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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성배된 검찰·법원 '대주 선처'

입력 2014-03-30 12:49 수정 2014-03-30 12:50

정·관·재계, 릴레이식 선처 호소

검찰 선고유예· 법원 '일당 5억 노역'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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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재계, 릴레이식 선처 호소

검찰 선고유예· 법원 '일당 5억 노역'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현실화"

독이 든 성배된 검찰·법원 '대주 선처'


대주그룹 허재호 전 회장의 '황제 노역' 파문으로 장병우 광주지방법원장이 불명예 퇴임하면서 정·관·재계가 딜레마에 빠졌다. 검찰 수사와 판결 당시 '대주 선처'를 호소하며, 앞다퉈 낸 탄원서와 호소문이 수년 뒤 '독이 든 성배'가 돼 돌아왔기 때문이다.

서울국세청이 대주건설, 대한화재 등 대주그룹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간 것은 2007년 3월. 조사 결과 대주건설과 대주주택 등 주력계열사 2곳이 2005∼2006년 연간 매출액의 25∼30%에 이르는 2000억여 원을 가공계상하는 방식으로 법인세 508억 원을 탈세한 혐의가 드러났다.

또 계열사인 대주건설이 부산의 한 아파트 시공사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시행사부터 연대보증과 사업자금 지원 등의 대가로 받은 121억원 중 100억원을 개인적으로 횡령한 혐의도 함께 확인되면서 그룹총수인 허 전 회장은 2007년 11월 기소됐다.

지역 대표기업의 총수가 사법처리될 상황에 처하자 여론은 갈렸다. 시민단체는 엄정한 처벌을 촉구한 반면 정·관·재계는 선처를 호소했다.

2007년 11월2일 박광태 광주시장을 비롯한 주요 기관·단체장 13명이 탄원서를 낸 것이 신호탄. "대주그룹이 무너지면 30여 계열사와 1500여 협력업체, 1만 가구에 이르는 분양자가 큰 피해를 입게 되고 지역 경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며 법적 관용을 요청했다.

광주상공회의소도 11월18일 성명을 내고 "대주그룹 사태로 지역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허 회장에 대해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광주전남경영자총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전남도회, 무역협회 광주전남지부 등도 이튿날 성명 또는 호소문을 통해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은 마땅하나 허 회장 구속은 그룹 와해와 지역 경제의 피폐화를 가져올 수 있다. 대주가 이 위기 상황을 스스로 극복, 지역민 피해를 최소화하고 자성을 통한 사회적 책임도 다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촉구했다.

전직 국회부의장과 군수, 군의회 의장 등도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검찰총장과 광주지검장에게 제출했다.

반면 광주경실련·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여성민우회 등 시민사회단체는 "조세 근간을 흔드는 사건에 대해 지역 기관장들이 엄정수사 촉구는 못할 망정 선처를 호소하는 것은 공적 소임을 저버리는 일로, 월권이자 부당한 압력"이라고 규정했다.

검찰은 2008년 9월 1심 결심공판에서 허 전 회장에 대해 징역 5년에 벌금 1000억 원을 구형한 뒤 이례적으로 벌금 부분에 대해서는 '기업 부담' 등을 이유로 선고유예를 재판부에 요청했다. 들불처럼 번지던 '선처 여론'에 손을 든 셈이다.

황희철 당시 광주지검장은 국정감사장에서 '대주 봐주기'를 질타하는 의원들에게 "기업수사는 불법행위가 있더라도 기업을 살리는 방향으로 수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기업은 개인소유이기는 하지만 고용의 토대가 되는 등 사회의 소유이기도 해 기업의 존폐를 생각해 선고유예를 구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법원도 허 전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 원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을 선고했다. 대신 벌금을 내지 않으면 1일 노역의 대가를 5억원으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토록 했다.

법원 측은 당시 "검찰의 선고유예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지역 내 선처 여론도 무시할 수 없어 고심 끝에 그같이 결정했다"며 "솔직히 허 전 회장이 돈을 아끼기 위해 노역에 응할 것으로 판단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은 항소심 선고 다음날 해외로 나갔고 이후 재산 빼돌리기와 호화생활 논란이 거세게 일자 귀국 후 일당 5억원의 '황제 노역'을 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광주상의 한 관계자는 "당시에는 호남지역 건설사와 조선사가 우후죽순 쓰러졌고 대주마저 무너지면 버팀목이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워낙 컸다"며 "수년이 지난 뒤 당시 호소문이 부메랑이 돼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지역의 한 기업인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 현실화된 것"이라며 "허 전 회장이 판결 당시 노역을 하던지 벌금을 나눠서라도 냈더라면 이같은 일이 없었을텐데 결국 정·관·재계가 독이 든 성배를 마신 꼴이 됐다"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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