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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태양광 난개발에…천년 문화재 '백제 성터' 훼손 위기

입력 2020-10-0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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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금 보시는 건 전북 남원의 한 마을입니다. 삼국사기에 나온 성, 1300년쯤 전 백제 시대에 쌓은 걸로 보이는 성벽이 발견됐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제대로 들여다보기도 전에 훼손될지도 모르는 처지입니다. 그 근처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이 들어선다는 건데요. 주민들도 불만입니다.

어떤 사연인지 밀착카메라 정원석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전북 남원 보절면의 성산입니다.

예전엔 거령산으로 불렸다는데요.

사람들이 다니는 등산로가 닦여 있는 산은 아닙니다.

그런데 정상 쪽을 돌다 보면 이런 높이 7-8미터의 성벽이 드러납니다.

삼국사기에도 등장하는 백제시대의 거물성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아래부터 차곡차곡 쌓여진 성벽.

성벽 틈으로 식물이 자라고, 이끼가 덮였지만, 각진 돌들을 맞물려 괴어 놓아 긴 세월 동안 거의 원형 상태로 보존됐습니다.

거물성은 백제에서 쌓아 올려 통일신라까지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삼국사기엔 문무왕이 거물성을 공격해서 백제의 병사들을 제압했다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당시 기록을 분석하면 현재 남원 보절면과 장수군이 속한 이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안재원/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 전주에서 합천으로 넘어가는 진격로, 여기가 군사적 요충지여서 신라하고 백제하고 치열하게 싸우다가 663년에 1070명이 죽은 자리예요.]

양쪽으로 이어져 있던 성벽이 끊긴 지점입니다.

이 성을 쌓을 때 쓰인 것으로 보이는 바위들이 쏟아져 바닥에 깔려 있는데요.

주변에선 기와나 토기의 파편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도 아직 이 주변에 대한 고증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일대에 분포한 기와와 토기 파편들에선 전형적인 백제 시대 양식이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대연/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 거기에서 나온 인장와라는 게 있어요. 기와에 도장을 찍는 거죠. 일반적으로 백제 사비 시대에 나오는 인장와가 거기 나왔으니까 해당 유적이 사비기에는 점유됐던 게 확실합니다.]

문제는 아직 고증이 진행되지도 않았는데, 8000㎡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이 주변에 들어설 예정이라는 겁니다.

성벽이 발견된 곳에서 발전시설까진 1.5km 떨어져 있지만, 전체 규모를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태양광 발전 시설 예정지에서 불과 3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산 중턱인데요.

학자들은 이곳에서 발견되는 바위들의 모습이 바깥 성벽의 흔적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바위에서 평평하게 떨어져 나간 부위들이 걸쇠 역할을 하면서 맞물려 있는 모습들은 인위적으로 쌓아 올린 성벽이라는 겁니다.

문화재 훼손 가능성뿐만이 아닙니다.

태양광 시설 허가가 난 곳은 민가 두 채로부터 1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정명순 안영순/외황마을 주민 : 18세 시집와서 이 집에서 평생 살았는데 이제 죽을 마당에 무슨 일이야. 애통한 마음에 살지를 못해. 잠을 제대로 못 자. 이게 무슨 꼴이냐고.]

사업허가에서 개발허가까지 나는 동안 주민 동의 과정은 없었습니다.

[박원균/외황마을 이장 : 통보를 받았으면 이렇게 울분을 안 터뜨립니다. 말 한마디 없이, 아무 상의도 없이 주민들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이원기/외황마을 주민 : 허가를 내준 사람하고 면담 좀 해야겠다 하니까 안 만나줘. 안 만나줘. 만나주지를 않아.]

남원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발전시설 반경 500미터에는 문화재가 없고, 민가 두 채는 주거밀집지역에 속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태양광 허가 관련 내부지침과 조례상, 민가가 10호 이상일 경우 마을로부터 100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야만 허가가 날 수 있는데, 해당 민가 두 채는 다른 민가들로부터 2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보니, 주거밀집지역이 아니라고 해석한 것.

[외황마을이야 여기도. 이름이 (다를 게) 무엇이 있어?/한 마을이지. 외황마을이라고 하면 한 마을이지. 싹 한 마을이야.]

취재 과정에 마침 현장을 찾은 남원시 관계자에게 주민들이 항의했지만 행정상 문제 될 게 없다는 답변만 받았습니다.

[남원시 관계자 : 주민 동의 받으라는 조항은 없어요. (전국 지자체 20군데 넘게 전화를 해봐도 한 가구라도 보호하는 조례가 있는 지자체도 많고) 조례는 지자체별로 사정에 맞게끔 하는 거니까… 충분히 입장은 이해해요. 그렇게 아시고…]

남원시는 지난 2018년에만 무려 1천여 건의 태양광에 개발허가를 내줬습니다.

당시 허가를 까다롭게 하는 주민보호 조항을 담은 조례가 생겼지만, 유예를 주면서 묶여 있던 허가 신청들이 무더기로 통과된 겁니다.

[남원시 관계자 : (지금의 조례나 법상 문제가 된 곳은 태양광이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죠?) 현재는 그렇죠. 그때 당시 법과 지침에 의거했을 땐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까…]

태양광 난개발을 막기 위한 관련법과 규정은 점차 강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개발허가는 남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판명 날 수도 있는 지역, 그것도 누군가의 집 바로 뒤에 발전 시설이 들어서는 황당한 일이 생겨나고 말았습니다.

(VJ : 박선권 / 인턴기자 : 주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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