 때문입니다.

▶"폭력이 도시 전체로 번지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지난 5일)

홍콩 정부가 발동한 긴급법(긴급정황규례조례)은 100여년 전인 1922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법은 행정장관 한 사람에게 엄청난 권한을 쥐어줍니다. 영장 없이 압수수색은 물론 체포·구금·추방도 할 수 있습니다. 언론을 검열하고 인터넷을 막고 교통을 통제 하는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조치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계엄령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우리 나라 유신 체제에서나 있을법한 이 법이 2019년 홍콩에 어떻게 존재할까요?

 
[취재설명서] 마스크 못 쓰는 게 왜?…홍콩의 '복면금지법'이 무서운 진짜 이유
[1967년 반영 폭동 당시(출처: AP)]

긴급법은 영국이 식민지 홍콩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발동됐던 것은 1967년 반영 폭동 때 한 차례입니다. 노사간 충돌이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져 당시 50명 이상이 숨졌습니다. 그리고 반세기만에, 더이상 식민지가 아닌 홍콩 땅에 이 법이 다시 등장한 겁니다.

▶"영국 헨리 8세 식의 억압" -데니스 궉 민주파 의원

민주파 의원 24명은 즉시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복면금지법 임시 중단을 요청하면서, 캐리 람 행정장관이 발동한 긴급법에 대해서는 '헌법 재해석'을 요구했습니다. 1990년 제정된 기본법(홍콩 헌법)에 따르면, 조례에 해당하는 긴급법은 입법회(국회)의 의결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바로 거부했습니다. 이런 비판을 예상했었던 듯 캐리 람 행정장관은 오는 16일 열리는 의회에서 복면금지법을 공식 논의해 통과시키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긴급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긴급법 발동은 권위주의의 시작" -조셉 청 정치학자

긴급법 발동이 복면금지법 시행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앞서 중국은 홍콩 정부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는데요. 관영매체 인민일보는 복면금지법이 "모든 폭도를 잡진 못하지만, 시위대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주영국 중국대사는 BBC에서 "중국 정부는 캐리 람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대놓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노골적인 입장 표명은 앞으로 '더 강력한 조치에 대한 신호'라는 분석입니다. 당장 다음 조치로 논의 되는 것 중 하나가 '인터넷 규제'입니다. 11월에 있을 구의회 지방선거도 연기 또는 취소설이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홍콩 정치평론가 조니 라우는 "천안문 사태 경험으로 볼 때, 중국이 무력 사용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말했습니다.

 
[취재설명서] 마스크 못 쓰는 게 왜?…홍콩의 '복면금지법'이 무서운 진짜 이유
[10월초 홍콩의 한 마트. 쌀·라면 등 생필품 코너가 텅텅 비었다. ATM 기계에서는 더이상 현금 인출이 어렵다. 너도나도 현금을 갖고 있으려는 불안 심리 때문으로 보인다고 현지인은 전해왔다. (제공: 홍콩 거주 장소아 씨)]

'이렇게까지는 안되겠지'하는 일들이 긴급법 하나로 가능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홍콩의 불안감은 높아져 갑니다. 자신들을 '폭도'라부르는 행정장관이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된데다, 경찰들은 그런 정부를 등에 업고 마음 가는 대로 공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쌀 빵 라면을 사들이고, 이민 준비도 시작했습니다.

 
[취재설명서] 마스크 못 쓰는 게 왜?…홍콩의 '복면금지법'이 무서운 진짜 이유

[9월 29일 체포된 시민 명단. 주로 10대~20대 학생들이다.(제공: 클라우디아 모 홍콩 공민당 의원)]

혼란에 빠진 사회에서는 약자부터 다치기 시작합니다. 경찰이 10월들어 쏜 실탄 두 발은 14살과 18살 소년을 향했습니다. 10대 소녀는 경찰에 붙잡혀 무릎 꿇은 채 벌벌 떨어야 했습니다. 8일 홍콩 정부는 상황이 악화되면 다른 옵션들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시위대의 폭력이 도를 넘었고, 법을 어기고 있다는 건데요. 과연 시위대가 홍콩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인지, 추가 조치는 출구 전략이 될 수 있을지, 이제는 심사숙고 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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